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팔마스 초기 정착기에 경험한 어이없는 일

뷔페에서 배고프게 나온 사연

by 여행하는 삶

​1. 스페인어 무지에서 비롯된 서막

주말인 오늘 점심, 라스팔마스에 줄 서서 먹는 일식집이 생겼다는 핫한 소문을 듣고 남편과 출동했다.

이름은 'DAIWA'.

(간판에 buffet라고 쓰여있지만, 남편은 음식점 개념으로 생각했고, 난 그 글자를 못 보고 지나친 게 이날의 큰 실수였다)


"주말이니 맛있는 것 좀 제대로 먹어보자!" 하고 비장하게 갔는데, 입구부터 인테리어 포스가 장난 아니었다. 다행히 웨이팅은 없어 자리를 안내받고 앉았는데, 메뉴판이 없었고 테이블 위 QR코드를 찍는 시스템이었다.


폰으로 접속하니 메뉴 버튼이 세 개가 떴다.

​Lunes a Jueves (월~목)

​Cenas, fin de semana (주말/디너)

​Recoger en el local


​스페인어 까막눈인 내 눈에 세 번째 탭의'Local'이라는 단어가 꽂혔다.

"오, 'Local'? 이건 분명 '현지 식재료'로 만든 스페셜 메뉴인가 보다!"

싱싱한 현지 해산물로 만든 프리미엄 요리라고, 스페인어 초보자다운 당당한 착각을 한 것이다(나중에 알고 보니 Recoger en el local"은 "매장에서 픽업하기 (포장 주문)"이라는 뜻)


​기대감에 부풀어 세 번째 버튼을 눌렀는데, 메뉴마다 가격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역시... '로컬' 재료라 그런지 비싸네. 퀄리티가 남다른가 봐."

​사실 내가 본 건 '포장 전용 메뉴판'이라 단품 가격이 적혀 있었던 건데, 나는 그걸 '고급 로컬 식재료 메뉴'라서 비싼 거라고 철석같이 믿어버렸다.


2. ​그때부터 우리 부부의 눈물겨운 '긴축 재정 식사'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비싼 로컬 메뉴를 음미하듯 세상에서 가장 소식하는 사람들처럼 주문했다.

유럽 외식의 살인적인 물가 수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맛이나 보게 오이 샐러드 하나랑, 딤섬 딱 두 개만 시켜보자."

​맛은 있었지만, 클릭 한 번 할 때마다 "라스팔마스에서 이 정도면 꽤 괜찮은데?"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 딤섬이 한 알에 얼마지...?'


근데 이상하게도 음식이 미니어처처럼 조금씩 나왔다. 이때라도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결국 배는 덜 찼지만, "이 정도 고급 식당에서 더 시키면 예산 초과다"라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3. "호구당했다!" 남편의 헛웃음과 뒤늦은 깨달음

예산 때문에 배고픈 ​식사를 마치고, 남편이 계산을 하러 카운터로 갔다.

그런데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남편의 "껄껄껄!" 하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돈 많이 나왔을 텐데 왜 웃지? 실성했나?'

나에게 다가오면서 남편이 계산서를 흔들며 말했다.

"여보, 우리 오늘 완전 호구 당했다."


영문을 몰라 쳐다보니 남편이 덧붙였다.

"여기 뷔페인 것 같아. 우리 괜히 소심하게 먹었어!"

계산서에는 음식값이 아니라 1인당 얼마라는요금과 추가 음료값만 찍혀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QR코드를 찍어 보았다.

아까는 무시했던 두 번째 버튼, '주말 메뉴(Cenas, fin de semana)' 탭을 눌러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러자 특정 고급 메뉴 옆에만 'Suplemento(추가 요금)'라는 스페인어 단어가 적혀 있는 게 보였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특정 메뉴에만 '추가 요금'이 붙는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나머지는 다 기본료에 포함된 '공짜'라는 뜻 아닌가!"


​'Suplemento(추가요금)'.

이 단어 하나만 알았더라면...

이 글자만 눈에 들어왔더라면...


우리는 뷔페 요금을 다 내고, '포장 메뉴판' 가격에 쫄아서 몇 가지 음식만 먹다 나온 셈이 되었다.


​4. 한국과 다른 유럽식 주문형 뷔페의 함정

​그제야 한국과 이곳의 뷔페 시스템 차이가 뼈저리게 다가왔다.

한국 뷔페는 입장하자마자 눈앞에 음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푸드 바(Food Bar)'가 보여서 "아, 마음껏 가져다 먹으면 되는구나"라고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반면 이곳 유럽의 주문형 뷔페(All You Can Eat)는 '앉아서 주문하거나 태블릿으로 시키는 방식'이다(물론 유럽의 한식뷔페는 가져다 먹는 시스템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유럽에 있는 일식뷔페는 대부분 주문형 방식이 많다).


음식을 가져다 먹는 시스템이 아니니 일반 레스토랑과 구분이 안 가고, 메뉴판에 가격(포장용이었지만)이 적혀 있으니 이런 방식의 뷔페일 거라곤 상상도 못 한 것이다.

​결국 뷔페 가격 다 내고 몇 가지 음식만 먹고 나오며 '기부 천사'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억울함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공복감이었다. 명색이 무제한 뷔페를 다녀왔는데 배가 고프다니!

우리는 마치 홀린 듯 인근 카페로 들어가 당근 케이크를 주문해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이게 다 스페인어를 몰라서 생긴 오해와, 유럽의 낯선 식문화(주문형 뷔페)를 몰라서 벌어진 일이었다.

무식이 잘못이라지만, 오늘 일은 정말 라스팔마스 정착기 중에서도 역대급 '이불킥' 감이다. 그래서 남편과 케이크를 먹으며 다짐했다.


​"시스템 파악은 끝났다. 다음엔 제대로 작정하고 와야지. 부페야 기다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