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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스물 다섯 번째 이야기

by 라라클

의사는 나에게 당장 병가를 내야 한다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단은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한다고 했고, 병원으로 부터 공황장애, 우울증, 집중력 강화를 위한 약을 처방받았다.


가까운 선생님조차 “새로운 업무에 왜 그렇게까지 반응하냐”며 의아해할 정도로, 회사 사람들은 나의 상태를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이후 공황장애에 대해 공부하면서 알게 됐다.

이전 직장에서의 괴롭힘이 남긴 트라우마가 뇌에 학습되어, 사소한 자극에도 과장된 공포 반응이 일어났다는 것. 비슷한 상황에 노출되며 뇌 속 방아쇠가 당겨졌고 죽을 힘을 다해 과거의 기억을 막고 있던 무언가가 밀려나가 터져 버린 것이다.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일상조차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업무는 중간에 그만두면 동료들에게 큰 부담을 줄 수 있었기에, 약에 의지해 일을 계속했다.

매일 야근을 했다. 약의 힘으로 생각을 차단한 채 로봇처럼 미친 듯이 일만 했다.

(아, 사람의 뇌가 약으로 조정될 수 있다니, 얼마나 하찮고 가벼운 존재인가!)

퇴근 무렵, 약효가 떨어지면 나는 침대에 쓰러져 울음을 터뜨렸다.


몸무게는 10kg 이상 빠지기 시작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매일 밤 악몽을 꾸었고, 그 꿈 속에는 늘 괴롭힘의 주동자가 등장했다.

꿈 속에선 언제나 그가 등장해 잊고 있던 장면들을 끄집어냈다. 나는 다시, 또다시 그 고통을 맛보았다.

나는 아침마다 울면서, 혹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씻으며 거울을 향해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우울증은 점점 깊어졌고, 나는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다.

회사에서 누군가의 가벼운 말이 나를 흔들었고, 나는 공황발작으로 근무 중 병원에 가 진정제를 맞아야만 했다.


결국 의사의 강력한 권고로 휴직을 결정했다.

다만 당장 휴직은 어려웠고, 전임자가 남긴 업무를 모두 마무리한 후 1개월 뒤에야 휴직할 수 있었다.


나는 침묵했고, 그래서 누구의 공감도 받지 못했다.

약에 의지해 겨우 버텨내는 날들이었고,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에 오해만 쌓였다.

사람들의 눈에 나는 단지, 배치된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떼쓰는 직원으로 비쳤을 뿐이었다.


나를 그 극단의 지점까지 이끈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 시기, 나의 마음을 유일하게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았던 사람은,

안타깝게도 이미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서울시립미술관의 7급 공무원뿐이었다.


그녀를 알았더라면,

나도 그녀도 이렇게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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