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되는 것은 늘 신기하다.
만남 장소에 들어설 때 보이는 드라이로 말아 올린 정갈한 머리와 매끈한 피부톤이나 붉은 입술색은 짧은 시간 동안 바래고 흐트러지며 매우 피곤한 기색으로 변하는 것은 늘 일정한 패턴이었다.
한껏 말아 올린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땀에 젖으며 가라앉고 빨간 립스틱은 음식물과 함께 사라져 드러난 검푸스름한 입술색은 그녀를 더욱 지쳐 보이게 했다.
마주 앉은 젊은 여자의 날 선 불만을 적당한 웃음으로 무마시켜야 함을 알고 있다.
"지난번 주신 그 들깨에 모래가 얼마나 많은 지, 욕을 얼마나 먹었게요?"
"아이고, 어째! 너무 미안해요." 마음이 불편할 때 그녀는 웃음소리에 애교 있는 고갯짓을 하는 버릇이 있다.
이미 다른 거래에서도 변명과 사죄를 했었기에 사정을 알고 심호흡을 하고 나온 자리다.
앞에 앉은 여자도 그것을 놓치지 않고 미간을 찌푸린다.
" 어디 맘 놓고 사 먹을 수 있겠어요? 아니 중간에 괜한 다리 놔주고 욕은 덤으로 먹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냐구요!"
"아이고 미안해요. 나도 몰랐지, 아유, 걔가 그렇게나 관리가 서툴러."
"그래도 양은 충분히, 훨씬 많이 담았다고 하던데."빠르게 덧붙인다.
동생의 습관을 이미 알고 있는 그녀가 우려했던 일이고 충분한 양은 그녀의 바람이었다.
" 동생이 그래요?"
"뭘 더 담아? 재보니 아주 똑, 4키로던데. 나참 그런 거짓말을 해?"
목소리가 높아진 마주한 젊은 여자가 말을 놓기 시작했다.
그녀가 온몸에 진땀이 흐르기 시작하자 얼굴의 화장은 빠르게 색을 잃기 시작했다.
평생 자신을 난처하게 만든 가족을 위해 변명이 일상이었던 그녀가 자주 하는 말엔 특이한 패턴이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것은 말미에 따라오는 말 " ~그러던데....."였다.
오늘은 '충분히 담았다고 하던데'였다.
들었던 말이나 자신이 아는 지식을 총 동원한 말, 그러던데!, 그렇다던데! 오늘은 자신이 만들어 낸 말도 동원한 것이다.
상대가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봐 주기를 염원하는 심정의 표현이다.
동시에 가족의 말을 옮기는 중재자로 평생 달고 살아야만 했던 말과 다르지 않다.
오빠가 그러던데
엄마가 그러던데
올케가 그러던데
'그렇지만, 그런 건 아닐까? 그래도 그런 점이 있어서일 거 같은데?'라는 변론과 이해 그리고 의심의 여지를 감춘 말투다.
그 말에 마주한 사람이 이어가는 말을 눈치껏 살피는 마음과 함께 작은 보조개를 만들며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 애교의 몸짓을 했다.
이번엔 다르다. 앞의 여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말이 짧아진 앞의 여자의 표정에 미소를 유지하기가 힘든 그녀가 축축해진 머리를 매만졌다.
그녀는 죄가 없다.
그녀의 가사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온 무심한 부모
자식들의 홀대를 받는 손찌검이 잦았던 게으른 오빠
일자리가 시원치 않은 동생들
그들이 부르는 대로 달려 간 자리엔 팔아달라는 농작물이나 알아봐 달라는 공공기관의 서류뭉치들이 놓여있었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하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가족들은 숨 돌릴 새 없이 그녀를 몰아세웠다.
그녀는 죄가 없다.
마주한 여자의 가자미눈을 언제까지 미소로 막아 내야 하는지 저울질하던 그녀가 갑자기 입꼬리를 내리며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핸드폰을 만지느라 고개를 숙인 젊은 여자뒤로 벽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만났기 때문이다.
아침 시간 공들인 자신의 화장기는 이미 바래 제 나이보다 훨씬 들어 보이는 몰골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아침 기상에 제일 먼저 떠오른 기분, 우울감으로 머릿속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마주한 젊은 여자의 어깨너머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기 시작했을 때 젊은 여자의 말은 소리의 형체를 잃은 채 귓가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내려간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빠른 손놀림으로 카톡을 전송하던 젊은 여자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뭐라고요?" 미소를 잃은 맞은편 그녀의 모습이 매우 낯설어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정색을 하며 물었다.
"뭐라는 거야? 대체" 혼잣말을 하고 팔짱을 끼며 뒤로 물러나 앉았다.
"나는 죄가 없어요."
갑자기 늙어진 그녀가 입술을 움직였지만 앞의 젊은 여자는 듣지도 가늠하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