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나의 최애와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디를 가고 싶나요?
눈을 감고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머릿속 기억의 영사기를 천천히 돌려본다.
현재에서 과거로, 순간에서 장면으로 넘어가며.
가고 싶은 곳? 누구와? ‘나의 최애’라면 한 사람이어야 할까? 꼭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자전거도 될 테고, 튼튼한 나의 두 다리를 소유한 나 자신도 될 수 있겠네.
물음에 물음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가고 싶은 곳은 참 많다.
그중에서도 나는 문득 강원도 하늘내린 인제의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을 떠올린다.
자작나무숲은 탐방로 입구에서부터 약 3km의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겨울이라 통제된 코스가 많았지만,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오롯이 내리막이라 무릎이 아팠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날은 아기백호와 꽃송이와 함께였다. 오며 가며 아기백호보다 어린아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아기백호를 데리고 굳이 이런 곳까지 온 내가 조금 무모하게 느껴졌지만, 아기백호는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스스로 걸으며, 눈 덮인 자작나무숲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담아갔다.
숲에 들어서기 전, 하얗게 빛나는 자작나무들을 보며 아기백호가 말했다.
“오~ 멋진데.”
그 말 한마디에, 내가 아기백호와 이곳에 온 이유가 모두 담겨 있었다.
아기백호는 눈을 만지고, 던지고, 미끄러지며 마음껏 놀았다. 꽃송이와 나는 혹여 미끄러져 다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아기백호는 함께 있는 백호와 꽃송이가 있어 별걱정 없이 놀지 않았나 싶다.
날씨가 춥지도 않고, 하늘도 맑았던 하늘내린 인제의 자작나무 숲이었다.
밤이 되었다.
강원도 산골 깜깜한 밤에 갑자기 밤하늘이 보고 싶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여는 순간 콧속으로 들어오는 차갑고 시원한 맑은 공기는 도시에서 문밖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느껴지는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고 반달 하나가 높이 떠 있었다. 그 주위로 산세와 어우러져 겨울 별들이 한 무리 한 무리를 지어져 있었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건 '아기백호와 이 겨울 밤하늘을 함께 보고 싶다'였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아기백호에게 말했다. "별 보러 갈까? 하늘에 별이 많아."
아기백호는 망설임 없이 “응. 갈래.”라고 대답했다.
아기백호는 잠잘 준비를 다 해놓은 터라, 잠잘 복장 위에 외투, 모자, 양말을 착용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신발은 신지 마. 아빠가 안고 갈게. 따뜻하게."
아기백호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별 많지? 서울처럼 밝지 않아서 별이 잘 보여. 우와~ 아들하고 둘이 함께 별 보니까 좋다. 아들은 어때?“ 아기백호도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좋아."
나는 또 말을 건넸다.
"물소리 들려? 내일 아침에 물 흐르는 것도 보러 가자.", "응."
"아들하고 안고 있으니 안 춥네. 아들은 추워?", "나도 안 추워."
그렇게 둘이 함께 별을 보며 짧은 대화를 나누고, 주변을 잠시 걸은 후 방으로 돌아왔다. 아기백호가 아빠 품에 안겨, 겨울밤 별을 올려다보며 나눈 그 순간이 아기백호의 기억에도 ‘찰칵’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남아주기를 바랐다.
나는 아기백호가 이런 감성과 경험을 하나씩 쌓아가며 ‘따뜻한 사람’이 되어가길 바란다. 그 따뜻함은 누군가가 정의하는 정답 같은 게 아니라, 각자 가슴에 품고 있는 저마다의 체온, 그 36.5℃만큼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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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장성한 후에도 아빠는 “큰아들, 작은아들~ 밥 먹었어?” 하고 나와 동생을 불렀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나도 아기백호에게 종종 “아들~”이라고 부른다. 어색하지만, 그 말속에서 나도 내 아버지의 기억을 듣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 나는 초중등대안학교에서 교사, 부모로 생활하고 있다. 우리는 이름 대신 별칭을 사용하는데 나는 백호, 아내는 꽃송이다. 아기백호는 아이의 어릴 적 애칭이다. T.M.I이지만 원래는 아기꽃송이백호였는데 너무 길어서 줄였다는 핑계도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