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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와우 Feb 06. 2023

천재가 아닌 평범한 인간의 삶은?   

천재가 아닌 평범한 인간의 삶은?

 

 인류역사상 특출했던 사람들은 모두 천재였을까? 우리 모두는 그럴 것이라 막연하게 추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비범한 사람을 천재와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누구나 스스로 또는 자신의 자식들이 남들보다 특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망을 갖는다. 물론 그것들이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 전제가 되고 있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모든 것들도 인간이 남들 보다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결국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천재는 천재일 뿐 비범함과는 다를 수도 있다. 천재성이 인간의 통찰력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에는 흔하다고 할 수 없으나 정말 많은 천재들을 목격한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경이로울 정도로 부러운 능력을 보이는 경우들도 있다. 그러나 천재는 스스로 천재임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태생적으로 그냥 잘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재는 문명이 막을 올린 이래로 어느 시대나 나타났다. 그들이 남긴 다양한 행적들은 사람들을 이끌고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일반인보다 한 걸음 앞서 먼 곳을 내다보고 밤하늘의 별처럼 세상을 밝혀 새로운 길을 제시해준 사람들이 그들 중에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동경하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를 따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상에 나타났던 천재들 모두가 그 능력에 걸맞은 밝고 행복한 삶을 산 것은 아니다. 자신의 뛰어난 천재성을 당대에 남김없이 구현해내어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은 천재들도 있었지만 그 빛나는 재능이 오히려 보편적인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여 겉돌기만 하다가 삶 속에서 고독하게 사라진 천재들도 수없이 많았다.


 인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천재 중에는 대표적으로 알렉산드로스 3세가 있다. 그는 20세에 왕위를 이어받고 33세에 요절할 때까지 페르시아제국을 정복하며 지중해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열두 살 때 사나운 명마를 단숨에 길들일 정도로 용맹했다. 열여섯 살 때까지 그리스의 대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교사로 삼아 학문을 배웠으며 뛰어난 무예와 탁월한 학문도 겸비했다. 그의 천재성은 전장에서 발휘되었는데 열여섯 살 때 처음으로 전투에 참가하여 반란을 진압하였고 그의 전술의 상징인 팔랑크스 보병대와 기병대의 독창적 전술운용에서 나타났다. 이후 카이사르, 나폴레옹 등과 같은 서구 사회의 시대적 영웅들에게 알렉산더 콤플렉스라 불려지는 영향력을 갖기도 하였다. 그의 진정한 성과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문명을 융합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이었으며 동·서양 융화정책으로 결혼정책 등을 펼쳤던 그의 인문학적 소양에서도 나타났다. 그에게 있어 우상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그리스 민주정치를 완성한 페리클레스였다. 페리클레스는 델로스 동맹을 통해 아테네 제국을 확립하고 펠로폰네소스 전쟁 개전 후 2년 동안 아테네를 이끌었다. 예술과 문학을 장려하고 아크로폴리스에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건축물을 지었다. 이렇듯 서구의 권력자들은 정복자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하였다. 러시아의 푸틴은 소비에트연방 영토를 처음 통합한 표트르 대제를 모델로 삼았다고 알려진다. 표트르대제 역시 아마도 알렉산더와 징기스칸을 모방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인류 문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천재들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명멸해간 수많은 권력자들은 천재의 영역을 벗어난 그 무엇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지만 일반의 영역에서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공자, 맹자, 이사, 장자, 베이컨, 칸트, 니체 등과 같은 철학자와 인문학자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에서 현대의 아인쉬타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자연과학자들, 그리고 네오나르도다빈치, 미켈란젤로, 바하, 모차르트, 베토벤, 고호 등의 예술가들, 호메로스, 헤르도토스, 이백, 두보. 타고르, 단테, 볼테르, 괴테, 세익스피어 등의 문학가들.. 그 이름을 모두 열거하는 일도 버거운 일이다. 


 우리 역사에도 이러한 천재들이 있다. 이론의 여지없이 세종도 천재였다. 조선 초 아버지인 태종이 중앙집권을 강화하였지만 고려에서부터 이어진 지방 토호세력은 여전히 잔존하였고 중앙정치권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단순히 천재성 이상의 통찰력도 필요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에서 위대한 왕으로 남은 이유는 그의 뛰어난 정치력의 이면에 자리 잡은 인문학적 인식도 자리하였다. 그것은 다스리는 자의 위치에서 백성을 사랑하고자하는 자세가 있었으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인문학적 통합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위대한 정복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주어진 위치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본다면 서구문명의 근간을 이룬 고대그리스의 페리클레스와 시대와 장소를 넘어 연결되고 있다. 평범한 무장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이순신 장군의 일생 역시 그러하다.


 한편 요절한 천재들의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주기도 한다. 천재시인 이상과 저항시인 윤동주의 짧았던 인생 속에서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삶을 빛나게 하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빛이 주어진 인생 내내 같은 모습으로 빛나기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육당 최남선의 배신이 그러했고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의 신여성에 대한 편협함도 그러했다. 그러나 조선실학의 거두인 정약용은 정조의 사망 후 유배를 가게 되어 74세에 사망하는 순간까지 혁신적 정치이념과 방대한 영역에 걸친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의 일생은 빛나는 삶의 순간이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지속성을 갖게 하는 삶의 가치를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세계적 종교를 창시한 세 성자의 흔적도 흥미로운 주제다. 물론 이를 믿는 사람에게는 불손한 접근일수는 있으나 신성을 털어내고 인간적 흔적을 찾아보는 것은 의미가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예수의 경우 33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가모니가 80세까지 설법을 그치지 않은 것과는 달리 예수의 사목기간은 만 2년에 불과했다. 석가모니가 29세에 깨달음을 얻어 고행의 길을 자처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마호메트는 그의 아버지가 그의 출생 이전에 세상을 떠났고 6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조부와 숙부에게 양육되었고 잠시 동안 메카 근교 유목민 부인에게 양자로 보내져 목동으로 소년시절을 가난하게 보내야 했다. 그가 천사 가브리엘에 의해 신의 말씀이 그에게 계시된 것은 40세였다. 이후 그가 사람들을 가르쳐 전해야 할 사명이 주어졌다고 확신하고 43세부터 전도를 시작했다.


 신앙의 문제를 떠나 인간의 육체를 입고 세상에 존재하였던 모습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사후 그들을 추종한 종교 세력의 번성은 인간의 시각에서 불가사이 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신의 대리자로서의 그들의 존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을 흉내 내어 세상을 현혹시키는 많은 사이비 교주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모든 종교는 인간의 사랑과 화합을 말하고 있지만 인간은 이를 분열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천재들도 있는 만큼 지능이 부족한 이들도 있다. 선천적으로 뇌성마비를 갖고 태어난 이들도 있으며 정상적으로 생활이 어려운 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애완동물을 통해 생명의 가치를 인간의 심성에 심어주듯 인간은 인간을 통해 신의 의미를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곧 신이다. 이는 인간이 신의 영감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신을 인간이 만들었다는 인문학적 인식도 “인간이 신의 피존물”이라는 사실에 대한 역설이기도 하며 인도의 “범아일체”사상이나 우리의 “홍익인간”도 이념의 역설이다.


 현대 한국사회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천재상을 도출해 내어야 한다. 역사에서 사라져간 여러 천재들의 삶을 추적해본다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 그 궤적을 따라감으로써 동시에 각 시대의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고 각 천재들이 담당했던 시대의 역할, 그리고 그 천재성으로도 넘지 못했던 시대의 조건과 한계를 알아가는 것들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된다. 이를 통해 지난 역사 속에 한정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과 그 이상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시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깊은 통찰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천재가 갖는 능력은 일반인에게 부러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학교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학습능력이 뛰어난 친구들을 보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특히나 음악이나 미술, 스포츠 등 기능이 필요한 경우는 그 능력의 차이가 확연하다. 그러나 인간의 천재성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또 다른 사회구조적 문제가 수반된다. 천재성을 가진다는 것과 훌륭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고 평범한 사람에게 천재란 것이 마냥 부러운 대상이 되는 것만도 아니다. 천재성이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높이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천재가 갖는 편협성과 집착은 이를 방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공평하다. 평범함이 보편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을 갖게 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세상에 대한 공감을 넓히는 이유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이 특별함을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과정은 우주적 보편성을 따르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함께하는 방법을 배우는 길이다. 천재가 세상에 존재하는 만큼 지능이 부족하여 보호가 필요한 사람도 그 만큼 존재한다.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지성에 의해 이끌려 나아왔고 그 과정에 많은 시행착오와 더불어 더디게 움직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나긴 오랜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간의 평등과 자유 그리고 평화의 가치가 확고히 자리하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는 현실도 사실이 되었다. 그러므로 보편주의의 실현은 특별한 특정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노력의 총합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지 천재를 지향하거나 부러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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