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지난날에 한 일을 알고 있다. (1)

01. 홍차는 차가워도 뜨거워도

by 강날개



흑역사는 모두에게 잊혀질 권리가 있다.

하지만, 너는 지난날에 내가 한 일을 알고 있다.

그런데 잊지 말자.

나도 지난날에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2004년 가을, 어느 초등학교 교실

목포에서 전학 온 나는 잔뜩 가시를 세운 채 교탁 앞에 서 있었다. 소개해볼까? 친절한 선생님의 서울 말에 사투리가 새어 나올까 조심히 입을 뗐다.


"잘... 부탁.. 헌다.."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지정받은 책상을 향하는 동안 나는 분명 보았다. 백옥같이 하얀 얼굴에 짙은 쌍꺼풀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사나운 느낌의 가시내. 그리고 얼마 뒤 알게 되었다. 그 가시내는 노려보는 게 아니라 원래 그래 생겨먹었다는 걸. 그리고 이건 몰랐다. 그 가시내가 내 인생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될 거라는 건.


이건 불알은 없지만 22년을 함께한 홍차와 나의 이야기이다.








난 아빠가 둘이었고, 홍차는 없었다.

나의 복잡한 가정환경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고, 홍차의 단출한 가정환경은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었다. 어른들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착각했지만 우린 본능적으로 자신의 약점을 일찍 깨달은 고달픈 11살이었다.


그 시절 나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바로 누구에게도 질문하지 않는 것. 난 내 비밀을 말할 생각이 없으니 내게 아무것도 묻지 마. 나도 네가 궁금하지 않으니깐 이런 치사한 태도는 굳건히 나를 지키는 유용한 방법이 되었다. 하지만 이곳이 어디인가? 서로를 향한 끝없는 궁금증과 비밀 공유가 우정의 척도인 초등학교 교실! 이런 나의 태도는 우정을 쌓기에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난 천운으로 히어로를 만났다.


"근데 너는 강 씨인데 아빠는 왜 김 씨야?"

홍차는 이따금 내게 쏟아지는 질문들에 꼭 나 대신 이리 답했다.
"그게 왜 궁금해? 나는 하나도 안 궁금한데"

낮은 목소리와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시 묻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도 절대 잊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날 궁금해하지 않는 친구가 생겼다.

내게 무엇도 먼지 묻지 않던 홍차는 오랜 시간 내 곁에 머물며 아무것도 주지도 받지도 않으려는 나의 시건방진 태도를 결국에는 내려놓게 만들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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