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서점 MD의 읽고 파는 이야기
몇 가지 이런 것의 예시를 들겠다. “이 책은 오늘의 책, 이달의 책, 올해의 책에 올리면 좋겠다”(도서 선정), “당장 메인 페이지 상단에 노출해야 한다”(노출 영역), “이 책을 구매하면 금괴를 주는 이벤트를 하겠다”(이벤트 내용) 등. 출판사 내부에서 구상해본 마케팅 안을 제시한 다음에 ‘이 방법이 효과가 있을지’ MD에게 의견을 물으면 논의에 속도가 빠르게 붙는다.
나도 모든 책의 베스트 마케팅 방안을 자판기처럼 내놓고 싶다. 불가능하다. 불과 몇 초 살펴보고 책을 파악할 수 없다. 곧 세상에 나올, 지금 MD 눈앞에 놓인 책. 이 책을 가장 자세히 아는 사람은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출간을 준비한 편집자와 영업자다. 책의 장점과 특색을 분석하여 최적의 마케팅 안을 내부에서 ‘아주 기초인 내용이라도’ 일단 기획해볼 것을 권장한다. 틀려도 좋고, 정답은 없다.
한 번은 영업자가 ‘대박 예감 기대작’을 소개하겠다며 찾아왔다. 작가의 명성, 확보된 팬의 규모, 예상 판매량, 출간 이벤트와 특전, 저자의 소셜 미디어 홍보 계획, 출판사가 집행할 광고 등 마케팅 내용 전반을 신속 브리핑해주었다. 나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동의할 부분은 동의하고 수정할 부분은 수정하며 빠르게 미팅을 마쳤다. 이미 마케팅은 다 준비됐으니 나는 홍보만 하면 되겠구나 머릿속으로 회의록을 정리했다. 책의 판매는 기대만큼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준비부터 실행까지 할 것 다 한 ‘졌지만 잘 싸운’ 사례로서 지금도 인상 깊게 기억한다. 물론 이는 극단적으로 바람직한 사례다. 그리고 긴 역사에 걸쳐 다양한 마케팅 시행착오를 거친 출판사였다. 대부분 책은 서점과 출판사가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마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떤 경우든 ‘선 계획 제시, 후 의견 요청’이 필수라는 사실 하나만 기억하면 되겠다.
MD가 A부터 Z까지 면밀하게 살펴보고 긴 시간 소통해야 하는 미팅도 물론 있다. 신규 출판사의 첫 책이다. 출판이 처음이라면 영업, 마케팅 감을 잡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태,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나 온라인서점 사이트, 대형 출판사 소셜 미디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주요 책 소개 계정을 샅샅이 뒤지면 지금 유행하는 책 마케팅 방법이나 베스트셀러 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마케팅 초안이라도 짜보고 첫 미팅을 하면 같은 신규 출판사 중에서도 남다른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성과를 내는 최선의 비책은 끝없는 교육과 배움이다(출판사뿐만 아니라 서점 직원도 마찬가지다). 검색과 독학 외에도 출판계 네트워크에서 정보를 공유하거나 기관 교육을 수강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현장에서 일하는 MD에게 대면, 비대면으로 정보를 얻는 기회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적고 보니 대부분 암묵지다. 무료로는 물론이고 돈을 내고라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니. 출판인이 정보에 목마를 수밖에 없다. 체계적 교육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낀다. ‘미팅에서 자주 받는 질문 모음’이나 ‘출판 마케팅을 위한 서점 사용 가이드’라도 내가 정리해서 어디 올려야겠다.
출판은 쉴 새 없이 신상품이 쏟아져 나오는 과잉 공급 산업이다. 미팅 시간에 온라인서점 미팅룸을 찾으면 열띤 영업의 열기를 체감할 수 있다. 한 공간에서 수십 건의 미팅이 이뤄진다. 이 중 성공한 미팅을 정의한다면 MD가 ‘이 책을 많이 팔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미팅이다. 이를 넘어선 최고의 미팅은 ‘MD가 이 책을 꼭 읽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미팅이다. ‘성공한 미팅’은 마케팅 지식과 기술만 있어도 되나, ‘최고의 미팅’은 책을 향한 영업자의 애호가 추가되어야만 만들 수 있다.
정말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영업자가 추천하는 책은 신뢰하게 된다. 그런 분이 좋다, 재미있다, 꼭 읽어야 한다 말하는 책은 웬만하면 읽어본다. 그러다 인생 책을 만나기도 하다. 2019년 개정 신간으로 읽은 『시핑 뉴스』(문학동네)가 대표적이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애니 프루가 1993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함께 받은 걸작이다.
자신을 멸시하던 아내는 사고로, 자식과 별 교류가 없던 양친은 스스로 선택하여 세상을 떠나고 코일 곁에는 딸 둘만 남는다. 무능력하고 볼품없는 30대 실직자는 절망만 남은 뉴욕을 떠나 선조가 살던 캐나다 뉴펀들랜드로 이주를 결심한다. 그곳은 살을 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거친 바다가 사람을 집어삼키기도 하는 캐나다 최동단의 변경이다. 평생 자기 간수라는 걸 해본 적 없는 남자 코일은 이토록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제2의 출발에 성공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오래 곪은 마음의 상처는 어느새 치유되고, 코일은 희망을 획득한다. 작가가 기적을 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극중 인물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도록 돕는다는 사실이 감격을 준다. 혼자 형광등도 갈아 끼우지 못할 것 같은 코일도 재능이 있었다! 지역 황색 언론사에 취직해 쓴 그의 기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코일의 삶이 밝아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감과 고정 지면을 얻고 점차 삶의 기틀을 다진다.
나는 『스토너』(알에이치코리아, 1965)를 읽기 전에 기대했던 울림을 『시핑 뉴스』를 통해 얻었다. 『스토너』가 평범한 사람이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하루 속에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여 삶의 특별한 충만함을 맛보는 소설이리라 오해했다. 그런데 『스토너』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교수도 되고, 캠퍼스에서 동료 교수와 파워 게임도 벌이고, 불륜도 한다. 못 쓴 소설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21세기에 가장 주목받은 20세기 소설 중 하나다). 내 엉뚱한 예상과 달리 『스토너』는 너무 격정적(?)이었다. 내가 바랐던 ‘너무 평범해서 위대한 사람’의 잔잔하고 뭉클한 드라마는 『시핑 뉴스』에 들어 있었다. 지금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자책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내가 바랐던 ‘너무 평범해서 위대한 사람’의 잔잔한고 뭉클한, 그리하여 지금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자책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바라는 드라마는)
나는 대상포진 치료 기간에 『시핑 뉴스』를 읽었다. 당시 ‘위대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메모한 기록이 남아 있다. 『시핑 뉴스』는 평생 3명 중 1명은 경험하는 전기에 감전된 듯한 통증을 조금이나마 잊게 하는 진통제가 되었다. 그 초여름의 짧은 휴식 동안 얻은 깨달음 중 세 번째는 ‘건강 관리 평소에 하자’는 아니다. ‘사람은 아파 봐야지만 건강에 신경 쓴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건강 조심해”라는 인사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 대답은 언제나 “알겠어. 고마워”이지만 불혹 전 직장인은 어지간해서는 몸을 잘 돌보지 않는다. 처맞은 후에야 그럴싸한 건강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나’의 아픔도 몸에 직접 새겨지기 전까지는 체감할 수 없는데, 나에게 닥치지 않은 ‘남’의 불행을 먼저 헤아리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라서 남에게 위로도 잘 못한다. 이런 뉴펀들랜드의 빙산 같은 사람을 위해서 소설이라는 예술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남을 넘어 가상 인물이기까지 한 코일의 인생 역정을 따라가며 함께 울고 함께 웃다가 타인의 처지를 이해해 보는 경험을 했다. MD이기에 앞서 독자로서 『시핑 뉴스』를 읽으며 성장했다. 매일 반복되는 10분의 미팅 시간 동안 책을 잘 소개해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내가 먼저 영업자에게 잘 소개받은 책은, 나도 독자에게 열심히 소개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추천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글쓴이: 구환회
교보문고 소설 MD. 십수 년간 성공과 실패 사이를 오가며 쌓은 MD로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오늘도 판매 실적을 향해 정진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