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처럼 Mar 04. 2022

아픈 책등을 바라보며

띵동댕 띵동댕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린다. 설거지하던 고무장갑을 벗어놓고 벨을 눌러 문을 연다. 택배 기사는 빠른 걸음으로 현관문 앞에 물건을 놓고는 찰칵! 인증사진을 찍는다. 바로 내 휴대폰으로 사진이 전송된다. 내가 나가기 전에 택배기사는 벌써 대문을 닫고 가버렸다.

납작한 주황색 뽁뽁이 비닐에 싸여 있는 물건이다. 공기층으로 폭신폭신한 비닐에 힘을 주자 본드 붙인 부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뜯겨나가고, 내 손에 아담하게 들어오는 날씬한 책이다. 어라! 책 등 윗부분이 찢어져 있다. 두 번째다. 지난번에는 여러 책들 사이에 딱 한 권이 책 등 윗부분이 찢어지고 면지 상단에 접힌 흔적이 있어서 사이트에 민원을 넣었다. 고객센터에서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따로 환불이나 교환을 신청하면 해결해 주겠다고 했다. 읽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새 책이라 속이 상한다고 분명 전했는데, 아주 건조하게 환불 또는 교환해주겠단다. 내 속상한 마음을 공감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미 토론을 하느라 읽어버렸기에 그냥 양보하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 사이에 또 파손된 책이 배달된 거다.

이번 책은 양보를 못하겠다. 주제가 첫사랑이기에. 사이트의 고객센터 내 문의 답변을 검색하니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더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있다. ‘강력하게 업체에 이야기를 하겠다’고 한다. 담당자는 최대한 신경을 썼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분노하는 느낌도 난다.

내 마음, 그냥 읽어? 교환 해? 여기서 땀 뻘뻘 흘리며 분주하게 다니는 택배 기사님이 머리를 스친다. 우리 집에 오는 기사님들은 걸음이 참 빠르다. 뭐가 급한지 놓자마자 바로 나간다.

한편 책 등이 찢어진 아이들이 우리 집에 온 인연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다 이유가 있겠지.

뭐든 찢어지면 아프다. 분명 파손된 아이들을 봤을 때 내 얼굴이 일그러지고 마음이 불편했다. 만일 이 책을 도로 보내고 새로 받는다면 내 마음은 어떨까. 이미 책은 읽어버렸는데. 내 양심이 불편해지기는 한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책을 구입했다면, 분명 멀쩡한 아이를 데려 왔을 거다. 저렇게 등이 아픈 아이는 이미 걸려져서 내 손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다.

요즘은 근방 서점에 바로드림 시스템이 들어와서 10프로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매장에서 실물을 보고 데려 올 수 있는 거다. 다만 교통비는 들어간다. 그래도 매장 구입이나 할인을 받으니 참 좋은 세상이다.

고민이 된다. 앞으로 또 같은 현상이 벌어지면 어떻게 할지. 사람 구경하러 교통비는 들더라도 가까운 매장으로 나가야 하는지 말이다.

비슷한 곳이 파손된 두 아이, 나란히 붙여 놓고, 더는 아픈 사람이 없기를 바라면서 온라인 서점 사이트 고객센터에 답변을 단다. 이미 읽어 처리 요청은 하지 않을 테니 특정 누군가를 꼬집어 탓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다만 다시 아픈 아이를 들이고 싶지는 않다고 말이다. 그냥 책을 통해 기분이 좋아지고 싶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태양도 마음도 뜨거운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