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고원'은 없다 : 광기와 패닉이 반복되는 이유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를 읽고

by 겨울호랑이

우리는 왜 반복해서 속는가


최근 KOSPI가 4000포인트까지 급등하고, 오라클과 브로드컴으로 인해 AI 거품론이 제기되며 나스닥 시장이 폭락하는 등 최근 금융시장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보며 문득 한 권의 고전을 떠올리게 됩니다. 찰스 P. 킨들버거의 <광기, 패닉, 붕괴 : 금융위기의 역사>입니다. 자고 나면 오르는 자산 가격에 조바심이 나다가도, 어느 순간 덮쳐올 붕괴의 공포에 밤잠을 설치는 우리에게 이 책은 서늘한 질문을 던집니다. 왜 인류는 수백 년 동안 비슷한 패턴의 파동을 겪으면서도 매번 '이번은 다르다'며 역사라는 거울 앞에서 매번 눈을 감아버리는 것일까요?


신용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마약


저자 킨들버거는 금융위기의 본질을 '신용 공급의 변동'에서 찾습니다. 호경기라는 파티가 시작되면 신용은 샴페인처럼 넘쳐흐르고, 사람들은 자산의 미래 가치에 대해 소박한 기대를 넘어선 '광기'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광기는 현재의 자산 가격이 먼 미래 시점의 가치와 일관되지 않을 정도로 상승하는 현상을 동반한다.... '이보다 더 좋았던 적이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는 순간, 거품의 파열은 시작된다."


흥미로운 지점은 저명한 경제학자 어빙 피셔마저 대공황 직전 **"주가가 영원히 하락하지 않을 고원에 다다랐다"**고 단언했다는 사실입니다. 지성마저 마비시키는 이 집단적 최면은 차입(leverage)을 통한 과다한 유동성이 시장을 지배할 때 발생합니다. 글로벌 금융 환경에서 신용의 파도는 더 이상 국경에 가로막히지 않습니다. 결국, 감당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선 차입 거래가 시장 전체로 확산될 때, 우리는 '공포'라는 이름의 또 다른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패닉, 그리고 백마 탄 초인의 등장


경고음이 울리는 순간, 시장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립니다. 이를 킨들버거는 '이유 없이 엄습하는 공포', 즉 패닉이라 부릅니다.


"패닉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유동성이 낮은 자산에서 빠져나와 현금으로 달려간다. 시장 유동성의 다수를 차지하던 '신용'이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거품은 꺼진다."


이 아수라장을 정리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바로 **'궁극적 대여자(The Lender of Last Resort)'**입니다. 국내에서는 중앙은행이, 국제적으로는 헤게모니 국가가 그 역할을 자처합니다. 이들은 대중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자산을 투매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무제한에 가까운 유동성을 공급하며 소방수 역할을 수행합니다.


진통제가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 있는가


킨들버거는 위기를 진화할 '탄력적인 통화 공급'을 강조했지만, 책을 덮으며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1971년 닉슨 독트린 이후 금이라는 실물과 화폐의 연결고리가 사라진 오늘날, 무제한적인 신용 공급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과연 지속 가능한 방식일까요?


우리는 위기가 올 때마다 '백마 탄 초인'처럼 나타날 유동성 공급책이나 금리 인하만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하지만 화폐라는 진통제로 당장의 통증을 잊는 것이 시스템의 근본적인 치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금융 불안의 본질은 결국 '신뢰의 상실'입니다. 시스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보다는, 자본주의 시장의 생리를 냉철하게 들여다보는 개인의 성찰이 더 필요한 시점입니다. 광기와 패닉 사이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내 자산의 수치뿐만 아니라, 시장을 바라보는 흔들리지 않는 관점이 아닐까요? 결국 킨들버거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위기를 피하는 기술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매몰되지 않을 지적 단단함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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