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카롱 Oct 04. 2024

스위스

호스텔과 어색한 침묵

파리 리옹역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것은 알아본 그대로라 어렵지 않았다. 바젤에서 베른행 SBB로 갈아타며 모든 게 순조로웠다. 베른 반호프 역 앞은 작년의 경험이 있어 숙소의 위치가 머릿속에 잘 그려졌다. 작년에 사용해 본 SBB앱에 주요 도시가 저장되어 있어 기차 시간을 알아보기도 용이했다. 베른이 수도라고 해도 믿지 않는 언니에게 재차 말하다 억양이 강해진 것도 같았다.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취리히'나 '제네바'보다 덜 알려진 탓인가 싶다.


베른의 숙소는 베른 역사에서 매우 가깝고 구시가지를 둘러보기도 딱 좋은 거리에 위치했다. 내 선택에 만족했다. 10번 버스를 타고 장미정원에 올라 아인슈타인의 동상벤치에 앉아 사진을 찍고 레스토랑에서 이것저것을 주문하고 맥주도 마셨다. 언니가 아름다운 시가지와 아레강의 아름다움에 만족해하는 것이 기뻤다.


다음날 아침, 유네스코 등재로 그 이름값을 하는 구시가지는 전날 오후의 소란함이 사라져 더 아름다웠다. 쌀쌀한 아침공기에 기분이 상쾌했다. 창 밖 길가로 난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크로아상과 에스프레소로 아침을 먹었다. 흡족한 언니 표정에 나도 신바람이 났다. 에스프레소도 좋았다. 파리 이비스호텔보다 커피 전문점인 덕이다. (파리에서 가족들이 운영하는 소르본 근처의 호텔, 랭보가 머물렀던 뀔리니를 떠올렸지만 관광지의 랜드마크들을 돌아보기 더 나은 쪽, 그리고 조식은 조금 더 양이 많고 다양한 쪽을 선택했었다. 그 탓에 내게 에스프레소맛이 별로였었다.)


체크아웃까지 여유 있는 아침시간, 늑장을 부리며 사람구경을 마치고 인터라켄 웨스트로 출발했다.

인터라켄 웨스트에서 걸어서 5분여 거리에 숙소는 창밖 풍경이 예술이다.


그런데 아뿔싸! 타인과의 여행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 벌어질 것이 드디어 벌어진 것이다. 마음이 다른 사람들과의 여행, 쉽지 않다. 가족들과도 각자 먹고 만나기를 한 두 번 해본 게 아니다. 고집을 서로 피워 말없이 몇 시간을 보내는 것쯤이야 이제 아무 일도 아닌 내게 내면이 단단한 언니의 굳은 얼굴에 마음이 약한 나는 슬펐고 후회 같은 감정이 잠시 밀려왔다.  


비싼 스위스 물가(작년에 인터라켄에서 쌀국수 세 그릇을 우리 돈 12만 원에 먹었었다)를 예를 들며 숙소가 호스텔이어도 괜찮겠냐는 내 말에 문제없다고 답한 언니의 머릿속엔 공용욕실이란 개념이 아예 없었던 것이다. 숙소에 들어선 언니가 얼굴을 굳혔을 때 긴장감이 밀려왔다. (사실 너무 좁기도 하고 철제 이층 침대가 다른 침대보다 시끄럽게 삐거덕거린 것도 사실이다. 떠나올 때 숙소 측에 모든 게 좋았지만 침대 나사를 한 번 확인해 줄 것을 알렸다.) 사진을 자세히 보며 방의 크기를 가늠하지 않은 채 리뷰만을 신뢰한 내가 할 말이 없었다.


더 웃긴 것은 체크인을 할 때 레스토랑에 이어 키친의 장소를 설명하는 리셉션 사람에게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걸 왜 얘기해 주는 거지?"라고 물었다. 그도 나를 보며, "어, 뭐지?" 싶은 얼굴로 눈을 크게 뜨며 의아해했다. 앗차! 그 짧은 순간 '여기는 호스텔이지!' 어이없는 웃음을 참으며 여러 개의 숙소예약으로 내가 혼동을 했다고 사과의 말을 전했다. 호스텔 경험이 오래전이라 멍청한 질문을 한 것이다. 이번 여행 준비를 오래전에 해두었기에  까먹은 듯도 했다. 밴쿠버 백팩커스 '세임선' 2층의 부엌에서 즐겼던 만찬 떠올 모든 것이 상기되며 약간의 흥분이 살아 지만 언니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어 가시방석이었다.

그러나 이 호스텔의 이모저모를 살피고 겪으며 언니의 노여움은 다소 누그러진 듯도 했다. 언니는 현명한 사람이다. 받아들인 것이다. 사실 그 침대소음과 방의 크기만 아니면!! 나는 다시 갈 생각이 충분하다. 다른 형태의 방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숙소 창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하더쿨룸에 오르는 잠깐 동안 숙소에 대한 언니의 표정이 바뀌어 긴장이 사라지는 듯도 했다. 그런데! 연거푸 우울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도착 당일 하더쿨룸 전망대에 올라 파란 브리엔츠와 튠 호수의 아름다움을 보게 해주고 싶었지만 푸니쿨라올라 정상에 오르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표를 끊을 때만 해도 약간의 구름만 있었지만, 갑자기 변한 날씨에 황망했다. 행여 그칠까 비를 피해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 시간대가 좋지 않아 숙소까지 걸어야 했다. 신발이 다 젖은 언니의 짜증은 다시 되살아났다.


하룻밤 뒤에 먼저 나간 중국아가씨나 둘째날 도착한 홍콩 아주머니(그녀는 세상 곳곳-아프리카에 남미까지-을 다니고 있었는데 두번 다시 가지 않을 나라로 오스트리아를 언급했고 세상 가장 지루한 나라라고 했다. 우리나라 길거리 음식에 대한 세세한 평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교환한  말레지아의 19살 청년과 많은 이야기(마침 말레이지아와 싱가폴 여행을 부추기는 지인이 있어 남편과 논의 중이라 더 관심이 갔는데 무엇보다 다양한 인종과 언어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아이는 영어, 말레이지아어, 광동식 홍콩식 중국어에도 능했다.)를 나누며 호스텔의 면모를 즐겼지만 마음 한쪽이 내내 불편하고 무거웠다.


오히려 침묵이 불편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같다.


반전은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조식시간부터였다. 호스텔의 조식은 건물을 공유한 호텔 쪽에서 먹는 것이라 4,5성급 호텔처럼 우아하고 정갈했으며 커피조차 개인의 취향을 물어 예쁜 잔과 포트를 받쳐 가져다주었고 와인과 다양한 차와 색색의 각종 과일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식당의 큰 창문 밖으로 호수와 산을 배경으로 스위스의 면모를 즐길 수 있었다.


자기 전이나 눈을 뜨자마자 스위스 날씨 앱을 가장 먼저 열었다. 어떻게든 뱅앤 쪽 마을의 아름다움과 클라이네 샤이덱 주변 트래킹(산책)을 위해 구름이 없는 날을 찾아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아침하늘에 구름이 많았다. 날씨가 흐리니 시가지와 유람선이 좋겠다 싶어 골든라인으로 창밖을 구경하며 루체른에 가서 카펠교를 보고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다행히 언니가 배 타는 것을 걷는 것보다 더 좋아했고 도시 주변과 어우러진 호수밖의 풍경에 만족해했다. 카펠교에서는 초등 3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들의 숙제를 위해 사진을 같이 찍고 몇 마디 나누는 경험을 했다.



돌아와서 문제의 4층 부엌을 체험하는 일에 언니는 어제의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말레이지아 아이 존슨을 불러 쿱에서 공수한 저녁상을 함께 했다. 언니는 내면이 깊고 단단한 사람이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친척언니로는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언니와 라면 삼겹살, 김치등으로 저녁을 같이 하며 존슨과의 대화도 재미가 있고 챙겨주려는 모성이 발동하여 이런 저런 대로 호스텔의 매력에 빠지는 듯도 했다.


그 다음 드디어 아침부터 날이 맑았다.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융프라우 아이거글레쳐까지 내가 보여주고 싶은 장관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라우터브루넨의 긴 폭포는 기차 안에서만 감상했는데도 언니의 표정이 좋았다. 라우터브루넨으로 향하다 보이는 설산의 모습도 감동스럽지만 포기한 그린덴발트의 웅장함이나 피르스트 쪽에 아쉬움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언니말대로 선택한 후엔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나처럼 조바심을 내지 않는 단단함이 부러웠다.


모처럼 언니가 인생샷을 찍으려 다양한 포즈를 취했던 날이었다. 내게 뱅엔마을을 처음 보았던 이전의 놀라움은 조금 사라졌지만 여전히 참 아름다웠다.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커피 한잔씩을 하고 내려와 기차를 갈아타고 인터라켄 동역으로 돌아와 브리엔츠호수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에서 호수의 아름다움과 크기에 연신 감탄하는 언니와 나른한 오후시간을 보냈다. 호수 끝에 다다러 버스로 갈아타고 인터라켄 동역으로 돌아왔다. 만족한 일정에 서역까지 걸었다. 쿱에서 다시 장을 보고 계산을 하려는데, 밖에 서있던 언니가 물을 사러 다시 들어갔다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계산을 마쳤다.


순식간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다음날 밀라노를 거쳐 로마에 가야 했다. 언니는 파리보다 이탈리아가 더 궁금하다고 했다. 스위스 이탈리아 두 나라를 여행하는 것은 훨씬 간단하고 편하다.


그렇지만, 서유럽을 보는데 파리를 뺀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국 파리를 놓치기가 너무 아쉬워 2박을 끼워 넣은 여정이었다.


트렌이탈리아를 통한 기차표는 이미 서울에서 사놓았었다. 트렌 이탈리아 사이트는 스위스 SBB보다 훨씬 불편하다. 연착도 악명이 높다. 이전 방법대로 루가노를 거쳐 밀라노로 들어가는 방법을 택할 수 없어 도모도 솔라로 들어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도모도솔라까지 가는 표만 스위스에서 몇 가지를 확인한 후 구매하고 싶었다. 인터넷에 알려진 것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미리 산 표를 보여주고 도모도솔라행 표를 구입하며 슈피츠에서만 갈아타면 된다는 것을 직접 들으니 맘이 놓였다.


그런대로 모든 것이 순조로웠지만 아침 7시 34분 행 기차를 타기 위해서 이른 아침에 바삐 움직여야 했다. 존슨과 홍콩의 아주머니에게 사실을 알리고 양해를 얻었다. 모두 부지런한 사람들이라 손사래를 치며 내가 일어났을 때 불을 켜줄까를 먼저 물어봐줬다. 여행을 하며 상대를 이해하고 돕는 일이나 낯선이와의 대화는 참 즐겁다.


홍콩아주머니가 우리보다 먼저 방을 나섰다

(그 여명 속에 대체 그녀는 매일 어딜 그리도 빨리 가는 건지 아직도 의아하다. 그녀는 이틀을 더 머물 예정인데, 왜 매일 아침 새벽부터 그리 서두르는 걸까? 나는 모든 사람들이 흥미롭고 그 사연도 궁금하다. 그리고 상상하기도 좋아한다. 홍콩아주머니가 말하는 도중 "프렌즈 or 맨, 아니 지금은 없지만" 이란 말 속에 잠시 등장한 그 남자는 어떤 사연으로 그녀의 인생에서 사라진 것일까? 모든 사람에게 흥미를 갖는 내게 딱 잘라 "나는 사람은 관심이 없어"라고 말하는 언니와 나는 많이 다르다.)

존슨도 어차피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아침이었다.


7시 오픈한 식당에서 빵 하나 요거트하나 더블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역으로 향했다. 시간도 뱃속도 딱 적당했다. (계란과 사과는 들고 나왔다.ㅎㅎ)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