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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Jun 13. 2023

펜이 멈췄을 때도, 상상의 맷돌은 계속 돌아간다

내가 작가의 꿈을 포기한 적이 있었나?


두근두근이야, 행복할 때나 위험할 때 두근두근 거리는 게 wonder
 (시즈루, 연예사진 2003)


모두에게나 제 각기의 wonder가 존재한다.


나에게 있어서 그 wonder는 일명 공상. 상상의 맷돌을 돌리는 것이다.


공상은 나에게 놀이와도 같았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상상하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상상의 맷돌을 돌리기 시작한 건 이민을 가고 나서부터였다. 초등학교 4학년쯤이었는데, 당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부모님께서 아주 긴 시간 맞벌이를 하셔야 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낯선 언어. 고립되기 딱 좋은 3대 요소에 미성년자라는 타이틀까지 더하고 나니, 나는 영락없는 '집순이'가 되어버렸다.


혼자 어디를 갈 수도, 무언가 할 수도 없었던 나. 나는 학교를 제외한 나의 대부분의 시간을, 매일 집에서 혼자 보내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염없이 부모님을 기다릴 때면, 지루하기도 때로는 두렵기도 한 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것저것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 여러 상상을 했었는데, 그중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재미있게 했던 상상중 하나가 내가 보고 있는 또는 보았던 드라마를 주제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었다.


뒷내용을 유추해 보거나, 새로운 주인공을 만들어 이야기의 형태를 바꾸거나, 새로운 사고 사건들을 만들거나, 주인공들의 과거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등등. 이것저것들을 상상하다 보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가곤 했다. 그렇게 나의 상상 속에서 나는 자랐다. 그리고 나의 상상의 맷돌은 내가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대학교에서도 그리고 심지어 직장인이 돼서도 쉴세 없이 돌아갔다.


생각해 보면 '드라마 작가'라는 꿈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드라마 작가가 될 거야'라기보다는 장래희망이 '작가'였고, 내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나왔으면 좋겠다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로부터는 '영어'를 배우기도 바쁜 와중에 '한국어'로 무언가를 한다는 생각, 그리고 미국에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성공'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들던 시기라, '드라마 작가' 혹은 '작가'라는 꿈은 저 멀리 내려놓았었었다.


아니, 내려놓아야 한다고 나 자신을 설득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난 정말 열심히 영어를 배웠다. 하지만 아무리 영어를 빨리 배운다 한들, 영어로 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나의 감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 한국어를 대체할 수 있는 언어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민을 가면 죽을 때까지 미국에서 뼈를 묻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현재 나는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다시 이야기가 피어나는 순간

다시 작가이야기로 돌아가서. 내가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 되기로 결심하게 된 건 2020년. 대략 3년 전 친구와의 대화에서부터였다. 당시 BTS 팬이었던 친구가 BTS굿즈 옷을 입고 다니는 게 부끄러워 대신 정국이가 입은 옷을 사서 입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수줍게 말하던 그녀가 엉뚱하기도 하고 귀엽기하고, 뭣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그런가 시간이 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계속해서 나의 머리에 맴돌았다.


결국 윗 이야기를 토대로 나의 맷돌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평범했다.


'슈퍼스타와 사랑에 빠지는 평범한 여자'


사랑 이야기에 있어서 클리셰 중의 클리셰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내 상상을 돕기 위해 나의 스토리에 걸맞은 남자주인공을 모색하던 중 아이돌이자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는 도경수 배우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당시 EXO의 '으르렁'은 알고 있었지만, 개개인 멤버들을 알지는 못했던 나. 당시 그의 존재는 사뭇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인기 아이돌 가수 중 연기를 저렇게 잘하는 배우가 있었다니. 심지어 그의 목소리는, 미쳤다. (이 계기로 한창 EXO에 미쳤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내 맘대로 도경수 배우가 나의 남자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이 확정되고 나니, 나의 맷돌은 정말 쉴세 없이 돌기시작했다. 양치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아이와 미끄럼틀을 타면서도, 아이를 재우려 방에 들어가 아이 옆에 누워서도 나의 상상의 맷돌은 돌아갔다.


그렇게 1주일 남짓으로 스토리를 완성하고 이야기 속 안에 사용될 음악들 플레이리스트까지 완성했다. 보통때와 같으면, 상상의 맷돌이 멈추는 순간 나의 이야기도 나의 상상 속으로 사라졌겠지만,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상상 속에 묻혀 언젠가 사라져 버릴 이야기가 아닌,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는 그런 진짜 이야기로 엮어내고 싶었다.


그렇게, 대학 이후 몇 년 만에 처음 글을 쓰기 위해 나는 다시 펜을 집었다.


하지만 문제는 나의 이야기를 종이로 옮기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웹소설로 써볼까 싶어, 웹소설을 포맷이 맞춰 나의 글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워낙 웹소설 내 장르도 다양하고, 소설과 다르게 대부분의 내용을 대사형식으로 풀어나가는 경우도 많아 내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고 몇 장 되지 않아, 이것이 얼마나 큰 오산이었던 것인지 깨달았다. 누가 웹소설 쓰는 게 쉽다고 했나? 세상에 만만한 거 없다더니... 웹소설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상상에서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였는데, 그것이 글이 되는 순간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많은 대사들로 엮는다 한들, 모든 스토리를 채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뜩, 이게 안되면 드라마 대본으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본은 대사가 주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만 하다 포기했다.


그때 아이가 만 2살 이이였는데, 독박육아에 가정보육을 하고 있었기에 밤샘작업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새벽 2-3시 잠들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이를 하루 종일 돌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니 마음도 몸도 피폐해졌고, 아무리 백다방 연유커피를 들이부어도 도저히 제대로 아이를 돌볼 수 없었다.


그 후 1년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그리고 우연히 유튜브에서 SBS드라마공모전 광고를 보았다. '나도 한번 해볼까?' 생각이 들더라. 1년이 뭐라고, 아이도 어느덧 사람이 다 되었겠다. 다시 한번 펜을 잡았다. 하지만 클리셰가 넘치는 스토리로는 당선이고 뭐고 어림도 없을 것 같다 스토리를 바꾸기로 했다.


잘 쓰려면 좋아하는 것을 써야 한다. 그래서 난 미스터리 스릴러를 택했다. 그리고 또다시, 아이의 밥을 먹여주면서도, 양치를 해주면서도,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걸 도와주는 동안에도, 나는 열심히 나의 맷돌을 돌렸다. 그리고 아침을 먹으며 한 줄. 낮잠 재우고 한 줄 그리고 밤에 눈을 비비며 한 줄. 한 줄 한 줄씩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그렇게 어느덧, 시나리오를 완성해 보니, 마감일이 지났다. 심지어 나의 시나리오를 읽어본 친구들은 나의 글이 별로라고 했다. "너무 복잡해." "이야기가 너무 비현실적이야." "난 잘 모르겠다."


내가 온전한 마음이었다면, 분명 좌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잠을 못 자서 망각증에 걸린 걸까?


좌절은커녕, 오기가 생기더라.


이를 악물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처음부터 다시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좀 더 심플하게. 좀 더 간결하게. 잠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잠자는 시간을 늘렸다. (물론, 공모전 기간에는 예외였지만…) 대신 서두르기보다 그다음 해 공모전들을 공략하기로 했다.


그렇게 2023년 1월, 난 나의 처음으로 공모전 응모에 성공했다.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지 2년 만이었다.


나의 펜은 수많은 시간 동안 멈춰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지금 작가 지망생의 길을 걷고 있는 건, 나는 계속 상상하고 있었고 글 쓰는 나의 모습을 꿈꿔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생활이 녹녹하지 않아서, 삶이 바빠서,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어휘력이 부족해서. 모두에게 이유는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정당하다. 하지만, 만일 그런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다시 펜을 잡는다면. 만일 그렇다면, 작가가 되는 건 그대의 숙명이지 않을까? 조심히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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