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by 유자

하필 왜 미세먼지가 잔뜩한 날이라 아직도 목이 칼칼하구나.

집앞 홍차가게에 갔다.

인기 많은 모습에 한번 가고싶었다.

그래서 갔는데 곧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이별이구나 싶어서 슬펐다.


그곳에서 읽은 이야기는 하루키의 먼북소리.

하루키는 장편소설을 쓸때마다

이 소설을 완성할때까지는 살아있게 해달라

간절하게 기도한다고 했다.

딱 죽음의 파트가 나와서 신기해하며 읽었다.

죽고싶지 않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요즘 내가 죽음을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에.


홍차가게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광화문.


도착한 정류장에는 햇살이 나른하게 내려져있었고 공기도 나른했다.

눈을감고 하품을 계속 하면서 거의 자는 사람처럼 걸어갔다. 춘곤 의 기분을 느끼면서 플로팅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떠다니듯이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떠다니듯이 걸어 극장에 갔다.


극장에 들어가 극장 카페의 테이블에서

배때지의 버클을 풀고 엎드려 잠을 좀 자다가

등을 곧추세운게 더 피로가 풀리나 싶어 등을 곧추새워 보기도 했다.


영화 시작전 제로콜라를 사서 아주 느린 속도로 탄산이 조금이라도 빠져나가지 않게 하고 싶어서 조심히 따랐다. 그 천천함이 좋았다. 그 집중.

그런 집중이 내 삶에 깔려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건축가의 삶의 이야기 였다.

왠지 그것이 보고싶었다.

전쟁이 남긴 후유증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건축을 남기기위해 고군분투 하는 이야기.

그게 보고싶었다.

자신의 건축을 남기기 위한 고군분투.


영화는 마치 실화 같았다.

꼬이고 어딘가 갑자기 환해지고

또 다시 꼬이고 환해지고의 반복이

만들어진 이야기라기엔

너무 찌그러져있었다.


환함도 환하지만 않고 꼬임고 꼬이지만 않고

마음 복잡 스럽게 만드는 찌그러짐.

영화 내내 등으로 숨을 쉬며 집중을 이어갔다.


영화 다보고 나와선 발렌타인 데이 답게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짝짝궁이었다.

이런하루에 늘 상 찾아오던 스스로에 대한 초라함을 느끼는 시간이 있을것 같았지만,

초라함을 느끼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극장에 나와 걸어가는길. 영화를 반추하며 떠다녔다. 설핏 달콤하게.


영화에서는 과정은 중요하지 않고 결과가 중요하다고 했다. 근데 거기 보니까 과정이 중요한거 같은데..

하면서 뭘까 하며 걷는 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던

영화보고 영화에 대한 생각에 빠진다는거.

그게 이건가 싶었다.

그것이 즐거웠다. 그런 즐거움이 있었다.


나와서 예전 일터 앞을 지나가게 됬다.

그곳의 공기를 느끼며, 그때를 떠올렸다.

그 달큰하고 따듯하고 재미난 하루하루들이 반짝인다.

나는 지금 어디있나, 뭐하고 있나 그런 생각들이 이어지듯 떠올랐다.


뭔가 뜨끈하고 든든한걸 먹고싶어서 삼계탕 비싼것을 먹고, 달을 보며 걸었다.

집으로 가려면 반대 방향으로 걸어야 하는데

자꾸 달을 보며 걷고 싶어서

거기로 걸었다.


꿈에서 맨발이었던 정류장에 신발을 신은채로 도착했다.

이끌리듯이 걷다가, 그래 버스를 타면 되는 구나 하고 방법을 찾았다. 이끌리듯이 걷다가 방법을 찾았다.


친구가 해준 이야기와 어제의 책과 영화에서 내가 발췌한것은, 목적지 였다.


과정의 돌부리에 계속 넘어지는 나는 그지같아도,

좀 부족해도 목적지가 나의 이상이라는 사실 하나를

등불처럼 켜고 걸어

이끌리듯이 걷다가 방법을 찾아버려.


뭘한건지 잘 모르겠는데 어쨋든

어제 꿈에서는 본적없는 푸른빛이 내리는 하늘과

바다에 이끌리듯이 똇목을 타고 나갔다가 돌아왔다.


어디든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