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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쏭 Apr 28. 2023

‘땅콩이’가 바꾼 세상

땅콩이에게 새 집을 선물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케이지를 분해해 관을 청소고 있는 모습이 안돼 보였는지, 남편이 햄스터 케이지 사진을 하나 보여주며, 이동관에 배변을 하더라도 처리가 편할 것이라 교체를 권유했다.  땅콩이가 우리 집에  온 지도 그새 2년이 넘은 터라 바꿔준다 한들 얼마나 더 쓸 수 있을까 싶었지만, 하루를 쓰더라도 조금이라도 불편을 덜어준다면 사는 게 맞다는 남편의 의견에 따라 새로운 케이지를 주문하게 됐다.


햄스터 집은 벽돌집 모양에 굴뚝까지 있고 이동관은 미끄럼틀 형태여서 대소변을 봐도 간단히 닦으면 될 거 같았다. 정말 하루, 이틀, 사흘까지는 사길 잘했다면서 좋아했던 거 같다. 그런데 땅콩이는 집이 영 낯설은지 이동관을 타고 올라가지 않고 며칠간은 모래가 있는 화장실에 들어앉아 꼼짝을 하지 않았다. 이제야 제대로 된 배변 습관이 생기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나흘쯤 되던 날 아침, 주방 앞에 둔 햄스터 케이지쪽에서 “따다닥 따다닥”, 아침부터 열심히 이갈이를 하고 있는 땅콩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땅콩이가 케이지 2층에 있는 ‘집’ 안에 들어가 굴뚝 형태의 창에 얼굴을 밀어 넣고 이갈이를 하는 거 같았다.


“얘들아, 나와서 이것 좀 봐봐”

“땅콩이가 이제 이 집에 적응을 했나 봐”

”그런데 얘 왜 이렇게 웃기게 굴뚝에 얼굴을 끼우고 이갈이를 한다니“

”엄마, 얘 진짜 웃긴다.“


아이들을 각각 학교로 유치원으로 보내고 집안 정리를 하는데, 갑자기 아까 봤던 장면이 뭔가 이상하게 느껴져 다시 햄스터 케이지를 들여다보았다.


“땅콩아, 너 왜 계속 이러고 있어? 내려와”

얼굴을 톡 쳐 보지만, 땅콩이를 굴뚝 안쪽으로 얼굴을 들여놓지 않았다.


‘혹시… 얼굴이 굴뚝에 끼여서 계속 저러고 있었던 걸까? 튀어나온 이빨이 굴뚝 모서리에 걸린 채 매달려 있는 듯한 모습, 땅콩이가 까치발을 하고 바둥거리고 있었다. 급히 케이지를 분 땅콩이를 굴뚝에서 빼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땅콩아 미안해… 아파도 조금만 참아”


땅콩이 이빨이 걸린 창틀모양 플라스틱을 도구로 잘라내고 땅콩이를 잡아당겼다. 마침내 굴뚝에서 땅콩이 얼굴을 잡아 뺀 순간, 얼마나 오랜 시간 그 상태로 있었던 것인지 땅콩이 얼굴은 반이 찌그러져 있었다. 일그러져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한쪽 눈은 감겨 있었고 코와 입이 형태를 알 수 없게 일그러져 있었다.


“땅콩아.. 아.. 어떡해… 어떡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침에 벌어진 일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똥오줌 아무 데나 싼다고 구박하고, 치우기 힘들다고 투덜거렸는데, 그래서 산 새 케이지인데, 그 케이지가 땅콩이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다.  애당초 치우기 힘들다고 투덜대지만 않았어도....


땅콩이는 케이지 한쪽 구석에 엎드려 안정을 취하는 거 같았다. 그 상태로 며칠간 잠시 일어나서 물만 먹을 뿐, 맥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사고가 있은 후 3일째 되는 날 땅콩이가 기척을 냈다. 아직 음식을 먹는 거 같지는 않았지만 얼굴은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이 된 듯했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7일째 되는 날 땅콩이는 조용히 잠자 듯한 모습으로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다.


2천 원어치의 책임

사고 후유증이 분명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이가 많고 비만이기는 했지만, 그 일이 아니었다면 몇 달은 더 살았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움과 미안함, 원망의 감정들이 나를 괴롭혔다. 누군가에게는 화를 내고 책임을 물어야 할 거 같았다.


00몰에서 해당 제품을 판 판매자에게 전화를 했다.


”제 햄스터가 여기서 판 제품을 이용하던 중에 굴뚝에 얼굴과 이빨이 끼여 오랜 시간 방치됐고 그로 인해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그리고 며칠 만에 죽었어요.“


”아.. 네.. ”

“그렇다구요.. 그 제품이 문제가 있다구요”

“그런 위험한 제품을 팔면 안 된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위로는커녕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무적인 말투, 그래서 어쩌라고, 뭘 바라는 거냐는 듯한 표정이 전화기 너머로 보이는 듯했다. 판매자의 무성의한 대응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소비자 보호원에 민원을 넣기로 했다.


“반려동물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케이지를 이용하던 중에 제품의 결함으로 인해 사고를 입었다”는 내용으로 민원을 접수하고 며칠이 지나 쇼핑몰 고객센터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00고객님, 소비자보호원에 민원 접수하셔서 전화드렸습니다. 자세한 내용 확인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가 0월 0일 날 햄스터 케이지를 구매했는데요. 사용한 지 3일 만에 저희 집 햄스터가 집모양 은신처를 이용하던 중 굴뚝에 얼굴과 이가 끼어 얼굴이…….“


“고객님, 먼저 고객님의 소중한 반려동물이 그렇게 돼서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굴뚝 부분은 개선되어 판매하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위로의 의미로 2천 원의 포인트를 적립해 드리겠습니다. ”


결과적으로 나는 땅콩이를 잃고 2천 포인트를 받았다. 금액만 놓고 보면 그거 받자고 소비자보호원에 민원 넣고 난리를 쳤나 싶지만 내가 원했던 건 안전하지 않은 제품을 판매한 것에 대한 책임 있는 사과였다. 그래봤자 담당 상담원이 써진 매뉴얼대로 읽는 것이 전부였겠지만, 제품을 개선하겠다는 답을 들었으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 이미  땅콩이가 하늘나라로 간 마당에 무슨 보상인들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때의 민원 덕분일까? 그 이후로 동일한 디자인의 햄스터 케이지는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 거 같다. 비슷한 디자인에 집 모양 구조물이 있는 케이지라 하더라도 굴뚝은 막혀 있다. 땅콩이에 대한 사랑과 그를 잃은 슬픔과 분노가 나를 행동하게 했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절대 다시는 햄스터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그 이듬해에 두 마리의 갓 태어난 햄스터를 분양받았고 이 햄스터들은 큰 리빙박스에서 키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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