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와 통합이 바탕이 된 공동체주의의 실천과 노력
정보통신의 발달은 소셜 네트워크의 확산과 함께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가짜뉴스가 가득 차고 공정성을 잃은 정보가 난립하면서 이러한 기대는 이미 허물어져 내리고 있다. 심지어 극단주의 테러세력이나 분리주의자들의 책동이 손쉽게 대중에 파고들어 세력을 키우는 수단으로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지난 미국 대선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한 사람의 불복과 선동이 사회를 극단적으로 분열시키고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음도 보여주었다. 다수의 참여와 선택 그리고 결과에 대한 수용이 민주주의가 성립될 수 있는 근간이다. 그러나 선택적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는 양립된 민심이 선동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민주주의 가치가 너무도 쉽게 부서져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를 증폭시켰다.
이슬람국가 IS의 모집과정에서 세계의 청소년과 청년을 상대로 SNS를 통해 전사를 모집한 과정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IS는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로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거점을 시리아로 옮겼고 2014년 6월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과 인근 유전 지역을 점령하면서 엄청난 기세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IS의 승승장구는 2014년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동맹군이 IS 격퇴에 착수하면서 전세가 뒤집혔다. 2017년 7월 주요 거점도시였던 이라크 모술에서 약 3년 만에 쫓겨났고 3개월 뒤인 10월에 사실상 수도 역할을 하던 시리아 락카에서 패하여 세력이 급속히 약화했다. 이 과정에서 SNS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는데 실질적으로 이에 참여한 외국인의 수가 전통적인 서구유럽을 포함하여 100여 개국 3만 명에 달한다. 심지어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있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중국의 링링세대는 정보화 세대이다. 중국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중국 국가중심주의를 맹신하는 신세대를 이루고 있다. 진취적인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민주화를 이루었던 우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의 내셔널리즘은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 수준으로 세뇌되어 있다. 국가권력이 SNS를 통해 정치적 통제 수단으로 이용되는 대표적인 예가 된 것이다. 일본의 혐한 인터넷 세력 역시 마찬 가지다. 심지어 일본은 무수한 정보의 홍수를 통해 청년세대를 정치 무관심에 놓이게 함으로써 우민화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정치 현실을 돌아보자. 한국은 IT 강국이다. 그러한 만큼 SNS가 실생활에 급속히 파고들고 있으나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양극화 해소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해방이후 우리에게 직면했던 좌·우의 대립은 그 그림자가 너무나도 깊게 남아 있어 진보와 보수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무엇이 보수이고 무엇이 진보인지도 불분명한 정치적 상황을 만들고 국민은 다시 이를 흉내 내어 진영을 나누고 있다. 스스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국민적 정서가 과연 올바른지 묻고 싶다. 양당정치를 구축한 미국과 같이 차라리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를 구분하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표현이 된다. 사실 이러한 미국의 현실도 코미디에 가까운 것이지만 요즘 젊은 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웃픈 과거모습이 이와 비슷하였다. 바로 이웃하고 있음에도 윗동네와 아래동네를 구분하여 이유 없이 아이들을 패싸움에 끌고 다녔던 오래지 않은 우리의 과거 모습이다. SNS의 확산은 이러한 갈등의 극단적인 요소를 심화시키는 수단이 되고 있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SNS의 확산은 인간에게 유익한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도 사회가 내재한 모든 문제가 증폭되어 나타나는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가 불완전한 요소를 수용하여 발전해야 한다는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인류역사의 모든 정치권력은 이러한 인간의 불완전한 요소를 이용하려 시도하여 왔고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되어 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발전은 이러한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출발하는 것이다. 인류는 완전한 민주정치를 실현한 적도 없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역사의 과정에 놓여 있다. 미국이나 서구열강이 최초의 대통령제를 도입하고 삼권분립을 완성하였다고 하여도 그들의 민주주의는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무조건 따라하여야 할 이유도 없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SNS의 확산은 모든 정보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가능하게 하였고 또한 이를 요구하고 있는 시대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빅브라더의 출현을 경계해야 한다. 빅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용어로 정보의 독점과 감시를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는 권력을 말한다. 긍정적인 면에서는 사회의 보호적 감시를 뜻하지만 부정적으로는 음모론에 입각한 권력자들의 사회 통제 수단을 뜻한다.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빅브라더의 출현은 정치권력집단과 대자본이 연계된 정보의 통제에 있으며 이를 통한 대중을 의도하는 방향으로 통제하려는 시도이다.
자본의 정보독점을 경계하기 위하여 데이터의 임의 조작을 금지해야 한다. 다수의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수요하는 형태의 온라인 플렛폼이 상업적 목적과 그 외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를 방지해야 한다. 다수의 사람이 제공한 정보가 공공의 자산으로 인식되어야 하고 개인의 자산으로 인식되는 현상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에서 온라인 플랫폼이 갖는 상업적 행위의 범위제한을 분명히 하는 관련법이 시급히 구체화되어야 한다.
국내의 소셜 미디어 경우도 가입자를 기반으로 사업의 종류를 확대하고 있다. 다수의 가입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고객의 이동 동선을 활용하며 개인에 대한 맞춤형 서비스까지 가능한 모든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온라인 쇼핑, 대리운전, 택시호출, 금융, 배달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사업에 진출하여 우월적 지위를 통한 시장독점을 노리고 있다. 이에 관한 독과점 시장 방지에 관한 법률이 필요하고 그 한계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데이터의 임의 조작이다. 검색수를 임의 조작하여 게시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수집된 개인정보를 임의로 사용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들만의 알고리즘을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중을 유도하려는 시도를 제한하여야 한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을 제한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기업의 대항에도 구체적인 방안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행정이 기술적 특허를 침해할 수는 없으므로 해당기술을 통한 결과적 상황을 신고하고 이에 대한 활용여부를 심사할 수 있어야 하며 신고 되지 않은 결과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이 정치적 의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언론과 특정사이트의 유착관계를 없애야 한다. 언론기관과 특정사이트 간 모든 계약 관계와 상호 출자가 없어야 하는 독립적 관계를 가져야 한다. 특정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언론 중심의 상단링크는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이 또한 데이터의 임의 조작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수의 거짓정보를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역으로 특정정보를 제한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하여 특정정치집단에 이용될 여지를 주는 것이기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소수의 필요정보가 사장될 위험성도 존재한다. AI의 기술적 발전은 인간에게 쉽고 용이한 결정을 하기에 편리한 수단이 되는 것이지만 이 또한 특정한 집단에 종속되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다수 의결과 소수 의견 존중은 영원한 숙제이다. 다수의견이 반드시 옳을 수도 없고 소수의 의견이 그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절차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인내이다. 거짓정보나 그릇된 정보가 제한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규명하고 제한하는 기능이 스스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그릇된 정보가 통제될 수 있는 국가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다수가 이를 제기하면 독립된 국가기관이 신중히 이를 검토할 수 있는 제도이다. 현재의 정보통신심의위원회를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 기능을 확대하여 대법원 산하의 독립기관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보통신정책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느끼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민주주의 사회는 국민이 다스려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국민 스스로가 자신을 다스리는 나라이다. 그 답은 민주시민의 정치참여와 지방자치의 확대를 통해 이룰 수 있다. SNS에 의한 양극화의 위험성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국민 스스로 정치적 책임을 느끼고 자신의 발언과 표현에 신중함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과거에 비하면 거의 모든 국민이 삶의 기본이 되는 의·식·주 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된 선진 국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모든 개인이 행복하고 재미있고 건강한 삶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공유되어지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문제가 정치의 핵심주제이다. 자신의 정치적 발언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삶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정체 없는 동네싸움 수준의 패거리 싸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