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와 통합이 바탕이 된 공동체주의의 실천과 노력
정치권력이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를 부정한다는 것은 권력의 명분을 잃게 되는 것이고 심지어 독재나 권위주의 국가권력조차 이를 부정하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 보면 사실상 다르다. 특정한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소수의 이익과 이해관계로 얽힌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결과가 정치권력을 만든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민주사회나 권위주의사회나 그 속성은 같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권위주의 권력과 민주권력의 확연한 차이는 국민의 자유의지의 실현에서 찾게 되는 것이고 국가의 미래결정이 다수 대중의 뜻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의지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의지는 인내와 설득, 다양성에 대한 통합의 노력이 반영된 것이어야 한다.
민주권력이 선거에 의한 다수의 뜻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권력을 결정하는 선거행위가 대중에게 물건을 홍보하듯 정치게임에 불과한 선거기술이나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미래는 결코 밝다고 할 수 없다. 서구에서는 흔히 민주주의의 전통을 기원전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찾는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정치권력이 등장하는 문명의 태동과 함께 민주주의의 뿌리를 찾으며 궁극적인 인간의 본성적 목표임을 내세우고자 하지만 그 실체를 규명한다는 사실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거석문화로 대변되는 선사시대 공동체 사회의 정치권력에서 민주주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경우도 있다.
거석문화는 인류의 정치권력의 존재를 신석기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인류 역사시대의 기점인 세계 4대문명의 이전부터 정치권력이 존재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이집트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문명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최소 기원전 일 만 년 이전의 역사다. 인류의 기록유산이 최고의 보전방법으로 알려진 돌에 새겨진 기록을 기준으로 하여도 일만 년을 넘어서기 힘들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도 과거의 인류모습을 추정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의 대규모 집단공동체가 일찍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공동체들이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연맹체의 형태로 일찍이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제정일치사회가 인류사회의 시작이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실 정치와 종교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그 뿌리가 같다. 고대에는 자연은 신비로 가득했으며 특히 자연재해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에 저항하거나 피할 수 있다고 여겨진 인물이 자연스럽게 권위를 갖게 되면서 지도자도 겸직하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연이라는 힘 곧 신을 아는 자가 신관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신관과 지도자는 같은 사람이 맡았던 것이라 추정된다. 고조선의 단군왕검을 비롯하여 세계 각처에서 탄생한 건국신화의 이면은 이와 같은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의 공동체사회의 형성은 생존을 목적으로 하는 함께한다는 사상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다. 물리적으로 몇 날을 필요로 하는 기간적 거리가 집단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었으며 이를 통합하는 정치적 행위가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에 대한 증거가 표음문자의 출현이다.
현존하는 유일한 표음문자는 한자이다. 뜻글자가 갖는 의미는 언어가 다르고 지역을 달리하는 씨족과 부족 간의 정치적 통합을 의미한다. 그러한 행위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반적으로 이를 거슬러 올라간 표의문자의 기원인 갑골문자나 그 밖의 다른 형태의 상형문자가 광범위하게 쓰였다는 사실과 그 기원이 불분명하다는 사실은 한자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인류에 주어진 시간적 거리는 지금으로 생각하면 100km만 떨어져 100년만 지나도 서로의 언어가 소통이 불가능하였고 다수의 사람이 교류가 그만큼 이루질 수 없었던 물리적 이유를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이 될 수 있다. 교통통신이 발달한 현대사회에도 인도의 경우처럼 수천 개의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물리적 조건에서도 광범위한 지역을 아우르고 있었다. 이러한 문화적 동시성을 갖는 선사시대의 모습은 지금도 해결되지 않는 미스테리이다. 제주의 돌하루방과 동일한 형상이 남미대륙이나 남평양의 섬 문화에서 발견되거나 현존 인류의 혈연적 유사성이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연결되는 현상들은 고대 인류의 광범위한 정치적 영향력을 증명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사실상 왕국이 생겨나고 독점적 정치권력이 생겨난 것은 역사의 발전이 아닌 역사적 퇴행이었다. 그리스로마의 정치권력이 통합을 바탕에 둔 민주공화정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의 고대 조선이 다수의 종족을 통합하고 협의제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 연맹이었다는 사실과 이후 생겨난 부여・고구려・신라・백제・가야 등이 연맹체를 기반으로 건국하였다는 역사적 사실도 우연은 아닌 것이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정치권력의 대결은 오래된 인류의 역사이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고도화하고 체계화되어 왔다. 물론 이에 대한 철학적 접근과 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여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정치권력의 여부와 상관없이 공통된 정치권력의 속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제는 명분을 앞세운 정치권력의 본질적 속성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이다. 그리고 이를 완성한 현존하는 국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 등의 복잡한 경제적 이해관계에 종속되는 현대국가의 정치권력을 극복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도 우리의 정치현실은 혁신을 필요로 한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가 국가 공동체의 안전과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고 보다 적극적인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행위가 정치가 되어야 한다. 봉사와 희생을 바탕으로 한 정치행위는 권력게임이 될 수 없다. 정치가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적극적인 행위가 정치기술과 이미지 전략만으로 인식되어지는 현실적 정치상황을 고려하면 정치에 대한 개혁적 인식은 반드시 필요한 문제다.
정치개혁의 핵심은 개혁일정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 목표는 너무도 분명한 것이다. 그것은 정치권력의 폐쇄적 구조의 타파와 국민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정치구조의 확립이다. 그리고 모든 사회분야뿐만 아니라 세대와 남녀를 아우르는 다양성의 확보와 공정성의 확립에 있다. 방법적인 차원의 정치개혁은 이러한 목표 위에서 제시되어야 하고 지나온 시행착오를 기반으로 하나의 일관성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 사실상 어떠한 제도를 선택하여야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국민과의 교감과 공감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제도운용의 문제이고 보면 정치권의 개방적 구조 실현은 우선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사회의 정치구조는 편향성이 심하다. 법조인 출신이 과거부터 전통적으로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남녀의 성비와 연령이 기준이 되는 5・60대 남성의 비중도 전체 60%이상을 차지하여 왔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개선될 기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또한 새로운 정치세력의 진출이 사실상 차단되어져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세력 간 협력체제도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같은 정당 안에서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정치권에서 대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 당장 양당 중심의 정치구조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새로운 정당의 출현과 협치가 가능한 제도는 만들어져야 한다. 선거가 정권을 평가하고 정치권력을 견제하는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국회, 지방의회의 1/2 동시선거와 지역단체장과 국회와 지방의회의 1/2를 2년에 중간선거로 선출하여 선거의 효율성과 권력평가의 효과를 높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승자 원칙에 따른 사표방지를 위하여 중대선구제이든 현행의 소선거구제든 정당별 총 득표율에 따른 100%연동형의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개혁의 핵심은 제도의 형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중심제이든 내각책임제이든 제도의 운용에 달린 것이다. 그러한 제도의 운용은 국민의 의견이 잘 반영되는 제도운용에 있을 뿐만 아니라 대중선동을 방어할 수 있는 이중적 성향이 통제될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이러한 제도의 접점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집단지성에 근거한 제도의 운용이다. 그러나 집단지성의 가치는 한 순간의 다수의견이나 대중합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이는 시간과 인내를 통해 역사의 흐름 속에 커다란 줄기로 존재하고 있다. 오늘날 냉정하고 현명한 국민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는 독일이란 나라가 히틀러를 만들어내고 그를 통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IT의 발전은 직접민주주의의 확대를 위한 기술적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중요한 정책을 대중에게 물어 결정하는 것이 모두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국민의 합의가 매우 중요한 명분이 되어야 하지만 이는 시간과 인내를 통한 충분한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합의에 대한 승복의 미덕도 반드시 필요하다. 여론조사나 주민투표가 남발하는 정치적 상황은 갈등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기에 충분한 시간과 합당한 합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조건이 충분하다는 전제에서 직접민주주의의 확대는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정치개혁의 측면에서 올바른 방향이 될 수 있다. 모든 정치권력의 정당성은 공동체에 대한 희생과 봉사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