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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pybara Feb 20. 2023

안녕, 태미

이별에 대한 하나의 기록

 점심으로 먹을 빵을 데우던 참에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의 태운은 울먹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태미가 오늘 죽는다니. 개의 죽음을 예지하는 태운의 말 이상하게 들렸다.


“그러니까 태미가 언제 죽을지, 너가 어떻게 아는데?”     


“어젯밤부터 발작을 시작했어. 허공에 대고 발길질을 하더라. 병원에 가니까 신경이 끊어졌대. 이제 걷지도 못해. 어떻게라도 데리고 있으려 했는데, 나아질 가망이 없대. 그래서 오늘 안락사할 것 같아. 시간 되면 인사라도 하라고 전화했어.”     


열네 살 먹은 눈먼 슈나우저가 얼마 못 살 거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하룻밤 사이는 이별을 받아들이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죽음이 분 단위로 정해지는 이별의 방식 모질어 보였다. 전화를 끊고 옷을 걸쳤다. 집을 나서니 바람이 거셌다. 다행히 태운과 나의 아파트는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 태운과 나의 아지트는 그의 지저분한 방이었다. 늘 먹다 만 음료수 캔과 컵라면 용기, 책과 기타가 널브러져 있는 태운의 방에는 발 디딜 곳이 많지 않았다. 그도 내가 기타를 치거나 게임을 하러 오면 태미는 앞도 못 보면서 곧잘 잡동사니를 헤치고 다가와 내 발치에 코를 들이밀었다. 그렇게 그 집에 드나들며 제법 9년 가까이 알고 지냈으니, 남의 집 개라고 해도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가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태미는 이상하게 평온해 보였다. 아침까지도 네 다리를 버둥거리며 발작을 멈추지 못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가죽에 바싹 붙은 갈비뼈의 윤곽이 숨을 들이쉴 때마다 선명해졌다가 다시 옅어지기를 반복했다. 털이 움큼씩 빠져 있어 비쩍 마른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제 약발이 좀 도나 봐. 진정제에 취해 있는 거야. 지금 안 보내주면 계속 이렇게 약에 취한 상태로 있어야 해. 더 붙잡아 두는 건 우리 욕심이야. 개한테도 존엄사가 필요해. 사람한테는 더 필요하고.”     


태운과 마찬가지로 눈가가 발개진 태운의 엄마가 말했다. 신속한 안락사를 주장한 건 태운의 엄마였다. 소파에 앉은 채 태미를 품에 안으니 뜨끈한 체온이 느껴졌다. 개의 체온은 이렇게 뜨겁구나, 놀랐지만 태운에게 들으니 그 진정제 때문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소진하며 타오르는 태미의 체온에선  맹목성마저 느껴졌다. 내가 태미를 안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을 빼앗건 아닌가 싶어, 태운을 옆에 앉히고 태미를 건네 안겼다. 제 몸을 옮기자 태미는 별안간 버둥대기 시작했다. 단순히 다리를 버르적대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내딛고 달리려는 모습처럼 보였다. 문득 태미의 백내장 걸린 눈을 보았다. 희멀건 눈동자 뒤편으로 새까맣게 펼쳐진 어둠 속을 어디에도 닿지 않는 네 다리로 헤매고 있을 태미의 흐릿한 의식이 가여웠다.

아기를 어르듯 개를 안아 든 태운은 누구 들으랄 것도 없이,     


“이렇게 멀쩡한데... 간지럼 태우면 몸도 움직이고... 태미야 한 번만 걸어볼래? 한 번만 걸어보자.”   


라고 말하며 태미를 마룻바닥에 내려놨다. 걸을 수만 있으면 태미의 예정된 죽음을 없던 일로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바닥에 내려진 태미는 줄 끊긴 꼭두각시처럼 네 다리를 다른 방향으로 뻗으며 넘어졌다. 급하게 다시 태미를 안아 든 태운 옆에서 내가 한 일이라곤 태미 갈비뼈 끝이 날카데, 아프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건넨 것뿐이었다. 태미의 갈비뼈를 쓰다듬는 태운의 눈물에 미안해졌다.    


곧 회사에 반차를 낸 태운의 아빠가 도착했다. 태운의 엄마가 태미를 안아 들고 병원으로 갈 채비를 마쳤다. 우리는 소파 위에 흰색과 노란색 스카프 두 개를 펼쳐 두고 마지막으로 어떤 스카프를 매 줄지 고민했다. 흰색 스카프가 선택됐다.

태운은 차마 따라가지 못했다. 장례식장에만 가기로 했다.

태운의 엄마가 태미를 안고 마지막으로 현관을 나설 때 태운은 의외로 담담했지만 제 방에 들어오자 울음을 참지 못했다.      


“씨발, 배고파.”     


태운은 울면서,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고 우리는 피자를 시켰다. 14년을 함께 한 생명의 죽음 살아 있는 우리의 배고픔을 면해 주진 못했다. 태운은 그 사실에 넌더리가 났던 건지, 자괴감이 든 건지 모르겠다.      

피자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그의 방에서 늘 그러듯 기타를 쳤다. 기타를 치며 사는 건 고통스러운 일인 것 같다,라고 태운이 말했고 그럼 태미는 이제 안 고통스러워지겠네,라고 난 대답했다.


태미의 안락사는 피자 배달보다도 빨랐다. 안락사가 끝나자마자 강아지 장례식장이 예약되는 바람에 태운은 피자가 오기도 전에 집을 나서야 했다. 나는 피자를 받기 위해 그 집에 남겨졌다.  태운이 나가고 20분쯤 지나자 배달원이 도착했다. 텅 빈 집에서 혼자 피자를 먹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개가 있던 거실 한쪽을 보았다. 노란색 스카프 하나가 남겨져 있었고 희미한 개 냄새가 났다.



*이 글이 잊힘에 대한 작은 저항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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