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책을 만날 수도 있는 업체 미팅 시간 (1)

온라인서점 MD의 읽고 파는 이야기

by 북바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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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면서 우리는 책과 식품은 기본이고 가구, 가전 심지어 명품과 자동차까지 온라인으로 구매한다. 이 일련의 쇼핑 절차를 조율하는 MD는 따라서 모든 현대인에게 친숙한 존재다. 다만 고객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므로 MD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나 역시 타 업계, 타 업체 MD를 만나면 우선 반가움과 함께 묘한 신비감을 느낀다. 이어서 서로 MD 경험담을 나누다가 보면 자주 돌아오는 반응이 있다.


온라인 서점 MD는 거래처 미팅을 왜 그렇게 많이 해요? 신규 계약이나 메인 프로모션 등 굵직한 안건 논의가 아닌 신상품, 즉 신간 소개가 주목적인 미팅의 비중이 높다는 뜻이다. 내게는 업체 미팅, 출판사 영업자에게는 MD 미팅인 이 시간은 MD의 일상 업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전체 미팅 중 약 85퍼센트에서 90퍼센트는 ‘신간’이 대상이다. 영화 개봉, 유명인 추천, 문학상 수상 등 새로운 계기가 생겨 다시 화제가 되었거나 판매 역주행을 기대하는 ‘구간’을 이야기할 때도 있다. ‘만나서 이야기’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화, 메일로 소통할 때도 있지만 대면 미팅 비중이 높다. 아예 공식 사이트에 연락처를 게시하지 않기도 하는 다른 커머스 업체의 MD 눈에는 낯설어 보일 만도 하다.


음식은 맛과 영양, 전자 기기는 사양 등 제품의 평가 지표가 단순한 편이다. 책은 지식문화·콘텐츠 상품이다. 내용, 주제, 효용, 가치관 등 다양한 요소를 파악해야 하고 상세한 소개가 필요하기 때문에 유독 대면 미팅이 많은 것 같다. 워낙 책이 안 팔리기 때문에 한 권이라도 더 팔 방법을 쥐어짜 내려면 MD와 영업자가 두뇌 풀가동해야 하는 업계의 슬픈 특성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MD 미팅은 이렇게 진행된다. 온라인 서점마다 회사 내부에 미팅 공간이 있다. 예약 시간이 되면 MD는 로비로 나가 출판사 영업자와 만난다. 우선 저자, 내용 등 책 소개를 받고, 책을 어떻게 판매할지 마케팅 안을 논의한다. 책을 어느 영역에 노출할지, 어떤 프로모션을 진행할지 등 책을 알리는 모든 방법에 관해 대화한다. MD는 대부분 책을 좋아하고, 책 좋아하는 사람은 책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신간 미팅 시간은 갓 나온 따끈한 책의 실물을 대한민국에서 거의 가장 빠르게 확인하는 데다 초미니 북토크까지 가질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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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있다. 미팅이 너무 많다. 이는 MD와 영업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다. 우선 MD인 나는 미팅을 네다섯 개 연속으로 하면 몸도 마음도 과열되고 주의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특히 처리하다가 자리에 놓고 온 업무까지 있으면 머릿속이 더욱 하얘진다. 분명 말을 많이 하긴 했는데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 상태로 자리에 돌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미팅 시간은 10분이다. 여러 미팅이 이어지면 시간이 초과하기도 한다. 영업자도 계획한 시간에 미팅을 마치고 다음 서점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일정이 지체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 책 한 책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야기하기에는 물리적으로 한계가 발생할 때가 있다. 멀리서 오셨는데 불과 3분 미팅을 마치고 돌아가셔야 하는 분께는 죄송한 마음이 든다.


내가 가장 맹렬하게 업체 미팅을 진행 한 시기는 2019년 6월이다. 당시 ‘시/에세이’ 분야가 공석이 되어서 내가 일시로 ‘소설’과 함께 두 분야를 맡아야 했다. 미팅 건수도 두 배로 많아지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했다. 실제로는 네 배는 늘어난 듯했다. 에세이는 미팅이 꽉 차서 흘러넘치는 분야였다! 에세이는 다른 분야보다 신생 출판사가 많았다. 전문 연구의 결과물인 학술 지식을 담아야 하는 인문/교양, 작가의 창작이 요구되는 소설에 비해 에세이는 개인 이야기의 비중이 높다. 글의 감성 농도가 짙다.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아 신생 출판사가 첫 책으로 도전하기 적합한 분야인 것 같다(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신생 출판사가 많다.’ 에세이 분야는 신간 등록부터 마케팅까지 책 유통 전반을 설명해야 하는 미팅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미팅 전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에 일단 내방 후 전화를 주시는 분도 많다. 그리고 신생 출판사는 아니지만 MD가 바뀐 줄 몰라서 혹은 연락이 안 닿아서 그냥 왔다는 영업자의 전화까지…. 기본 예약 미팅만도 많은데 추가 미팅까지 더해 약간의 틈도 없이 쉴 새 없이 폭풍 미팅과 업무가 몰아치는 날이 몇 주 이어졌다.


당시 가장 두려웠던 말이 ‘잠깐 책만 전달하고 가겠다’였다. 일단 나가서 책을 받아 들면 결국 몇 분은 서서 대화해야 한다. ‘요즘 일정을 초 단위로 관리하고 있어서’ 도저히 나갈 수가 없다고 호소하고 통화를 마친 적이 몇 차례 있다. 이 말을 들은 대각선 자리의 동료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 와중에도 기존에 담당하던 소설과 특색이 다른 분야를 새로 공부할 수 있는 건 좋다고 생각했다니 이상하긴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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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잠을 깨니 오른쪽 등 부위가 쑤셨다. 여름이었다. 이 계절의 단골, DSPJ(이름을 언급하기도 싶은 대상포진)에 당첨되어 휴가를 냈다. 안 아픈 반대 등 쪽으로 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200번씩 돌려가며 텔레비전을 봤다. 재방송 중인 음악 방송에 시선이 멈췄다. 진행자는 한 아이돌 그룹 멤버였다. 처음 보는 얼굴에 철판 깐 파워 애교 퍼포먼스가 내 취향에 맞았다. 아픈 등을 다스리던 며칠 동안 얻은 세 가지 삶의 깨달음. 첫 번째. 진행자의 살짝 선을 넘는 애교, 주접, 발 연기가 없는 음방(음악방송)은 음방이라 할 수 없다. 두 번째.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질환과 통증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인생 안전판, 보험을 들어놓길 정말 잘했다. 마지막 세 번째. ‘건강 관리 평소에 하자’는 아니었다….


그 후에는 이런 초고밀도 연쇄 미팅을 경험하진 않았다. 우선 분야가 조정되었다. 몇 년 더 지난 후 일이지만 시스템을 통한 사전 예약 절차가 자리 잡았다. 결정적으로 이듬해 코로나19가 찾아왔다. 대면 미팅이 중단됐고 모든 논의는 전화와 메일로 진행했다. 기존 업무 방식을 재점검해야 했던 시기였다. 팬데믹 종료 후 대면 미팅이 재개되었으나 2020년 이전 수준으로 MD를 찾지 않는 출판사 수가 늘었다. 기대 판매량이 높은 전략 도서만 대면 미팅을 요청했다. 반대로, 기존처럼 대부분 신간을 직접 소개하는 출판사도 있다.


어떤 경우든 핵심은 같다. 미팅 진행 여부, 진행 수보다 미팅의 질이 중요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 성과를 내는 미팅을 위해 영업자가 유념해야 할 여러 가지 중 줄이고 줄여 단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을 팔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MD에게 묻지 않는 것이다. 궁금한 것을 확인하러 귀한 시간과 교통비 들여 먼 길 온 것인데 물으면 안 된다니? 당연히 MD는 영업자의 질문을 환영한다. 문제는 ‘순서’다. “이 책을 팔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전에 “‘이런 것을’ 해보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를 먼저 말하면 좋다.




글쓴이: 구환회

교보문고 소설 MD. 십수 년간 성공과 실패 사이를 오가며 쌓은 MD로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오늘도 판매 실적을 향해 정진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