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독서, 북토크 (1)

온라인서점 MD의 읽고 파는 이야기

by 북바이북
9791157102730.jpg 『던전밥』쿠이 료코 지음, 김완 옮김, 소미미디어, 2016

2024년 6월 29일 토요일. MD 경력에서 유일하게 휴일 근무를 놓쳐서 안타까웠던 날이었다. 주말에 회사 일을 하지 못해 아쉬웠다니 대체 무슨 말일까? 만화 분야 MD가 출판사와 협업하여 마련한 역대급 초대형 특별 이벤트의 지원 업무였기 때문이다. 오후 ‘모시’, 서울 시내 ‘모처’에서(워낙 희소한 자리이다 보니 출판사는 보안을 위해 최소한의 정보만 공개했다) 인기 만화 『던전밥』(소미미디어)의 작가 쿠이 료코의 내한 사인회가 열렸다.


행사를 도운 만화 MD와 다른 동료 MD들은 각서라도 쓰고 왔는지 행사장 분위기를 포함해 모든 내용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다. 나도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에 올라온 인증 글을 통해 행사장 분위기를 유추해야 했다. 반응을 살피며 더할 나위 없이 황홀한 시간이었으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은 모두 온라인에 공개된 정보다. 운 좋게 당첨 인원에 포함된 100명의 팬은 좋아하는 작가를 만났다. 작가의 친필 사인, 사전에 요청한 작품 캐릭터의 일러스트,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단 하나뿐인 사인지를 받았다. 작가와 눈을 맞추며 통역을 거쳐 질문을 주고받았다. 파격도 보통 파격이 아니다. 안 봤는데도 눈앞에 그려진다. ‘행복 한도 초과’의 현장이…….


아무리 많은 돈과 정성을 쓴다고 해도 천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행사다. 독자는 물론이고 MD도 마찬가지. 사인회 후기 중 너무 감격해 운 사람이 있었다는 글도 봤다. 나도 눈물이 난다. 이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을 한 독자는 책과 작가를 향한 애정을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다. 개인 일정 때문에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해 지금도 아쉽다.


반대로 내가 부재한 것을 안도했던 북토크 행사도 있다. 그 행사의 하루를 새벽 시간부터 재구성해 보자.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거주하는 작가 A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났다.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했다. 한 서점에서 주최한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애석하게도 행사는 취소되었다. 강연장을 찾은 독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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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을 듣고 나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 릴레이 강연 캠페인의 다음 차례 담당자는 나였다. “강연은 계속되어야 한다. 참여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전체 기획을 총괄한 동료와 함께 사전 홍보를 강화했다. 비장의 수도 썼다. ‘행사의 꽃’인 경품 추첨 시간을 강연이 완전히 끝난 후로 미뤘다. 강연 장소는 서울 시내 한 대학교 강의실이었다.


행사일이 되었다. 강연을 한 시간 앞두고 작가 B는 평소 인터넷에서 친숙하게 봤던 옷차림 그대로 혼자 행사장에 찾아왔다. 별로 웃기지도 않은 내 말에 크게 웃음을 지었다. 소탈한 첫인상이었다. 권위도 격의도 느껴지지 않은 강연은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흥행도 잘 됐다. 미사 다 끝날 때 들어와서 영성체만 하고 돌아가는 신자처럼, 강연은 이미 절반을 지나 막판으로 흐르고 있는데도 갈수록 많은 사람이 입장해 강연장(아이패드 추첨식장)을 빛내주었다.


경품 추첨을 앞두고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 한 학생이 마이크를 쥐고 말했다. “솔직히 ‘아이패드에 눈이 멀어서 참석했는데’ 강연 정말 좋았고 잘 들었습니다.” 아마 한두 명 더 아이패드를 언급했던 것 같다. B가 그게 무슨 뜻인지 지금이라도 묻는다면, 행사 흥행을 위한 마중물이었다고 답하려고 한다.




이처럼 온라인 환경에서 일하는 MD도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한다. 강연, 북토크, 북 콘서트, 낭독회, 사인회, 원데이클래스 등 이름과 유형은 다양하다. 어떤 행사든 간에 작가 만남 행사를 준비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항목은 첫째도 둘째도 ‘모객’이다. 참석 인원을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한 후 초대 규모를 정해야 한다. 작은 공간이 어울리는 주제의 행사인데 욕심을 내세워 대형 강연장을 빌리면 빈자리가 많아 흥이 안 난다.


북토크 진행 시 꼭 점검해야 할 3대 중대 사항의 두 번째는 ‘리허설’이다. 행사를 기획한 주최 측으로서도, 행사에 참여한 관객으로서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이게 왜 안 되지?”다. 행사 시작을 앞두고 강연 파일을 노트북에 연결했으나 인식이 안 되는 상황이다. 파일이 든 USB를 안 가져왔다면 최악이다. 어렵사리 연결은 했는데 PC가 글꼴을 지원하지 않아 자료가 깨진다거나 동영상 재생이 안 되어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면, 고객은 강연이 시작하기도 전에 부정적 인상을 받는다.


안전지상주의자이자 프로페셔널을 지향하는 나는 웬만하면 강연 자료를 미리 받아서 확인한다. 정보 유출 방지를 위해 먼저 전달받을 수 없다면 파워포인트, 키노트 등 어떤 형식을 사용하는지 정도라도 알아 둔다. 그리고 행사 날 가능한 한 일찍 도착해 파일을 실행해 본다. 노트북과 스크린 없이 강연자가 오직 마이크만 사용하는 행사는 한결 마음이 가볍다. 이 외에도 음향, 조명, 집기 외 다양한 물리 조건을 작동해 봐야 한다.


끝으로 ‘GV 관리’까지 잘해야 행사가 순조롭게 끝난다. GV는 Guest Visit의 줄임말로 주로 영화계에서 감독, 배우, 평론가가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말한다. 출판계의 북토크에선 ‘질의응답 시간’에 해당한다. 『GV 빌런 고태경』(은행나무)이라는 책이 있을 정도로 ‘GV 빌런’은 영화 애호가 사이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배려도 예의도 없는 발언으로 씁쓸함을 짙게 남기는 다양한 GV 빌런 설화가 구전되고 있다. 영화 GV는 책 GV보다 열기가 유독 뜨겁다. 행사 내내 작가와 마주하는 북토크와 달리 영화 상영 후 짧기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당혹스러운 질문이 나올 확률도 높다. 특히 세 가지 유형이 내 눈에 자주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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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질문을 두 가지 이상 하는 사람이다. “우선 A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고요, 그다음에는 B에 대해 묻고 싶은데요.” 질문 행진은 가끔 C, D, E까지 갈 때도 있다. 두 번째는 너무 질문을 길게 하는 사람이다. 사소한 내용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과도하게 늘어놓거나, 질문이 아닌 비평을 길게 하거나(영화 그렇게 만들면 안 된다고 감독을 훈계하는 사람도 봤다), 특정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열변을 털어놓기도 한다. 슬프게도 1, 2번이 동시에 해당하는 관객이 꽤 많다. 장황한 질문이 끝난 뒤 게스트는 항상 “그런데 질문이 뭐였죠?”라고 되묻는다.


세 번째는 한국어 원어민이면서도 외국인 게스트에게 외국어로 질문하는 사람이다. GV에서 통역사의 기본 임무는 ‘한국어 질문의 외국어 통역’과 ‘외국어 답변의 한국어 통역’이다. 질문자의 외국어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통역사는 질문 내용을 한국어로 옮겨서 전체 관객에게 공유해야 한다. 또한 게스트가 질문을 이해 못 하면 통역사가 내용을 정제해서 다시 전달해야 하므로 아까운 시간이 낭비된다.


영화 행사도 책 행사도 사회자의 책임이 막중하다. GV 행사에 처음 온 사람은 주의 사항을 모를 수도 있다.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익숙하게 다닌 사람도 공지가 없을 때보다는 있을 때 질문을 더 가다듬는다. 그래서 북토크 행사에서 질의응답 시작을 알릴 때 나는 반드시 공지한다. “보다 많은 분들이 OOO 작가님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질문은 하나씩만! 그리고 궁금하신 내용 위주로 간결하게! 부탁드립니다.” 물론 너무 엄격할 필요는 없다. 모든 참석자가 좋은 질의자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실수와 오해도 행사의 일부다(웃고 넘어가는 수준에서 그친다면……). 진행자는 작가, 독자 그리고 공간을 채운 모든 이가 서로 배려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돕기만 하면 된다.




글쓴이: 구환회

교보문고 소설 MD. 십수 년간 성공과 실패 사이를 오가며 쌓은 MD로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오늘도 판매 실적을 향해 정진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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