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록
흑백요리사를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아, 이건 꽤 친절한 프로그램이구나”였다.
요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굳이 친절할 필요가 없다. 결과만 던져주고,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는 알아서 짐작하라는 식이다. 무대 위 몇 분이 전부인 것처럼 편집하고, 그 몇 분에 인생이 걸린 것처럼 포장한다. 우리는 박수칠 타이밍만 정확히 알면 된다. 그 이상을 요구받지 않는다.
그런데 흑백요리사는 달랐다.
요리가 완성되기까지의 시간을 굳이 다 보여줬다. 재료를 고르는 얼굴, 불 앞에서 멈칫하는 순간, 이미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걸 알아채고도 한 번 더 손을 뻗어보는 선택들. 결과와 직접적으로 이어지지 않아 보이는 장면들이 계속 화면에 남아 있었다. 마치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고 싶은 건 완성된 접시가 아니라, 그 접시에 도달하기까지의 사고의 흔적인 것처럼.
그래서 보고 있으면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잘된 장면만 골라 보여주지 않아서였다. 애매한 판단, 어정쩡한 선택, 굳이 편집해도 될 법한 순간들이 지워지지 않았다. 보통의 서바이벌에서는 그런 시간들이 빠르게 정리된다. 실패는 요약되고, 망설임은 삭제된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장면들이 끝까지 남아 있었다. 그 덕분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의 시간이 이상할 정도로 중요해졌다.
우리는 사실 다 안다.
한국 사회가 결과를 중시해왔다는 것도 알고,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 공허하게 반복되어 왔다는 것도 안다. 교육에서도, 평가에서도, 우리는 늘 그렇게 말해왔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그런데 막상 텔레비전 앞에 앉으면, 우리는 다시 결과만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한다. 그것도 실제의 그들이 아니라, 편집된 형태의 그들을 놓고.
이 장면은 잘했고, 저 장면은 별로였고, 저 사람은 실력이 있고, 저 사람은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몇 분짜리 화면을 보고서다. 생각해보면 꽤 아이러니하다. 한국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인데, 우리는 화면 속 인물들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안다고 말한다. 판단은 빠르고, 근거는 얇다.
흑백요리사는 그 얇음을 일부러 두껍게 만든다.
결과를 보여주기 전에, 판단이 오가는 시간을 먼저 내놓는다.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 틀릴 가능성을 안고도 방향을 정해야 하는 시간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요리 서바이벌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작업 노트를 옆에서 들춰보는 느낌에 가깝다. 완성된 답안보다, 지워진 흔적과 메모가 더 많이 남아 있는 노트 말이다.
보다 보니 요리를 보고 있다는 느낌도 점점 옅어졌다.
대신 한 사람이 문제를 대하는 방식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기준으로 결정을 내리는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끝까지 가져가는지. 그런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결과를 예측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옆에 앉아 지켜보는 사람이 된 느낌이 든다.
하룻밤의 불장난은 불처럼 사라지고, 쉽게 번 돈은 물 쓰듯 흘러간다. 손에 남는 게 없어서라기보다, 그 앞에 쌓인 시간이 너무 얇기 때문이다. 과정이 빈약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고, 금세 다른 판단으로 덮인다. 그래서 나는 이 프로그램이 보여준 느린 시간들이 좋다. 불을 오래 지켜보고, 손을 데워보고, 몇 번이나 다시 불 앞에 서는 그 과정이. 요리든 사람이든, 아마 오래 남는 건 그런 시간 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