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pybara Oct 28. 2023

카피소드 #1. "한 순간을 살아도 섬세하게"

좋은 카피에 깃든 이야기를 들려 드리는, '카피소드' 시리즈입니다.


처음으로 소개해 드릴 카피는 22년 9월에 온에어된 '더한섬닷컴' 광고의 메인 카피입니다.



" 순간을 살아도 세하게"


세상엔 모래알처럼 많은 브랜드와 상품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브랜드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것이 모든 광고의 급선무와도 같습니다. 아무리 인상 깊은 메시지를 지닌 광고라 해도 "그래서 그 브랜드 이름이 뭐라고?"라는 반응이 나오면 실패한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카피 작법 중 하나는 '이름 갖고 놀기'입니다. 브랜드나 상품 이름으로 'n행시'를 하는 것도 그중 하나죠. n행시로 이름을 각인시킬 뿐 아니라 브랜드의 특성과 소비자의 욕구를 연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카피가 될 겁니다. 한섬의 카피가 그렇듯 말이죠.


옷을 만들고 판매하는 브랜드, 한섬은 자신의 이름과 연관 지어 '섬세함'을 핵심 메시지로 택했습니다. 섬세함에 그만큼 큰 가치를 두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동시에 섬세함이란 속성이 소비자들에게 잘 먹힐 거라고 생각했을 테고요. 물론 옷이란 게 섬세할수록 좋겠지만, 섬세함이란 말에 무엇이 담겨 있을지 조금 더 생각해 봅니다.


섬세함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습니다.


1. 곱고 가늘다.

2. 매우 찬찬하고 세밀하다.


1번은 물질의 속성에 관한 이야기니까, 한섬이 이야기하는 섬세함이란 '매우 찬찬하고 세밀하다'일 겁니다. 찬찬함과 세밀함, 이건 어쩌면 '잘 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군요.


우리의 하루는 수많은 선택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몇 시에 일어날지, 일어나서는 뭘 먹을지, 뭘 입고 어디로 갈지 등 모든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하지만 빼곡한 선택지들 속에서 정작 우리가 마음을 써 고르는 것은 생각보다 적은 것 같습니다. 보통은 일상의 관성에 따라 그것이 선택의 결과라는 것조차 잊은 채 살아갑니다.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 탓이 클 겁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우리 뜻대로 고를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합니다. 그것에 구태여 시간을 들여 뭔가를 고르는 것이 섬세함이죠.


한섬의 카피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멋진 옷, 비싸서 아끼는 옷, 일상에서 10cm 정도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옷. 이상하게도 우리는 남을 위해 가장 좋은 옷을 입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런 옷을 입고 일상 속 공간으로 향하면 묘한 감탄사와 함께 질문을 받게 됩니다.


"오~웬일이야. 오늘 뭐 약속 있어?"


이때 섬세함의 가치는 '약속 없음'에서 출발합니다. 특별한 만남 때문이 아니라 하루를 이루는 선택의 가치에 집중해 고른 옷이라면 겉보기는 같아도 전혀 다른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 나의 섬세함은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니까요. 어쩌면 이런 것이야말로 잘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삶을 이루는 요소들에 일상적으로 신경 쓰는 것, 선택의 순간과 그 결과를 음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죠.


그러니 섬세함의 반의어는 '투박함'이 아니라 '아무거나'일지 모릅니다.


광고에는 이런 문구도 함께 등장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같은 브랜드의 제품이라 해도 표기 번호 한 자리만 달라지면 다른 옷이 됩니다. 슬랙스의 핏이 다를 것이고 턱(tuck)의 개수가 다를 것이고 기장과 재질이 달라집니다. 슬랙스 하나만 놓고 봐도 이렇게 많은 것들이 달라지는데,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선택해 온 것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바꿔 왔을까요? 우리는 일상적으로 먹을 밥을 정하고 입을 옷을 고르지만 그 고민의 밀도는 대부분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을 수준에 그칩니다. 차라리 그것이 고민의 이유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일상을 이루는 요소들은 곧 우리의 삶이기도 합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카피 하나를 더 볼까요. 일상복의 대명사 유니클로의 카피입니다. 


평범한 하루 속에서 감도 높은 선택을 내리는 일, 우리는 이로써 삶의 한 부분을 '아무거나'로부터 구해낼 수 있게 됩니다. 새삼스러워 보이는 일이 새삼스럽지 않을 때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찬찬히 그리고 세밀히 나의 하루를 이루는 것들을 고르는 것은 분명 잘 사는(Live) 법이자 잘 사는(Buy) 법이 되어줄 것입니다. 인생은 누가 뭐래도 평상복의 나날이니 말이죠.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섬세함은 순간을 붙잡는 일이라고. 의식조차 못하고 흘려보내던 일상 속 매 순간을 붙잡아 나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그러니 "한 순간을 살아도 섬세하게" 살아야 한다고. 한섬은 그런 브랜드가 되고 싶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당신의 가장 작은 단추에도 섬세함이 깃들길 바랍니다.


"한 순간을 살아도 섬세하게"-Full ver.






작가의 이전글 카피소드 : 카피로 읽는 사람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