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영월

by 여행강타

며칠 영하를 찍으며 겨울을 재촉하던 날씨가 예년 기온을 찾았다. 다시 추워지기 전에 지금의 계절을 느끼고자 집을 나섰다.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려 중간 정착지인 제천에 도착했다. 시동생의 차인 사륜구동 오프로드 차량으로 갈아 탔다. 정해진 목적지는 없었고 차는 그저 강원도를 향해 달렸다. 한 시간 이상을 달려 '덕우리'란 마을 앞 작은 천(川)을 건너 차를 세웠다.

밭뚝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난 이럴 때가 제일 좋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주변 경치에 빠져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걸음을 옮기면 힐링이 되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아무도 없는 고요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추수가 끝난 시기이지만 일손이 부족해서였을까. 밭 한 귀퉁이에는 털지 못한 콩대가 섬처럼 쌓여있다. 넓디넓은 밭에는 떨어진 콩들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걷다 보니 아까 건넌 천보다도 크고 넓은 개울에 널찍하고 큰 돌이 징검다리를 이루고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 조금 걷다 보니 '삼시세끼 촬영지'란 푯말이 보였다. 촬영했던 집을 수리해 처음에는 모르고 지나쳐 다시 되돌아가 사진을 찍었다. 조금 더 둑을 따라 걸으니 또 다른 푯말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추억 저장소, 원빈&이나영 결혼식 장소'

또 다른 징검다리를 건너 그 장소로 가보았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은 관광객을 잃었고 회색만이 남았지만, 혼자의 시간을 즐기는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남들은 말한다. 구경도 때가 있다고. 철 지나 볼 것도 없는 곳에 뭐 하러 가냐고. 그래도 난 철 지난 지금의 모습이 좋다.

발길 가는 대로 걷다 보니 '여탄리'라는 곳을 지나게 됐다. 콩타작을 하던 두 어르신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나도 환한 미소로 답했다. 강아지도 아는 체를 하고 닭들은 자유롭다. 바위 밑 꿀통은 미소를 선사 했다.


두 시간 이상 걸었나 보다. 허기가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계획을 세워 온 것이 아니어서 준비해 온 게 하나도 없다. 차에 남아있던 과자 몇 개로 허기를 달래고 차로 이동했다. 잘 닦아 놓은 임도를 지나고, 흙길을 지나고 물 빠진 도랑의 자갈길을 지나며 오지로 오지로 들어갔다

'도깨비 삼촌네'라는 표식과,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올법한 집이 시선을 끈다. 잠시 차를 세우고 휘리릭 둘러보고 지나쳤다. 모퉁이 하나를 돌아가니 누구도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곳에 책방이 나타났다. 세상에나 이런 곳에 책방이라니. 나는 몰랐지만 방송이나 유튜브에 여러 번 소개된 유명한 곳이란다. 책방은 소소했지만 차를 권하는 주인장의 마음은 정스럽다.

정선군 정선읍 덕산기 계곡 깊숙한 곳의 오지 마을에 위치한 이곳은'강기희'작가의 10대조부터 뿌리내리고 살던 고향 마을이다. 작가 부부는 2017년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했다. 처음에는 작가가 소장하고 있던 약 1만 권의 책을 수납하기 위해 지은 창고였으나, 자연스럽게 책방으로 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책방으로 진입하는 길은 비포장 자갈길이 1.5km 정도 이어지고, 중간에 물길을 건너야 하는 등 험난한 편이지만, 그 덕분에 쉽게 접할 수 없는 계곡의절경이 펼쳐져 고생을 즐거움으로 삼아 찾아가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소설가 강기희 작가와 동화작가 유진아 작가 부부가 운영했으나 안타깝게도 강기희 작가는 폐암 투병 중이던 2023년 8월에 별세했다. 현재는 부인인 유진아 작가님이 책방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따뜻한 차 한잔과, 책 세 권을 사들고 나오며 유명하다는 책방 앞 '도깨비 소(沼)'에 대해 물었다.


"왜 이름이 도깨비 소인가요?"


"지금은 물이 적지만 이 소는 워낙 깊고 물살이 세어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었다고 해요."


"예전부터 깊은 소에는 도깨비나 용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내려왔는데, 이 소 역시 도깨비가 지키고 있는 듯 무섭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고 하여 "도깨비 소"라는 이름이 붙여졌대요."


그날 나는 그곳에 유일한 손님이었고, 책방 주인의 배웅을 받으며 그곳을 떠났다.


돌아 돌아 나오는 길, 특이한 간판이 눈길을 끌어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배우이자 오지 여행가 최일순 님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 '덕산터'

덕산기 계곡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한 번도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오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방문객들의 재방문율이 높은 곳. EBS(한국기행), MBN(현장르포 특종세상) 등 다양한 시사 교양 및 여행 프로그램에 오지 여행 전문가이자 호스트로 소개됨.]


오늘의 일정 마지막인 문치재에 올라 차를 세우고 사진 한 컷을 찍었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아침 누룽지 한 사발과 과자 몇 조각이 전부인데 배고픈 줄도 모르고 오지에 내 발자국을 남기고 정선 여행을 마무리했다.


정선&영월 여행기, 영월편은 다음회에 올리겠습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