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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롱 Oct 05. 2024

숙소 도착 에피소드

방탈출게임

바티칸 성곽길을 마주한 숙소는 길가에 바로 면하지 않았다. 과거 성의 주변에 외부침략을 막을 용도로 만들어진 해자처럼 길가의 담장에 붙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래가 뚫린( 이 길가 건물들이 경사에 지어진 터라) 다리를 건너야 본 건물이 나타난다. 그 본 건물의 대문을 다시 열면 일반적인 복도와 계단이 보이는 건물의 내부로 들어서게 된다.


경험을 토대로 숙소이름을 찾아 버튼을 누르니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길가 문이 열리고 들어가 4~5미터의 다리를 건너고 다시 나타난 건물에 붙은 문을 마주했을 때 다시 숙소의 이름을 찾아 버튼을 누르니 문이 자동으로 열려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누군가 나타날 거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말이다.




어라! 검은 복도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대체 몇 층이 이 숙소인지 알 수가 없고 인기척이 없어 당황했다. 다행히 제일 먼저 보이는 문에서 작은 필기체 글씨의 숙소이름(영업 중이라면 글씨라도 크고 진하게 해 놓던지!)을 발견했다.


손잡이를 돌리면 당연히 열리리라 믿었지만 굳게 닫혀 있었다.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구해본 적이 몇 번 있지만 모두 대면을 통해 키를 받고 안내를 받았었다. 그러나 이번엔 부킹 닷컴으로 숙소를 예약해서 그런 경험은 애체 떠올리지도 않았다. 당연히 사이트를 통해 구한 숙소엔 일반적인 호텔과 같 리셉션코너가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아무 생각이 없이 출발한 것이다. 물론 일도하고 글도 쓰고 어머니댁에도 정기적으로 가고 취미생활도 하며 나름 바쁜 일정들을 보내며 준비한 탓도 있다. 출발 이주 전엔 어머니가 넘어지셔서 병원을 모시고 다니는 일로 마음이 안 좋았었다. 출발 염려했던 많은 우려들이 뒤섞여 머릿속이 복잡했다.


너무 당황스러워 순간 얼음이 되었다. 언니가 힘들어하기 전에 빨리 해결해야만 할 텐데 싶어 마음만 분주했다. 자! 주인에게 어떻게 연락하지?

그제야 사이트를 통해 하단에 도착예정시간 통보와 택시비용을 물었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앱을 켜서 메시지 창을 찾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한 시간가량 일찍 도착했고 건물 안에 들어섰음을 알렸다.


그? 혹은 그녀가 반가운 인사와 긴 메시지를 보내왔다. 밤중에 숨을 돌리고 그날의 일을 복기할 때서야 제대로 다시 보니 독립적으로 스스로 문을 열어야 하는 양해 안내 메세지가 와 있었지만 애체 열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기차연착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던 탓이기도, 경험이 없어 짐작도 못한 탓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많은 숙소예약시에 사이트하단의 메세지 창을 본격적으로 이용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돋보기 좀! 어두운 복도에서 작은 글씨를 찾아 해석하며 마음이 바빴다.

두 번의 비밀번호를 단계별로 누르라는군. 어디에? 문짝을 아무리 살펴도 비밀번호를 누를 만한 어떤 기기가 보이지 않았다. 다시 글씨를 복사해서 붙이고 늘려볼까?


자자, 천천히!

천천히 살피다 벽 오른쪽 손을 뻗어 닿을 만한 위치에(우리가 모두 키가 작은 탓! 한숨이 나왔다) 주먹보다 조금 큰 '키하우스'란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비밀번호를 일렬로 맞추기 위해 숫자를 돌려야 하는데 키는 작고 그 번호 키들도 워낙 작아 숫자를 맞춘 건지 아닌지 확인이 정말 힘들었다. 핸드폰의 후레시를 켜고 비추며 까치발로 안간힘을 쓴 후에 4개의 숫자를 맞추니 뚜껑이 열리고 다시 우리나라 일반적인 아파트 문의 누름번호판이 나타났다. 다시 콩알 반의 반쪽도 안되는 6개의 번호판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누르니 방탈출게임이 이런 걸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진 좀 찍어 놓을 것을! 그 크기도 앙증맞은 키하우스를 말이다)


결국 문은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니 우리가 쓸 안쪽 독채문에 열쇠가 꽂혀 있었다.


한숨이 나왔고 공부가 되었으니 그것으로 위로를 삼자고 생각했다. 집 나와 개고생이란 말이 떠오르다 사라졌다. 가방을 내려놓고 집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리뷰에서 칭찬일색이던 집의 내부시설은 제법 좋았다. 침실, 주방, 욕실 모두 제법 크고 깨끗했다. 침실 한쪽으로 바티칸 성곽길이 보이는 발코니에 빨래건조대가 놓여 있었다. 언니는 빨래를 할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는 것 같았다. 조금 앉아 있다가 동네를 둘러보고 식사를 할 요량으로 집을 나서야 했다. 머릿속으로 번호를 기억하려 했으나 되지 않았다. 언니에게도 메시지를 복사해서 번호를 저장하도록 하고 집을 나섰는데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르고 말았다.


의당 건물 안에서라면 문이 자동으로 열릴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벨을 눌러 자동으로 열렸던 문이 안에서는 오히려 열리지 않았다. 방을 잠그고 집의 입구 문을 잠근 열쇠고리를 찾아 맞춰가며 키를 찾았다.

"언니 이 문은 보라색키다!" 건물의 큰 대문을 열고 나오며 이거 정말 방탈출게임이네! 라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건물 앞다리를 건너 길에 면한 대문을 열려고 아무리 이 열쇠 저 열쇠를 넣어봐도 맞는 것이 없었다.

아찔하고 황망한 마음이 교차했다.

지나가는 사람도 적은 바티칸 성곽길! 가둬진 느낌이었다.


한참을 쩔쩔매는데 건물의  2층, 3층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뭐라 뭐라 한참을 손을 휘저으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못 알아듣겠다고 어깨와 손을 연신 사용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휘젓던 두 손을 모으며 안타까워했다. 젊은이라면 짧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던지, 안되면 내려와 달라고 부탁하겠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서 대문을 제대로 다시 살피기로 했다.




그제야 보았다. 왼쪽 문짝 아래 한 귀퉁이 화살표와 함께 뭐라 뭐라 쓰여 있는 글씨를 말이다. 그것도 영어가 아니어서 의아했지만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 문짝을 달고 있는 벽에 비닐 덮개로 가려진 작고 낡은 버튼이 눈에 띄었다. 눌러보았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2층 창문에 계시던 할머니와 그 위층의 할아버지가 함께 박수를 쳤다.

우리는 그분들의 염려에 고맙다는 사인을 보내며 어이없는 웃음을 웃어댔다. 화살표의 위치를 너무 낮게 잡았다고 이번에는 키 작은 우리도 안 보일 위치라고 투덜거렸다.


점저로 먹은 음식은 맛을 느끼지 못하고 피로감을 느꼈다. 돌아와 차를 마시기 위해 가스불을 켰을 때 가스레인지가 작동하지 않아 중간밸브를 찾아 벽을 훑다가 다시 메시지를 보냈더니 라이터를 찾으라는 주인의 답이 왔다. 주인은 내가 라이터가 뭔지 모르겠다고 사용해 본 적이 없다고 하자 남자를 보내겠다고 했고 당도한 남자는 서랍 속에서 그 라이터란 물건을 찾아 시범을 보였다. 처음으로 집안에서 고깃집에서나 보았던 긴 라이터를 사용해 불을 붙여보았다. 언니는 영어를 하나도 하지 못하는 그 남자에게 번역기를 돌리며 의사소통을 시도하여 마트에 가는 지름길을 알아냈다.

가스레인지 사용법을 알고 나니 큰 숙제를 마친 기분이 들었고 가방 속에서 나온 주전부리와 숙소 측에서 내놓은 빵과 과자에 손을 대며 쉬었다.


언니는 손빨래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 같았다.

내게는 편한 침대만이 위로가 되었다.

로마는 파리나 스위스보다 긴 5박이 예정되어 있었다. 당일 하루 만에 체력이 바닥난 기분이 들었다.


집이 그리웠다. 내 방, 내 집과 동네에서의 일상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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