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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a Nov 21. 2023

러닝타임도, 덕심도
킬링해버린 아쉬움

[더 마블스] by 니아 다코스타

여러 번 언급하는 듯 한데, 나는 마블의 오랜 팬이다. 아니, 팬이었다.

아이언맨과 블랙위도우를 사랑했던 나는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로는 참, 마블에 정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디즈니플러스를 구독하고 있기에 릴리즈 되는 많은 시리즈들을 챙겨보긴 했지만 최애가 사라진 탓일까, 예전처럼 그렇게 불타오르는 덕질을 하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도 마블은 하향세를 타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던 <엔드게임> 탓에 원작 팬들은 대거 탈주했고, 그들이 자와자와 입소문을 내주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일반 관객들까지 오지 못하면서 예전의 그 명성은 사그라들었다.


<블랙 위도우>가 재미있었으나, 그럼 뭐해 이미 나타샤는 없는데. 공허했다.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내가 사랑했던 완다의 모든 서사와 모습이 다 빠그라진 채 그냥 악역이 되어버려 우울했다.


그 이후 쭉 마블 영화는 잘 안 챙겨보다가 그래도 의리가 있지, 원년멤버들이 나오는 <토르: 러브 앤 썬더>나 <가오갤3>은 다 챙겨보긴 했지만 둘 다 나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기에 그 이후로 참 오랫동안 마블을 멀리하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간만에 캡틴마블 개봉 소식을 들은 것이다.

나는 <미즈마블>은 재미있게 봤고, 주인공 카말라가 너무너무 귀여웠기에 <더 마블스>는 기대가 됐다.

일전에 <캡틴마블>을 참 의미있게 봤던 기억도 한 몫을 했다. 당시에는 정말 펑펑 울면서 봤고, 큰 감동을 받았으니까.


그렇게 관람한 <더 마블스>는 뭐랄까. 일로 비유하자면 딱 50% 정도의 중효율 방송을 보는 느낌이었다.

망작은 아닌데, 수작도 아니다.


카말라는 귀여웠고, 캐롤은 멋있었고, 모니카도 매력적이었지만 한 구석이 계속 허전했다.

이런 말을 하면 참 오타쿠 같지만, 덕후의 심장에 불을 붙이는 그 한 방이 없다고 느꼈다.




인정한다. 나는 덕후가 맞다. 그리고 덕후로써 말하자면, 그 한 방이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한 순간의 짜릿함을 위해 기꺼이 모든 시간과 돈과 열정을 쏟아부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뇌가 짜릿할 정도로 도파민을 자극하는 그 한 방은 그냥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장면이어도 상관 없다. 그냥 덕심 자극의 그 포인트 하나면 된다. 그러니까 요컨대 <인피니티 워>에서 보여줬던 "어벤져스 어셈블-" 같은 그런 장면 말이다.


나로 예를 들자면, 난 올해 상반기는 그저 <더 퍼스트 슬램덩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아직도 영화를 처음 보고 나올때의 그 얼떨떨함이 생각난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인가. 마치 내가 풀코트를 뛴 것 같은 고양감.

나는 그렇게 퍼슬덩을 10번을 봤고 온갖 굿즈에 만화책까지 사모으며 미친듯이 덕질에 매진하는 상반기를 보냈다.


이런 내 덕질 도화선에 불을 붙인 장면은 딱 하나였다.

골대에 덩크를 때려넣는 서태웅의 뒷모습, 그거 단 하나였다.


어떤 콘텐츠가 그렇지 않겠냐만서도, 마블은 특히나 -속된말로- 팬장사를 하는 기업이다.

덕후가 좋아할 포인트들을 찔러 주어서 N차 관람을 유도하고, 입소문을 통해 일반 관객도 흡수한다.

그리고 나서 다양한 굿즈나 오프 행사들, 나아가 온라인 유통까지 진행되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블은 이걸 다 놓치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시점에서 봤을 때 <더 마블스>의 가장 아쉬웠던 점은 뭐든 애매했다는 것이었다.


그래 팬장사 하는 영화의 스토리가 허술할 수도 있다.

부족한 스토리를 커버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나 관계성이 매력적이거나, 훌륭한 미장센과 연출이 돋보이거나. 혹은 액션이 화려해서 생각이 시선을 따라갈 수 없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더 마블스>는 전부 애매했다.


캡틴마블을 동경하는 소녀 카말라, 원치 않게 우주의 수호자이자 말살자가 되어버린 캐롤,

그리고 순식간에 가족을 잃은 상황에서 캐롤을 기다리다 지쳐버린 모니카까지.

캐릭터는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관계성도 좋았으나, 활용이 안 됐다.


오히려 주연을 3명에게 어떻게든 고른 비중 분배를 하려고 애를 쓰다 과유불급이 되어버린 셈이다.

관계성이나 케미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대교체도 아니다. 갈등이 주요 서사인 것도 아니다.

한 명에게 집중하려고 하면 포커스가 다른 캐릭터로 넘어가버리니 집중력도 같이 뺏기고 흐름도 놓치게 되었다.


게다가 빌런은 대체 왜 나온 것인가.

비중도 없고 엔딩도 허망했다. 비주얼이나 서사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잘 하면 헬라, 웬우 같은 강렬한 캐릭터가 되려나 싶었으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박서준이 연기한 얀 왕자는 유구무언이다.

그가 등장하는 약 5분간은 너무 충격적이라서 기억을 잃은 느낌이다.


액션도 심심했다.

캡틴마블이 좋았던 것은 캐롤의 압도적인 파워를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온 은하와 우주를 지키는 수호자라면, 이 정도의 힘은 가져야 하는구나를 느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 시리즈 내내 느껴졌다.

<어벤져스> 시리즈에서도 캡틴마블이 등장하면 승세가 기울 정도로, 그녀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하지만 정작 주연 영화에서는 왜 그 힘을 쓰지 못했는지.

수많은 슈퍼파워와 좋은 무기들을 두고 맨손 전투만 하고 있을 때는 참 아쉬웠다. 수트 입고 주먹 휘두르는 아이언맨을 봤을 때랑 비슷한 감상이었다.

오히려 빌런 밸런스에 맞춰 너프를 시켰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무 좋아했던 캐릭터였고, 이런 저런 장면들이 나오겠지 하는 기대치가 있었다보니 여러 아쉬움이 자꾸만 남았다보니 주절주절 말이 길어진 듯 하다.

아쉬운 점을 잔뜩 늘어놓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카말라는 너무 귀여웠고, 캐롤은 멋있었으며, 모니카는 다시 보게 되었다.

(여담으로 슈퍼파워 쓸 때마다 위치 바뀌는 설정은 주술회전 토도 보는 느낌이었다)


하도 죽음으로 이루어지는 세대교체가 많았던 탓에, 이정도면 준수한 편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캡틴마블을 좋아했던 팬으로써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더 마블스(The Marvels)>

2023.11.11(토)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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