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와 자유의지
루터의 종교개혁과 에라스무스
종교개혁은 에라스무스가 알을 낳고 루터가 부화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하면 면죄부, 95개조 면죄부 반박문, 그리고 비텐베르크 성당 문이 떠오른다. 개혁의 주인공은 루터였고, 에라스무스는 조연인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이란 책으로 유명해졌다. 교황과 성직자에 대한 심각한 비판을 담고 있는데, 당시 40쇄나 인쇄될 정도로 지식인사회에서 인기를 끌었다.
에라스무스의 교황과 성직자에 대한 비판
그는 이 세상의 원동력이 어리석음이며, 이것 없이는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낳지 않아 이 세상이 유지될 수 없으며, 어떠한 탁월한 업적도 뛰어난 기예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아첨이나 자기애 없이 행복할 수 없고, 최상의 행복은 돈과 노력이 들지 않는 망상에서 비롯되며, 궁극적으로 기독교인의 행복도 광기와 어리석음에 있다고 했다.
나약한 지식인의 소심함 탓인지 우신예찬의 후반부에 가서야 교황과 성직자를 비판하고 있다. 영혼이 연옥에 머무는 시간을 계산하고, 수도사들이 옷의 띠 넓이 등 사소한 규율을 목숨처럼 중히 여기고, 돈을 만질 때 장갑을 끼는 위선적 행위를 비웃었다. 형식논리에 사로잡힌 천편일률적 설교와 고해의 비밀로 신도들을 위협하는 악덕, 그리고 정작 사랑의 실천은 게을리 하는 수도사들을 비난했다.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고 있는(見指忘月) 당시 수도사들의 모습을 희화화한 것이다. 그리고 교황에 대해서도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지만 지금의 교황은 토지, 성읍, 세금징수권, 통행세권리 등을 지키기 위해 불과 칼을 동원해 싸우고 수많은 기독교인의 피를 흘리고 있다”고 당시 율리오 2세를 비판했다. 그는 두려웠지만 할 말을 다했다. 교회 개혁을 위해서였다.
평신도들의 성경읽기를 강조
그는 성경이 그리스도교인의 지침이 돼야하며, 성경읽기가 하느님과 그 이웃을 사랑하도록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성경을 읽는 평신도는 여느 수도사와 마찬가지로 신의 소명을 받은 사람이며, 성직자는 평신도의 성경 이해를 돕는 교육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평신도가 그리스도교인으로서의 소명을 인식하는 것이 교회부흥의 관건이라 생각했다<알리스터 맥그라스, 기독교의 역사>. 한편 당시 카톨릭교회가 공인하고 있던 불가타 성경의 마태복음 4장17절은, “고해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우니라”로 되어 있었는데, 에라스무스는 그리스어 원전에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우니라”로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해하라’란 표현은 교회의 고해성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여 잘못이라 생각했다. 에라스무스는 그리스 성경 원전을 기초로 신약성격을 라틴어로 다시 번역했다. 새롭게 번역된 성경을 바탕으로 루터는 독일어 성경을 만들었다. 에라스무스가 루터의 ‘오직 성경으로’란 외침의 근거를 제공한 셈이다.
교회분열에 반대, 루터와 반목
1517년에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했을 때 에라스무스는 그 개혁사상에 동의를 표했고, 루터도 개혁의 초창기에는 에라스무스를 따랐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급물살을 탐에 따라 루터는 거칠고 공격적으로 되어갔고 카톨릭의 신학체계를 뿌리째 흔들려 했다. 게다가 농민전쟁 등 세상을 전복하려는 극단적 사상과 폭력이 가세하여 체제 붕괴의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에라스무스에게서 지식인의 소심함이 발동했다. 그는 폭력이 두려웠다. 로마교황청의 여러 잘못된 관행은 고쳐야겠지만 사회혁명이나 교회분열은 반대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기득권자였다. 당대 최고의 인문주의자란 명성을 얻고 있었고 라틴어에 능통했으며 세계시민을 지향했다. 그는 유럽 상류사회의 언어인 라틴어가 통용되는 교회제국을 사랑했고, 이 체제가 민족국가로 쪼개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우신예찬에서 어리석음과 광기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자신은 광기가 부족했다.
루터의 광기와 간명한 신학이론
반면에 루터는 이름 없는 수도사출신으로 95개조 반박문으로 갑자기 유명해졌을 뿐이었다. 순간순간이 절체절명인 위기 속에 있었고 교리논쟁에서 밀리면 생사를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물러설 수 없었다. 위기상황에 몰리면 복잡한 상황을 단순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지, 루터는 가장 심플하고 이해하기 쉬운 신학이론을 내놓았다. 루터는 교회개혁이 지지부진한 이유가 기존 교리의 잘못에 있다고 생각했다. 교회의 머리를 당시 사람들은 교황으로 생각했으나 루터는 그리스도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교황의 말이 아니라 성경을 구체적인 삶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기가 없으면 이런 간명한 신학이론을 내놓지 못한다. 이것도 고려하고 저것도 감안하는 어정쩡한 방식으로는 당시 교회의 암세포를 과감히 도려낼 수 없다(快刀亂麻). 루터는 ‘오직 성경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총으로‘ 란 더욱 단순한 구호를 외쳤다. ’오직 성경으로’ 라는 주장에는 에라스무스도 동의했다. 성경읽기를 통해 평신도들의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증가하느냐에 기독교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알리스터 맥그라스, 기독교의 역사>.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 옹호
그러나 ‘오직 믿음’과 ‘오직 은총’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행동하는 양심’이란 말이 있듯이 구원으로 가는 길에는 행위도 중요했다. 믿음은 선행을 통해 보강되어야 하며, 선행이 믿음을 강화해서 더 높은 신앙, 더 확고한 믿음의 경지로 끌어 올린다고 봤다. 성경의 야고보서에도 선행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지 않은가. 불교의 돈오점수(頓悟漸修)도 비슷한 원리라 생각된다. 더욱이 ‘오직 은총으로’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것으로 인간을 중시하는 인문주의자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구호였다. 오직 은총에만 의지한다면 인간의 이성과 의지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에라스무스는 “선택할 자유의지가 없고 인간이 스스로 선해지려고 하는 노력이 없어지면 교육은 무슨 의미가 있고, 성경의 약속들은 무슨 가치가 있느냐?” 고 되물었다<김현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길을 따라>.
루터의 자유의지 부정
이에 루터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론에 근거해서 에라스무스를 반박했다. 종교개혁이 나오기 1천 년 전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의 죄를 이어받은 인간은 신의 구원 없이는 타락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원죄설). 당시 펠라기우스라는 수도사가 원죄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신은 인간의 도덕적 행위에 대해 보상을 내린다며 자유의지를 강조했다. 이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집요하게 반대를 해서 그를 이단으로 단죄했었다<러셀, 서양철학사>.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개심과 개종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전적으로 신의 은총에 의한 것으로 보았고, 우리가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본다면 누구도 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이해할 것이라고 했다<클라우스 헬트, 지중해철학기행>.
루터와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 다툼은 1천 년 전의 논쟁이 다시 점화된 것 같았다.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주장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으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하며, 에라스무스가 인간의 자유의지가 신적이고 영적인 일들에 뭔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전지전능한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김현배,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길을 따라>.
신앙심이 적은 현대인이 볼 때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에라스무스의 의견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 병아리가 안에서 쪼면 어미닭이 밖에서 함께 쪼아주듯<불교의 '줄탁동기(啐啄同機)>, 인간이 착해지려는 노력을 하면 하느님이 은총을 내려주실 것 같다.
그러나 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루터의 주장이 대단히 심오해 보인다. 하느님 외에 어디에도 한눈을 팔지 않는 지극함이 있어야 구원이 가능하고, 착해지려는 마음 자체가 하느님의 구원이 아닐까? 면죄부처럼 신과 거래하려는 불경한 생각이나, 선행을 내세워 신에게 자신의 구원을 권리로 주장하는 마음이 생기면 오히려 구원에서 멀어질 것만 같다. 그래서 불교에서도 선행에 집착하지 말고 잊으라고 하지 않는가(施恩勿念).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행을 강조하면 종교의 역할이 쇠퇴하는 게 아닐까. 유교철학, 스토아 철학 같은 무신론으로 진행될 위험성은 없는 것일까. 자유의지는 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려는 르네상스의 목소리는 아닐까. 현시대의 무신론 확산도 인간의 자유의지, 도덕성에 대한 신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펠라기우스를 이단으로 단죄했는지 모른다.
에라스무스의 광기부족
루터의 광기는 그 시대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라 생각된다. 에라스무스는 이것이 부족했다. 에라스무스는 로마 교황청이 인문주의자들이 지적한 문제점을 스스로 고쳐나가길 기대했으나, 너무나 낙관적이었다. 인간의 악과 이기심을 너무 가볍게 본 것이다. 카톨릭 제국이 기득권을 쉽게 내려놓을 것 같으면 그 많은 종교전쟁은 왜 일어났겠는가. 그래도 에라스무스는 교회의 문제점과 개혁의 필요성을 알린 선구자적 역할을 했고, 이를 실제적인 개혁으로 이끌며 투쟁한 힘은 그 시대에 분노할 줄 알았던 루터의 광기였다.
불광불급으로 대학입시제도 개편을
최근 사교육 카르텔이 언론에 보도되고 얼마 전에는 윤대통령이 킬러문항에 분노해서 수능시험을 고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수능시험에서 대학입시의 모든 A to Z를 다 담을 수는 없다. 수능 외에도 논술, 학생부종합, 실기 등 수험생의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수능은 대학에 들어가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만 보면 된다. 그러려면 개념과 원리의 이해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문제 푸는 기계로 만들어서는 대학에 진학해서 창의력 부족으로 더 발전하지 못하게 된다. 응용과 창의는 기초가 튼튼해야 가능해지므로, 기초를 다질 수 있도록 시험출제 방향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시험문제는 가르친 범위 내에서 출제해야한다. 이것은 무언의 약속이다. 이제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했든가. 광기가 없으면 큰일을 이룩할 수 없다. 분노는 일종의 광기다. 내친김에 광기를 더 발휘하여 대학 입시를 대학자율에 넘겨주는 개혁을 완수했으면 한다. 독재라고 비판받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본고사라는 대학자율이 있었다. 최고의 지성이라는 대학에 자율성을 주지 않고 어디서 자율을 기대할 수 있겠으며, 자율이 없는데 어떻게 창의성과 자유가 있겠는가. 자율을 주면 대학의 부정비리 등이 걱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담지 않을 것인가. 입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을 가르칠 대학의 협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