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금요일, 어제는 나 혼자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유유자적 내 맘대로 정선을 즐겼다면, 오늘 토요일은 막내 시동생, 동서, 동서 친구, 그리고 나, 넷이서 길을 나섰다.
오늘도 정해진 코스는 없다.
어디를 갈지는 운전대를 잡은 막내의 마음이다.
집이 제천이고, 시간만 나면 강원도 구석구석을 누비는 사람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가는 도중 서로 의견을 조율해 영월로 정했다.
영월 서부 시장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부꾸미와 부침개를 샀다.
시장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막내가 말했다.
"왼쪽에 보이는 산이 '봉래산'이에요. 영화 라디오 스타에 나온 곳. 맨 위에 보이는 곳이 영화에서 마지막 콘서트가 열린 곳이에요. 지금 정상까지 올라가는 모노레일을 설치 중이에요."
유행도 일종에 병인가 보다. 한동안 바닷가나 호숫가에 잔도를 만들더니, '최장'을 내세운 출렁다리를 지역마다 만들고, 이제는 모노레일까지 들여놓고 있다. 내 눈엔 그 어떤 것도 자연의 고유한 결을 해치는 것 같아 좋아 보이진 않는다.
관광객은 편히 오르는 길을 좋아하고, 더 많은 볼거리와 새로운 변화를 원한다. 지역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이제는 식상하다.
자연은 말이 없으니, 변화를 받아들일 뿐이다. 봉래산 또한 철제 구조물을 품은 채 바람을 올리고 구름을 굴리며 세월을 흘릴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 끊임없이 덧칠하려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불편을 견디지 못하는 조급함일까, 아니면 '무언가를 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심일까. 어쩌면 그 두 가지를 조금씩 품고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 시간여 달리던 차를 잠시 세웠다.
"보잘것없지만 잠시 둘러보고 오세요"
이름하여 '연화 폭포' 작지만 물 맑고 깊이가 제법 있어 여름에는 그 좁은 산길에 차를 댈 데가 없다고 했다.
잠시 내려 폭포 앞에 서 보았다. 기대 없이 내린 발걸음에 비해 풍경은 조용히 제 몫을 하고 있었다. 차가운 물소리가 먼저 다가왔고, 늦가을의 햇빛이 물 위에 내리 앉으며 차가움을 살짝 녹였다. 폭포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만큼 넓지도, 높지도 않았지만, 잠깐이라도 마음을 씻기에는 충분했다. 짧은 멈춤이 오늘 일정의 균형을 잡아주는 듯했다.
꼬불거리는 산길을 한참 올라 걷기를 권했다.
'운탄고도'(운탄(運炭) 석탄을 운반한다는 뜻. 고도(高道) 높은 곳에 있는 길이라는 의미. 1950~1960년대 강원도 정선, 영월, 태백 지역의 탄광에서 채굴된 석탄을 함백역까지 운반하던 실제의 길. '한겨레')라는 표식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산길을 한참 올라 걷다 보니, 노랗게 물든 낙엽송의 바늘잎이 길을 두툼하게 덮어 발걸음마다 포근함이 전해졌다. 그 따뜻함이 전해지는 색감과 발밑에 느껴지는 감각이 잔잔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얼마나 걸었을까, 산 아래 넓디넓은 배추밭이 나타났다. 모두 뽑아 출하한 뒤라 황량했지만, 상품 가치가 없어 남겨진 배추를 보자 동서는 배추를 탐내했다. 강원도 오지 추운 곳이라 모두 얼어 동태가 된 배추를 동서를 따라 나도 확인해 봤다. 겉 삼분의 이는 얼었지만 노란 속은 여전히 온전한 상태를 유지했다. 쌈을 워낙 좋아하는 나는 욕심이 났지만 세 개만 골라 비닐봉지에 담아왔다. 색다른 재미였다.
한참을 올라 임도 끝자락에 자리를 잡고 서부시장에서 사 온 부꾸미와 부침을 먹고 만경대산 정상석에서 인증사진을 남겼다.
하산하는 길 '만경산사' 안내판 앞에 차를 멈추더니 다녀오라고 했다. 세 여인이 큰 기대 없이 갔다. '절이 거기서 거기지' 싶었지만, 우리의 생각이 틀렸다. 모두 '와~예쁘다'를 동시에 내뱉었다. 경치 좋고, 고즈넉하고, 작은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동서와 나는 연신 사진을 찍었고, 불자인 동서 친구는 부처님 앞에서 한동안 절하며 기도했다.
오늘도 만보 이상을 걸었다. 약간의 시간이 남자, 운전수인 막내가 또 다른 곳을 안내하겠다고 했지만 오늘 쓸 에너지를 모두 소진했다며 세 여인은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영월 고씨동굴 앞 작은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영월 나들이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