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연예 기획사의 등장, 그리고 서태지

by 나사

가수와 MC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던 이수만은 1981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당시 정권의 언론통폐합이 주요 이유였다. 1980년대 미국은 MTV의 등장으로 상업주의 대중음악 문화가 꽃을 피우던 시기였다. 현란한 춤과 무대, 그리고 뮤직비디오로 대표되는 MTV는 음악을 ‘듣는’ 문화에서 ‘보는’ 문화로 확대한다. 마돈나, 본조비, 마이클 잭슨 등이 MTV 르네상스기의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음악의 패러다임 전환을 고스란히 목도한 이수만은 귀국 후 1989년 한국 최초 연예 기획사인 SM기획을 창립한다.


SM엔터의 첫 대표 가수는 현진영이다. 1990년 현진영은 구준엽과 강원래를 백던서로 구성해 ‘현진영과 와와’로 데뷔한다. 특히 1992년 발매된 두번째 앨범 <뉴댄스 2>에서는 <흐린 기억 속의 그대>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 노래는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배경음악으로 활용되어 재조명받았다.


1990년대 초 등장한 현진영과 서태지와 아이들은 한국 대중음악의 판도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전까지 포크송, 민중가요, 트로트가 주류를 이루었다면, SM기획과 함께 나타난 이른바 ‘미국물 먹은 형들’은 힙합을 중심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데뷔곡 〈난 알아요〉로 기존 질서에 균열을 냈고, 힙합의 핵심인 비판 정신을 한국 사회로 옮겨왔다.


이들은 두 번째 앨범에서 〈하여가〉를 통해 국악과 힙합의 융합을 시도했다. 제목부터 이방원의 시조 ‘하여가’에서 따왔으며, 가야금·대금·해금 등 전통 악기의 연주를 도입했다. 이 실험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한국 힙합에서도 국악적 요소를 차용한 곡들이 등장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국힙’이라 부르기도 한다. 서태지 이후 가장 대중적으로 힙합에 국악적 요소를 차용해 호평을 받은 사례는 BTS의 랩퍼 슈가의 솔로 앨범에서 발매된 <대취타>다. 실제로 슈가는 서태지 음악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기도 했다.


‘문화 대통령’으로 불리던 서태지는 하나의 신드롬이었다. 그의 영향력은 1995년 발표된 〈컴백홈〉에서 절정에 이른다. 서태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이 곡은 가출 청소년을 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자 이제 그 차가운 눈물을 닦고 컴 백 홈>. 체제 순응이라기 보다는 자기 존재에 대한 신뢰를 갖고 돌아오라고 하는 이 노래는 청춘을 향한 위로와 자기 포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1993년 현진영은 마약 사건으로 구속됐고, 서태지는 정부의 검열에서 한계를 느끼고 1996년 해체를 선언했다. 그들의 자리는 비었지만, 1990년대 초중반 그들이 일으킨 파장은 이미 대중음악계의 흐름을 뒤바꿔놨다.



<참고 문헌>


배효주.(2017년 9월 21일). 방탄소년단 “대선배 서태지, 우리를 아들이라고 불러”. 뉴스엔. https://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709211501066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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