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서 음악이 산업적으로 제도화되고 국가 전략 자원으로 재편된 때는 1990년대 중반부터다.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과 함께 대중음악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세대적 코드와 메시지를 담는 매개로 부상했다. 동시에 중후반부터 SM, JYP 등 굵직한 기획사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체계적인 산업 구조가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아울러 주변 국가에서도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미 1970~1980년대에도 한국 대중음악 가수들이 미국이나 일본 무대에 서는 일은 왕왕 있었으나 1990년대에는 중국과의 국교 재개로 보다 시장이 넓어졌다. 이에 한국 가수들은 중국과 태국, 대만까지도 진출에 나선다.
대기업들도 한국 대중문화를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보고 육성에 힘을 쏟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영상사업단이다. 1992년 처음 발족한 삼성영상사업단은 소프라노 조수미와 팝페라 가수 임형주를 세계적인 음악가 반열로 올려놨으며, 이문세, 박혜경, 엄정화 등의 앨범도 발매했다. 특히 1998년에는 서태지와 20억 원 규모의 앨범 계약을 체결해 세간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서태지가 공식적으로 은퇴 선언을 하고 2년이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기업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본격적인 지원이 시작됐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문화 산업은 21세기 기간산업이다”라며 “무한경쟁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역, 투자, 관광, 문화교류를 확대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소프트파워 육성 의지를 취임 초기부터 공식화했으며, 이듬해 <문화산업진흥 기본법>이 제정된다. 영화, 방송, 출판, 문화재, 음반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법이지만 문화의 산업적 가치를 인정하고 국가 차원의 지원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부 차원의 문화 산업 육성 의지는 이명박 정권이 이어받는다. 김대중 정권이 한국 대중음악 육성의 기반을 다졌다면, 이명박 정권은 이를 세계화하는 데 힘을 썼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한류를 단순한 대중문화 현상으로 보지 않고, 음식과 일상문화 등 생활양식 전반을 포괄하는 문화적 흐름으로 규정하며 국가 차원의 개입을 강화했다.
이명박 정부는 한류의 발전 과정을 세 단계로 구분해 정책적으로 접근했는데, ‘한류 1.0’은 1997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류가 태동한 시기, ‘한류 2.0’은 2010년대 초반까지 K-POP과 아이돌 문화를 중심으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확산이 이루어진 시기로 정의되었다.
또한 정부는 ‘한류 3.0’을 통해 한류의 외연을 전통문화와 예술, 생활문화로 확장하며, 대중문화를 넘어선 ‘K-컬처’ 개념을 제시했다. 이 단계의 핵심 목표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한류가 아닌, 전 지구적 확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해외문화원, 세종학당 등 한국어·문화 교육기관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콘텐츠를 국가 브랜드 향상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병행되었다.
예컨대 지금도 미국 맨해튼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는 뉴욕한국문화원이 이명박 정부 당시 결정한 ‘한류의 세계 진출’ 사례다. 당시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뉴욕 맨해튼 중심부의 주차장 부지 590제곱미터가량의 부지를 1천580만 달러, 약 200억 원에 샀다. 당시 일각에서는 거금을 들여 미국 땅을 산다는 비판을 제기했으나, 정부는 뉴욕 한복판에 한류의 거점을 세우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부지 매입 후 15년이 지난 2024년 완공된 뉴욕한국문화원 신청사는 이제 한국 대중문화는 물론 전통, 한글까지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스마트폰의 보급과 유튜브의 폭풍적인 성장이 케이팝 세계화의 기반이 됐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 성공을 거두며, 한국 대중문화는 특정 지역의 유행을 넘어 전 지구적 담론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이후 BTS, 한국 드라마와 예능, 문학 등 다양한 장르에서 한류가 확장되면서, 한국 문화는 단순한 소비 대상이 아니라 ‘동경의 문화 모델’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K-POP이 확보한 영향력은, 단지 산업적 성공이 아니라 한국이 문화적 매력과 서사로 세계를 설득하는 연성권력의 전환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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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림. (2023년 1월 17일). [기업 이모저모] 조수미·임형주의 아버지, 故 이건희 회장. 연합인포맥스. https://news.einfomax.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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