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탐욕①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by 와와우

절망이 지나간 공허 속에 새롭게

피어난 것들


걸어가며 고개를 끄떡이고,

모든 지남과 지나는 것에 그러려니 한다

(去 然)


인간의 탐욕①


나는 3년 동안 정유사 직영주유소 소장으로 봉급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2002년 이후 8년간 직영주유소 사장을 하게 된다. 직영주유소 소장은 주유소 운영 능력에 대한 정유회사의 인정을 받는 기회가 되었다. 처음에는 제품구입을 위한 1억 원의 담보능력만 있으면 되는 사업이었다. 주변 지인에게 담보를 빌려 사업을 시작하였다. 첫해 정유회사가 예상했던 매출보다 3배 이상의 실적을 올리며 제주도 판매 1위 주유소가 되었다. 순이익금도 5천만 원 정도를 남길 수 있었고 다시 5천만 원을 추가담보하고 하나를 더하여 2개의 중대형주유소를 운영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변하고 있었다. 1997년 IMF 이후 대기업은 담보능력이상의 신용판매를 허용하지 않았다. 금융기관 역시 신용대출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었지만 대기업은 오히려 금융기관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을 적용하였다. 당시 유통전반에서 대기업이 직영하는 소매시장에서 판매된 자금은 당일로 서울 본사에 자동송금이 이루어졌으며 유통시장에 흐르던 그 많은 유통자금이 급속히 줄어들어 소매시장과 지방은 항상 돈이 마르는 이유를 만들었다. 나는 담보능력이 부족하여 다시 주유소 한 개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직영주유소의 사장은 용역수수료라는 웃지 못 할 기상천외의 제도 안에 있었다. 그것은 판매 전액을 본사로 송금하고 월 초 전달 판매를 기준으로 경영수수료를 받는 위탁경영제도였다. 사실 이러한 모든 것을 직접 관리하는 제도 하에 과도한 담보능력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회사의 안전대책이었다. 그리고 그 수수료는 일반주유소의 마진보다 낮게 책정이 되었고 그 기준도 달마다 임의로 변하여 지급되었다. 유통시장에서 신용거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회사는 그 독점 권력을 남용하였고, 정유회사직원들은 사업파트너 위에서 군림하고 있었다.


나는 정당한 권리를 회사를 상대로 요구를 하고 일찍 그만두었어야 했다. 오랫동안 판매실적은 최고를 달리고 있었지만 나는 경영적자에 허덕였다. 결국 그만 둘 기회를 놓치고 누적 적자를 버티지 못하며 주유소업을 그만 두게 된다. 나는 부당했던 정유사의 불법행위에 소송을 진행해야 될까 망설이기도 했다. 그것은 나를 소개한 친구에게 피해가 되기 때문이었고 그 친구는 당시 그 회사의 임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소송은 그 친구의 승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 자명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기업이 어느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 그 기업은 결코 개인의 회사가 될 수 없어야 한다. 필요한 자본과 금융을 사회로부터 조달을 받고 자본주의는 그러한 자본의 힘으로 기업이 운영된다. 일 개인의 경영능력만으로 기업이 존속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전반적인 기반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며 결국 행운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이윤창출이 기업의 존속을 좌우하는 것이 사실이나 그러한 이윤은 사회적 책임이란 기본 위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러기에 기업은 경영의 투명성과 정보를 사회와 공유하여야만 한다.


내가 주유소를 운영하며 관리를 받았던 부산영남지역본부는 어느 해 영업이익목표를 마이너스 2,000억 원이라고 희안한 적자목표를 설정하고 독려하였다. 일개의 지역본부의 경우가 그러하니 우리나라 전체를 보면 수 조원의 적자를 영업목표로 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가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해 연말 정유사가 공시한 손익계산서는 1조 5,000억 원을 훨씬 넘는 흑자였다.


2004년 여수공장이 파업을 하였다. 당시 기준으로도 상당했던 평균연봉 7,000만원 귀족노조의 파업이다. 국민들도 그들의 파업을 비난했다. 그들의 파업은 충분한 명분이 없었다. 사실 그들의 요구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정유업계의 공장도 판매가격과 수익은 정유사의 임의가격이고 임의수익이다. 이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하면 생산이익은 노조가 요구하는 임금인상의 빌미를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이러한 공장도가격이란 숫자는 허수이다. 정유사의 구조는 생산시설, 유통판매망, 해외부문으로 나누어진다. 각각의 영업이익에 대한 목표가 연결되어 있던 것이다.


그러나 정유사직원들은 회사가 제시한 목표를 그대로 받아들일 뿐 그 임원조차도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지 못한다. 회사가 직원을 속이고 있는 전형적인 경우이다. 대부분의 대기업은 내부에서 조차도 경영이 투명하지 못하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모든 편법을 만들어 불법조차 서슴지 않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경영정보와 시장에 대한 사업주의 독점은 기업의 사회적 자기 통제기능을 무력화한다. 사업주가 새로운 자회사를 만들어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불법상속을 하고 임의의 사회 자본을 끌어들여 엄청난 개인의 이익을 재창출하는 것도 가능하게 한다.


주유소 운영을 그만두고 이후 2년 동안의 새로운 사업경험은 나에게 꽤나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인간의 탐욕스러움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았다. 관광업이 건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경험한 사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관광안내원의 그 미소 뒤에 숨겨진 탐욕과 숫자놀음은 여행사, 관광객을 상대로 한 불공정한 호객행위 등으로 일반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내가 시작한 사업은 중국인과 동남아 관광객을 상대하는 국산 화장품 전용 면세점이었다. 중국인과 동남아 관광객을 고객으로 하는 관광사업은 처음 화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최근 중국은 조선족 교포에 의해서 대부분 장악되는 패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중국 단체관광객의 90% 이상을 이들이 운영하는 여행사를 통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장단에 놀아날 수밖에 없었다.


1972년 5.16군사 정권은 8.3긴급금융조치를 공포하고 사채를 동결시켰다. 당시 지하경제의 핵심을 이룬 화교들은 큰 타격을 입고 한국을 떠났다. 한국태생의 화교들이 한국으로 모여든 것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남아의 한국여행객의 증가와 때를 같이 하고 있다. 그들은 탐욕에 물들어 있었다. 순간의 이익을 위해 그들은 돈을 버는 방법외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철저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들에게 이 사회와 함께하는 미래는 없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역사적 가르침을 준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그들을 품을 수 있는 사회적 포용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누구의 탓이라 말할 수는 없다.


전 세계에는 6천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화교가 있다. 그들은 중국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들의 유래는 송나라를 기준으로 하면 천년이라고 할 수 있고, 한나라를 기준 삼으면 2천년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중국의 정치적 변동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중국을 한족이 지배한 역사가 전체 역사의 절반도 안 되며 하나의 왕조가 200년 이상을 유지한 경우도 없었다. 또한 지금의 중국 남방영토에 정치력이 영향을 미친 것도 10세기 전후의 일이다. 화교는 16개의 주요 지방을 기반으로 하였고 정치적 변동에 의해 남동부 지역을 고향으로 하는 사람들이 해외로 집단이주한 세력이었기에 언어가 다른 화교들은 서로 다른 세력으로 발전하여 왔던 것이다.


화교는 동남아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 정착한다. 본격적인 화교의 진출은 15세기 명나라 정화의 해외원정이라 할 수 있다. 싱가포르를 비롯하여 동남아에서 아프리카까지 화교의 근거지가 마련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18세기이후에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까지 진출한다. 그들은 미국경제공항 때의 밀주생산을 비롯하여 매춘, 무기밀무역 등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여 부를 축척하였다. 그들을 하나의 잠재적 국가로 추산한다면 일본 자산의 3배에 이르는 경제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구호로 이들을 중화민족으로 단합시키려 하고 서구열강은 이들의 지역적 이질성을 활용하여 분열시키려 하고 있다.


지금의 중국의 경제발전 초기에 화교의 경제력이 엄청난 역할을 하였다. 중국공산당은 결국 그들을 배신할 것이다. 나는 중국이 최소 20년 안에는 분열할 것이라 믿는다. 소수의 집권세력이 모든 국민을 통제하는 공산국가는 스스로 부패하여 한계에 부딪히게 되어 있다. 배신당한 화교자본은 이러한 흐름에 실질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화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집단이다. 그들은 고등학교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적었다. 화교학교의 교과과정을 우리 정부가 인정해 주지 않은 영향이 매우 크다. 거기에 대만과의 단교도 영향을 주었다. 구한말 민씨 세력은 대원군을 축출하고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였다. 이를 기점으로 청나라 상인들이 국내에 들어와 상업적인 기득권을 유지하며 번성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은 화교들은 해방이후 대한민국 지하경제의 90%를 장악하게 된다. 박정희 정부는 사채동결과 화폐개혁을 통해 그들의 자본을 무력화해 버린다. 그리고 많은 화교들은 한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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