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와 통합이 바탕이 된 공동체주의의 실천과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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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강력한 현군의 출현은 백성들의 희망이었다. 새로운 왕조의 출현과 융성한 제국에는 현명한 지도자가 있었고 그것을 명분으로 하는 포용력 있는 리더쉽이 있었다. 그리고 하늘이라는 절대성에서 부여된 불가침 권력으로 신의 대리자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가치발전은 한 사람이나 특정한 집단이 통치하는 사회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는 인류 역사에서 얻은 많은 시행착오의 결과이기도 하고 이의 완성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인류의 진정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철인 정치론’은 인류의 최고의 형태로서의 왕도제를 제안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카데미아의 창설자로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고전기 그리스 철학을 대표하는 학자이다. 그는 아카데미아를 세우고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으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서 서기 529년에 폐쇄될 때까지 천 년 동안 지속되었다. 플라톤의 정치론은 그가 세운 철학적 체계인 이데아 이론을 기반으로 한다. 기원전 4세기에 활동한 그의 정치관이 그에 앞서 기원전 5세기 경 페리클레스에 의해 아테네 민주주의가 완성된 시기였다. 이러한 정치적 환경은 민주주의 체계의 불완전성이 그를 왕도정치로 이끈 이유가 될 수도 있었다.
플라톤은 이론적인 지식과 철학적인 지혜를 가진 철인(philosopher)들이 국가를 이끄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정치 체제라고 보았다. 이러한 철인들은 이성과 지혜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지배함으로써 동시에 불변적인 진리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플라톤은 청년 시기부터 철학적인 교육을 받도록 제안하였으며 철인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교육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하였다. 플라톤의 철인 정치론은 인류의 진화와 문명화에 대한 이해와 그것이 이상적인 국가 형태로 구현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었다.
이를 이어받은 로마 황제 중에는 철학에 관심을 가진 황제들이 있었다. 가장 유명한 이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16번째 황제로 스토아 철학이 담긴 〈명상록〉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명상록은 인간의 삶과 죽음, 인내와 자제, 도덕과 강요 등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 이 책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명상록〉은 그가 전쟁을 수행하고 통치하는 동안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단편적으로 기록한 책으로 논증적인 글과 경구가 번갈아 나타난다. 어떤 면에서 이 글은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쓴 글들이다. 〈명상록〉은 로마인의 가장 내밀한 사상을 다 모아놓은 것이지만 놀랍게도 그리스어로 씌어졌는데 이는 당시에 고대 그리스를 포함하여 여러 문화들이 통합되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로마의 황제들은 그 자격을 스스로 증명 받아야만 했다. 그 자격은 외부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으로서의 능력을 검증받는 것이기도 하였고 치열한 정치적 투쟁에서 살아남는 것이기도 하였다. 권력자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대변되는 공화정의 전통을 가진 로마에서 로마시민의 절대적 지지를 이끌어내야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일반적인 왕정에서 직계가족이나 형제승계를 하는 경우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통치체계는 우리의 고대국가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리스와 로마가 최고의 경쟁자였던 페르시아 제국, 이집트 왕조, 바빌로니아 왕조, 그 후 이루어진 인류의 모든 나라에서 왕조에 의한 통치가 일반화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특이한 경우이다. 그리스 로마의 통치 방식이 우리의 고대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는 사실에는 우리에게 새로운 일깨움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를 승계한 조선의 임금은 오후에 경연을 하였다. 경연은 고위직 신하들과 유교의 경전인 사서오경, 역사, 성리학 등을 공부하였는데 업무의 연장선이었다. 아마도 정도전이 조선을 기획하고 새로운 나라에서 이상을 펼치고자 하였던 것들은 플라톤의 철인정치사상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의 임금은 왕세자 시절부터 방대한 학습량을 요구받았고 왕이 된 후에도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그럼에도 조선의 역사에서 세종과 같은 존재는 희박한 경우에 속하는 것이었고 현자를 왕으로 얻게 되는 경우가 흔한 것도 아니었음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대사회가 항상 탁월한 지도자를 얻게 되고 현명한 정치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일반인의 소망은 사실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대의 정치지도자에 대하여 왕조의 왕의 역할과 책임을 혼용하여 이해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오늘날에도 회자되지만 인용된다면 옳지 않다. 마키아벨리 군주론은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16세기에 쓴 책인 ‘군주론’에서 제시한 정치철학이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가 이탈리아의 근대화를 위해 다양한 정치체제와 지도자의 행동을 연구하고 분석한 결과물로 매우 현실적이고 비인도적인 정치철학으로 알려져 있다. 마키아벨리 군주론에서는 지도자들이 유지해야 하는 권력과 국가의 안정성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전략과 방법론을 제시한다. 이론의 핵심은 지도자들이 선의와 도덕성보다는 권력의 유지와 국가의 안정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 군주론에서는 힘과 권력의 이용, 부패와 악덕 행위, 거짓말과 배신 등이 정치적 행위로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대표적인 실용주의 정치철학으로 인식되고 있다. 군주론은 권력을 얻고 유지하려면 어떠한 역량이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있으며 정치를 윤리도덕으로부터 분리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군주된 자, 특히 새롭게 군주의 자리에 오른 자는 나라는 지키는 일에 곧이곧대로 미덕을 지키기는 어려움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군주에게는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달라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든 칭송 받게 되며 위대한 군주로 추앙 받게 된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국민이 스스로 통치하는 정치제도이다. 이는 곧 시스템에 의해 권력이 운용되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정치권력이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의 독점으로 악용되는 것을 경계하는 보수적인 접근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집단 지성의 궁극적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대중은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선동으로 인한 광적인 분위기에 취약하다는 사실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으며 그렇다고 몇몇에 의한 현명한 권력집단이 출현하리라는 기대는 더욱 더 어려운 일이다. 민주주의는 형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적 운용체계인 것이고 스스로 적합성을 찾아가는 정치적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집단지성은 실패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인류의 노력 그 자체이다.
민주주의는 특정집단의 권력화를 지양하고 있다. 다원주의 구현이다. 군부 독재 시절에는 모든 분야에 군인이 포진되어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이 활동했던 우리 사회가 경제발전에 문제가 되거나 사회 전반이 경직되었음에도 효율적 국가운용이 뒤떨어졌다고 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민주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었고 독점 권력은 사회 전반에 걸친 공정성을 해쳤다. 특권은 사회 전반에 걸친 국민의식에 작용하는 것이고 이러한 의식은 사회공정성에 대한 무의식적 방관을 낳기도 하였다. 작게는 위급한 의료행위를 가로채는 행위가 정당성을 갖기도 하고 자식의 취직을 위해 부당하게 청탁하기도 한다. 또한 절차를 무시한 사업권에 이익을 독점하기도 하고 뇌물을 통한 행동이 노력이 일환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이러한 특권의식은 노동계에도 존재하며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 까지 유지되어온 법조계의 기득권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헌법에 기초한다. 그러나 사실 문자로 형식화된 법적 규정은 포괄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구체적인 개별적 사항을 자세히 구체화하기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사소한 사실 하나하나를 법으로 규정하겠다는 의도는 결국 또 다른 법적 예외를 만드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법의 의도와 목적에 따른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게 되어 이를 특정 짓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로마법이 현대 국가의 기초가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5세기 로마 비잔틴제국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제국의 모든 불문법을 집대성하여 로마대법전을 편찬했다. 서구 사회에서 확실한 성문법의 출현은 그 시대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로마의 불문법은 제국 초기부터 국가를 다스리는 기준이 되었고 유연한 법의 제정과 운용을 가능하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렇게 보면 건국초기 규정된 어설픈 조항을 그대로 두고 있는 미국의 수정헌법을 해석하는 방식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에서 법 해석의 최종적 권한은 대법원이 맡고 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를 두어 헌법의 목적과 이유를 근거로 판결한다. 민주주의의 체계적 완성은 법에 대한 신뢰와 공정한 법집행에 있다. 법의 집행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 사회의 실현에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민주 사회의 실현을 위하여 형식으로 국민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사회의 구성원이 이로울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법의 유연성은 사법체계의 개방성이 실현되어야 하며 법원과 검찰조직의 확대와 더불어 국민을 위한 법률 서비스로서의 인식 전환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의식전환은 법조인이 갖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고 사회 서비스 분야의 하나로 인식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민주주의 체제의 정치권력은 봉사와 헌신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민주사회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것이다. 과거의 왕조에서는 현군이 필요하였지만 민주주의 권력체계에서는 민주적 권력체계를 요구한다. 결국 민주적 권력체계는 특정한 권력집단의 독점이 아닌 민주적 질서를 정치권력과 연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는 뛰어난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지도자를 만들 수 있는 정치제도가 우선한다. 그러한 이유로 현대 사회의 지도자는 선두에 서서 위용을 과시하는 전장의 장군이 아니라 다른 이의 말에 귀를 기우리고 사람을 포용하는 통합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 사실 과거에도 현군은 그러했다. 그럼에도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우연히 얻게 되는 현군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정치권력이 집단지성에 의해 현명한 지도자를 만든다는 신념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민주주의는 독점적 권력을 만들지 않기 위해 장기집권을 지양하고 있는 것이다. 현명한 지도자는 우연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