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인도는 우기다. 벵갈루루는 비교적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곳이지만 그래도 이 시기에 비라도 내리면 안 그래도 복잡한 거리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버린다. 평소 도로에는 쓰레기가 넘쳐난다. 오늘같이 비라도 오면 쓰레기로 인해 물이 잘 빠지지 않아 도로가 온통 물바다가 된다. 가까운 이웃 동네에는 불어난 물 때문에 보트를 타고 이동을 하기도 한다. 해마다 느끼지만, 넘치는 쓰레기들을 좀 어찌하면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으련만… 예산의 문제인지, 의식의 문제인지, 정부에서도 어쩌지 못하는 현실인 건지, 이것 또한 문화의 차이라 여기며 씁쓸하게 두고만 봐야 하지만 답답하기 그지없다. 비는 마치 하늘이 땅을 위로하는 것처럼 내린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고, 마음마저 무겁게 만든다. 도로는 물속에 잠긴 듯이 숨을 쉬지 못하고, 차와 오토바이, 릭샤들은 제각기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서로를 막고 있다. 빗물이 차오를수록, 쓰레기들은 도로 위를 떠다니며 도심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 누구도 이 혼란을 멈출 수 없다.
매년 반복되는 이 풍경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매번 그 씁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쓰레기와 물이 뒤섞인 길을 보며, 이곳 사람들의 삶과 내가 살아온 삶이 교차하는 순간을 느끼게도 한다. 언젠가 나도 이 거대한 도시에 조금 더 융화될 수 있을까? 아니면 늘 이방인으로 남게 될까? 답답한 마음이 비에 묻혀 흘러내리는 듯하다.
새벽부터 알람이 울렸다. 비가 많이 와서 도로가 통제되었기에 학교 수업은 온라인으로 모두 전환한다는 내용이다. 또 짜증이 확 밀려왔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인도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한국인은 드라이버를 고용하는데 그렇지 않고서는 복잡한 도로의 운전이란 상상도 할 수 없을뿐더러 사고라도 나면 골치 아픈 상황도 생기기 때문이다.
인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해, 이 무렵의 일이다. 한 날은 드라이버가 연락도 없이 오지 않았다. 중요한 모임이 있어서 기다리다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밤늦게야 연락이 와서는 사는 동네는 물론 집까지 물에 잠겨 고생했다는 것이다. 믿지 않았다. 드라이버와 메이드들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내용은 이미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집안에 어른이 돌아가셨다는 핑계는 하도 써먹어서 면접 시 집안 어른 호구조사를 엄격히 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돌 정도니 말이다. 아무튼 거짓말이라 확신한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화를 내며 드라이버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다음날 신문 기사를 통해 나는 실제 드라이버의 동네가 물난리가 났다는 것도, 임시로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의 거주지가 없어져 대거 이동했다는 내용도 접하게 되었다. 드라이버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음에 너무 미안했다.
그가 늦은 밤에서야 전한 이유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온통 드라이버의 부재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것이다. 거짓말이라고, 그저 또 하나의 핑계일 뿐이라고. 하지만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진실은 나의 감정을 깊이 되돌아보게 했다. 그가 겪었을 고난을 상상하며, 미안함이 가슴에 차올랐다.
이 낯선 도시에서 삶은 단순하지 않다. 비가 내릴 때마다 잠기는 도로처럼, 마음속에도 무언가가 쌓여가고 있었다. 물과 함께 밀려드는 혼란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상처 주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비가 그치면 언제나 깨끗한 하늘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듯, 그날의 오해도 결국 맑게 풀려버렸다.
비가 그치면, 세상은 더 맑아진다. 나는 낯선 곳에서 또 하나 배운다.
우리는 모두 같은 하늘 아래 서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