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와 통합이 바탕이 된 공동체주의의 실천과 노력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전염병과 함께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의학이 발달된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중세 스페인이 중남미를 정복한 과정에서 전염병의 위험성을 극단적인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었고 인간사회에 이러한 전염병의 유래에 대한 중요한 과제를 오랫동안 던져 주고 있었다.
피사로의 스페인 군대가 잉카의 수도 한복판까지 쳐들어와 주민들을 죽이는 학살극이 일어나는 중에도 잉카의 황제 반대파들은 상황을 방관만 하고 있었다. 자기들의 적인 황제와 귀족들을 이방인인 스페인인들이 대신 죽여주니 자신들로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정적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긴 것이었다. 피사로는 잉카 제국을 공격했을 때 황제를 인질로 삼아 중앙 권력의 상심한 그들을 손쉽게 각개격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몇 안되는 스페인 군대가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중요한 이유로 스페인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이 아즈텍과 잉카를 멸망시킨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일만년 전, 베링해협이 갈라지면서 신대륙에서는 오랫동안 인체에 치명적인 세균이나 전염병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즈텍인들은 매우 깨끗한 환경을 유지했고 여기를 방문한 스페인 병사들도 감탄할 만큼 위생적이었다. 잉카인들이 고원지대에 살았던 환경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하였다. 하지만 유럽에서 온 스페인인들은 이와는 반대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야만인이라고 깔보던 신대륙의 원주민들보다 훨씬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지냈고 덕분에 평소에도 온갖 전염병에 시달렸다. 역설적으로 이런 부분이 신대륙 정복전쟁에서 강점으로 작용하여 스페인 병사들의 몸에 붙어 있던 병균들이 원주민들에게 치명적인 살인 무기가 된 것이었다.
인류역사에서 전염병은 인류의 농경생활과 연관되어 있다. 우리가 정착해서 농경 생활을 하면서부터 굉장히 잦아졌다라고 많은 고고학자들이 말한다. 10명에서 50명 사이 정도가 무리를 지어 다닌 수렵경제의 사람들은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걸린다 해도 순식간에 다 죽어 버리기 때문에 그 바이러스도 그 부족과 함께 같이 소멸되어 버렸다. 그러나 농경사회는 농사를 지을 때 수백명 또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노동력을 합쳐 농사를 짓기 위해서 마을이나 도시를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도 한 명을 죽인 다음에 다음 숙주로 계속 이동하면서 연명할 수 있었기에 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 인구 밀도가 높아질수록 펜데믹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농경사회의 인간이 동물과 훨씬 더 가까이 좁은 공간에서 사는 것도 원인이 된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고농축 탄수화물을 많은 동물과 같이 나눠 먹는다. 예를 들어 소나 말들과 농가에 숨어 들어온 쥐, 말 또는 소에 피를 빨아먹는 벼룩이나 빈대, 파리 등도 농장에서 인간과 같이 생활을 하게 된다. 이렇게 인간과 동물이 가까이 생활하면서 인수 공통 감염병, 즉 사람과 동물을 오가면서 살아남는 그런 미생물들이 창궐하게 된다. 게다가 이제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개간을 하기 위해서는 야생동물이 이미 살고 있는 서식지를 파괴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전에 접촉하지 않았던 동물과 접촉을 하게 되고 그 동물에서 살고 있던 전염병이 인간으로 옮기기 때문에 농경사회가 수렵사회보다 훨씬 더 전염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또한 농경사회는 사람들이 이동을 하게 된다. 대체로 한 가지로 자기 동네에 맞는 작물만 농사를 짓고 나머지는 교역을 통해서 물건을 얻게 된다. 국가 같이 마을을 초월한 큰 정치 집단은 군대가 이동을 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접촉을 하게 한다. 그러면서 한 문화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다른 문화로 퍼져 펜데믹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지는 것이다.
서구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펜더믹 중에 하나로 ‘안토니우스 역병’이 있다. 이는 160년경에 로마에서 창궐한 전염병이다. 로마에서 수백만 명의 죽었을 것으로 추정이 되고 심지어 한 기록에 따르면 로마에서 2천 명이 하루에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훗날 이 전염병은 로마에서만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중국의 한나라에서 이 로마의 팬데믹과 비슷한 시기에 역병이 돌았다는 기록이 있고 그 역병의 징후가 로마에서 돌았던 병과 상당히 유사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로마도 수많은 도시들이 발전을 하면서 살림을 파괴하고 농경이 고도화되고 있었고 한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거대 정치체제가 만들어지면서 마을 간의 교역이 활발해 지고 심지어 실크로드나 인도양 무역을 통해 각 대륙이 연결되고 있던 시대이다. 그리고 인구가 굉장히 팽창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것은 흑사병이다. 중국부터 유럽까지 거의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세계 인구의 3분의1에서 반 정도가 사망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었다. 이 전염병은 처음으로 기록된 것이 카파라는 흑해 있는 동네에서 몽골 군대가 생물학전을 하면서 유럽쪽으로 전해졌다. 이 카파가 항복을 하지 않으니까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갔다가 투석기로 던져 그 마을 안에서 또 흑사병이 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흑해와 유럽 사이의 교역을 담당하던 제노아 사람들이 배를 타고 유럽으로 들어와서 유럽을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또한 프랑스와 독일의 원시림들이 이 시대에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라고 할 정도로 환경파괴가 굉장히 심하였고 경제가 고도화되던 시기와 일치했다. 인구가 굉장히 많이 늘고 있고 몽골이 개척한 길이 새로운 무역로가 되면서 동 서양 사이의 교류가 굉장히 활발하여졌다.
이러한 유라시아의 오랜 내성은 면역력이 없는 남미의 원주민 수천만명을 한순간에 전멸시켰다. 스페인 군대에 의해 전파된 천연두는 기원전 12세기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파라오였던 람세스 5세의 미라에도 흔적이 발견된 만큼 아주 오래된 전염병이 바로 천연두였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공기를 통해 매우 빠르게 전파된 것이었다.
이제 21세기는 전에 없던 굉장히 특이한 변수가 작용하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미래에 대하여 과연 우리가 대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다. 기후 변화는 우리가 전에 접촉하지 못했던 바이러스를 접촉하게 될 확률을 높여 놓는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팔마 프로스트(영구동토) 문제이다. 팔마 프로스트는 시베리아나 북극의 근접한 지역에 있는 영구적으로 동결되어 있는 땅을 말한다. 시베리아의 기온이 지구온난화로 올라가면서 수만 년 동안 접하지 못해 더 이상 면역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다시 나오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시베리아의 순록이 어느날 떼죽음을 당하기 시작했는데 과학자들이 연구를 한 결과 팔마 프로스트 안에 얼어붙어 있던 수만년 전의 탄저균이 순록 떼를 초토화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인류가 전에 본 적 없는 유전배열을 가지고 있는 병균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콜레라는 인간에 의해 통제된 대표적인 질병이다. 그리스어로 설사 라는 뜻이다.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통해 감염이 되고 급성 설사로 인한 탈수 때문에 사망에 이르는 병이다. 원래는 인도의 풍토병이었지만 영국의 식민 지배로 유럽에 유입되어 인구가 대도시로 집중되었던 산업혁명 당시의 심각한 상·하수도의 오염 등이 약 10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하였다. 그러나 콜레라는 아직까지도 완전히 근절되지 않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질병이다.
에드워드 제너에 의해 개발된 종두법으로 천연두도 현재는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그리고 현대의학의 발전은 많은 종류의 백신과 치료약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왔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목숨을 빼앗아간 전염병인 결핵은 현재에도 매년 800만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하고, 그 중 10% 이상이 사망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매년 3만 5천명의 새로운 결핵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흑사병 앞에서는 신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종교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1918년 발병한 스페인 독감, 1968년 홍콩독감, 조류독감 등 바이러스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지금도 미국에서만 매년 3만명 이상이 독감으로 사망한다.
아마도 인류가 멸망한다면 이러한 전염병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류는 그것에 적응하는 인류가 다시 생겨나기 때문에 한꺼번에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막연한 공포심에서 깨어나야 한다. 현실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희생을 어떻게 감수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연구해야 한다.
현대사회는 병을 명명하고 치료약을 만드는 행위가 자본주의의 정점에 서 있다. 이는 사실이 왜곡되고 국제적 거대자본에 종속되어온 세계의료계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나라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사실을 규명하는 것이 과학이지만 이러한 전문적 영역은 또한 사실을 호도하는 방법으로 활용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었다. 과학적 결과는 실험자의 의도에 따라 결과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가디언 지에 따르면 중국 과학자들은 무안에서 바이러스의 첫 인간 대 인간 전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논문을 유명 학술지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염병 사태의 기원을 밝히는 것은 복잡한 과학 문제로 엮으면서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 정치적 전략이 되고 있다. 중국에서 나온 전략 치고는 상당히 치밀하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중국은 최근 사이가 좋지 않은 국가들에게 감염병 발원지라는 어처구니없는 누명을 씌우려는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2020년 11월 28일 중국 과학원 상하이 생명과학 연구원 선 리딩 박사팀은 인간 전염은 인도나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했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균주에 변이가 적을수록 바이러스의 원형과 가깝다고 판단해 17개국 균주에 변이 횟수를 찾았다. 그 결과 호주, 방글라데시, 인도, 그리스, 미국, 러시아 등 8개국 균주에 변이가 가장 적었고 이 가운데 균주에 다양성이 가장 큰 인도와 방글라데시에서 첫 사람 감염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연구진은 지난해 5월 인도의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을 유행병 촉발 원인으로 꼽았다. 결국 국경분쟁으로 최악의 상황에 처한 인도를 저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WHO의 행태 또한 국제적인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간 국제적 대규모 제약회사의 후원과 지원으로 유지되어 왔으며 일부 국가의 입김과 정치적 목적에 의해 공정성을 침해당해왔기 때문에 신뢰를 잃은 지가 오래되었다. 특히, 이번 펜데믹 상황에서 중국의 입김에 의해 펜데믹을 초기에 대응하지 못한 WHO의 책임은 국제적인 심각한 비판에 처해 있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에서 우리의 갈 길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그것은 이번 펜데믹을 통해 우리나라가 보여준 대응방법을 앞으로도 지속시켜 나가고 그 방안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질병관리청의 조직을 더욱 더 확대 개편하여 나가야 한다. 그리고 식약청과의 관계는 상호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하여야 한다. 과학계은 단순한 하나의 결론을 가지고 정책을 수립하기가 어렵다. 하나의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론이 항상 양립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정책의 중대한 혼란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기 때문에 질병관리청은 민간 학계의 다양한 학설을 수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통합관리하여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펜데믹을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국민의 자발적인 협조이다. 정부가 분명하고 확실한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이를 신뢰하고 공감할 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이번 펜데믹 상황을 통해 국민 모두가 확실하게 인지하게 된 중요한 성과이다. 투명한 정보 공개가 국민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보다 세밀한 펜데믹 상황에서의 매뉴얼을 발전시켜야 한다. 과거의 역사처럼 이번 펜데믹도 많은 상처를 남기고 지나갈 것이다. 우리는 지나 온 시간을 복기하여 새롭게 대응 메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전염병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부터 사회 전반에 걸친 경제, 노동, 복지에 이르기 까지 모든 대응방법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