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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림 Nov 01. 2024

라이카

글감_인생

 엄마는 언제나 당당했고 강인했다. 내가 자라는 동안 유복하진 못했어도 겉으로는 평범한 아이로 자라날 수 있게 된 데에는 엄마가 내내 무거운 가방을 지고 초인종을 누르며 야쿠르트 배달을 한 덕분이며, 살가운 목소리로 ‘사모님~ 여사님~’ 하며 방문판매로 화장품을 팔았기 때문이다. 정작 엄마는 집에서 살가운 편이 아니라 과묵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모님과 여사님이 되고 싶었고 어서 어른이 되어 돈을 벌어 엄마의 가방 속 야쿠르트를 몽땅 사주고 싶었다. 엄마가 매일 저녁 햇볕에 탄 피부에 알로에 샘플을 바르지 않게 아주 많은 돈을 벌어야지. 엄마가 사모님들이 아닌 내가 벌어온 돈으로 웃게 해줘야지.


 요양병원에서 연락을 받고 들어선 병실에서는 산소호흡기의 도움을 받은 채 겨우 숨을 이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건강하던 몸은 한순간에 뼈밖에 남지 않았고, 평생 밖에서 일하느라 태워진 살결은 희다 못해 창백하고 점점의 빨간 주사 자국들로 가득하다. 먼저 와있던 이모는 눈물을 주체하지 않고 내 팔을 붙잡고 어쩌면 좋냐고, 이제 자기는 가족 하나 없는 고아가 됐다며 울었다. 그러면서 언니 죽지 마. 언니 죽지 마. 만 외쳤다. 어쩌면 다행일까. 내 울음소리는 이모의 고해 속에 묻혀졌다. 간호사님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잠시 나와달라 했다.


-이명자 환자분께서 자신이 정신을 못 차리고 죽을 때가 되면 따님께 드리라고 했어요.

-이게 뭔가요?

-저도 열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물건의 주인을 꼭 찾아달라 하셨어요.


 말을 마치며 주먹 쥔 내 손을 펼쳐 작은 철제 케이스를 올려주셨다. 케이스 위에는 몇 번이고 새로 덮어쓴 흔적이 가득한 엄마의 이름 세글자. 이명자가 적혀있었고, 짧게 흔들어보니 가벼운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생전 나에게 뭘 부탁한 적이 없는 엄마였기에 더 의아했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요양병원에 다시 방문해 얼마 없는 엄마의 짐이 담긴 상자를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3일간 잊고 지내던 그 케이스를 비로소 다시 마주했다. 엄마는 나에게 부탁이라는 걸 한 적이 없는데. 참 이상했다. 그리고 엄마의 이름이 커다랗게 적혀있는데 대체 주인을 어떻게 찾으라는 건지도 의아했다. 열어본 케이스에서는 예상 밖의 물건이 나왔다.


-아, 이거 라이카 필름이네! 이야. 나도 이거 정말 오랜만에 봐요.


 필름 한 롤. 내가 어릴 때 학예회나 졸업식을 할 때 10 샷 짜리 필름 카메라를 들고 온 엄마가 생각났다. 필름은 보통 현상해 두지 않나? 왜 필름을 가지고 있지? 라는 의문 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착잡해졌다. 그래. 일단 주인을 찾으려면 사진 속에 담긴 비밀을 찾아야지. 하고 사진관에 갔다. 사진관 아저씨는 필름을 보자마자 라이카 필름이라며 신기해했다. 그리곤 잔뜩 들뜬 표정으로 이야. 라는 감탄사만 연속적으로 내비쳤다. 라이카가 뭔데요? 라는 내 물음에 다시 현실로 돌아온 아저씨는 오래되고 유명한 회사의 카메라라고 설명하며 이게 지금은 몇십만 원씩 하는 카메라라고. 카메라가 있느냐 물었다.


-아니요. 누가 좀 부탁하셔서요. 현상이 가능할까요?

-아. 요즘 일반 필름 카메라는 현상해도 라이카 필름은 워낙 까다로워서 말이에요. 이건 오리지날 필름이잖아요. 어? 라이카 속에 후지 필름이 아니라 오리지날 라이카 필름!

-그럼 안된다는 건가요?

-내가 사진관 경력만 50년이에요. 잠깐만. 저기 앉아서 기다리세요.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도 못하고 멀뚱히 아저씨만을 바라보다 시키는 대로 사진관 소파에 앉아 있기로 했다. 라이카. 처음 들어본다. 카메라에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학예회용 만 원짜리 필름 카메라 외에 집에서 다른 카메라를 본 적이 없었다. 문자로 이모에게 상황을 설명했지만, 이모도 전혀 모른다는 말뿐이며 혹시 일이 해결되면 이모에게 연락 달라는 답장만 있었다. 검색창에 라이카를 검색하니 ‘필름 카메라의 역사’, ’라이카 감성‘, ’라이카 판매가‘ 등 사진관 아저씨의 말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잠시 후 아저씨는 암실에서 나온 뒤 고개를 갸웃거리다 나를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진짜 노력하려고 했는데. 이거 진짜 내 나이만큼이나 오래됐나 봐요.

-현상이 어렵나요?

-네. 오래되기도 했고, 요 필름은 햇빛에 닿으면 확 상해버리거든. 노출이 되면 안 된단 말이지.

-아 그런가요..

-어찌저찌 현상을 하긴 했는데, 그마저도 알아볼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래도 드릴까?

-네 어쩔 수 없죠. 그거라도 주세요.


 집에 돌아와 필름과 인화된 사진을 번갈아 보며 엄마가 왜 그동안 현상하지 않고 단단한 철제 케이스에 보관했는지, 이름을 여러 번 덧대어 썼는지 이해가 됐다. 아마 상하는게 싫어서 그랬겠지. 그만큼 소중해서. 그런데 이렇게 오래 낡아버리게 둘 거였으면 현상이라도 해보지. 어렴풋이 인쇄된 사진들은 사진관 아저씨 말대로 알아보지 못할 사진들만 가득했다. 색도 바래져 있어 나무를 찍었어도 이게 봄인지 여름인지 구분이 안 되었고, 물빛을 보고 강물인지 바닷물인지도 몰랐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이명자’ 엄마 이름 세 글자가 적힌 명찰을 달고 웃는 여자의 모습. 엄마가 아주 어릴 때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흐릿한 얼굴을 가진 단발머리 여자가 있었다. 아, 이 사람이 엄마가 찾아달라는 필름의 주인이구나. 사진을 찍어 이모에게 전송했다. 애타는 마음을 이모는 아는지 모르는지 3시간 뒤 전화가 왔다.


-이모 누군지 알겠어요? 엄마가 많이 어릴 때 같은데.

-응 맞아. 근데 아무리 확대해 봐도 옆에 누군지 모르겠어. 언니에게 이런 친구가 있었나? 나 국민학교도 다니기 전에, 언니가 15살인가 됐었어. 집이 너무 가난해서 방직 공장에서 일했었던 건 기억나. 그때 같아 옷 보면. 아버지가 아파서 언니가 일찍부터 돈을 벌었었지.


 이모의 말을 듣고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춘운방직’이라는 간판과 함께 공장처럼 생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방직공장? 그거 요즘도 있나?

-나야 모르지. 집 근처에 있긴 했는데. 잠깐만 내가 다시 연락해 줄게.


 다시 온 이모의 연락에서는 여전히 그 동네에 사는 어른에게 여쭤보니 춘운방직은 그때쯤 새로 생긴 어린 여공들이 많았던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같은 동네에 네다섯 명이 그 공장에 다니긴 했지만, 엄마는 원체 어릴 때부터 말이 없어 친구가 있는 줄은 몰랐다고 했다. 사진을 보여드렸지만, 이때는 다 단발머리 아니면 석봉이처럼 하나로 묶은 머리라며 되려 역정을 내셨다고 한다. 그리곤 혹시 모르니 엄마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인 여공들의 이름을 알려주셨다며 받아적으라 했다. 공책에는 숙희. 선희. 민자. 명숙이. 등등 그 시대 흔한 이름들 뿐이었다. 학교라고는 늦게 입학한 국민학교가 전부이고 어린 나이에 방직공장에 취직해 동생과 아픈 부모를 대신해 평생 가장이 되어 온 엄마에게 필름의 주인은 어떤 존재였길래 죽기 전까지 이토록 사무치게 그리워한 걸까. 나는 엄마를 대신해 엄마의 필름을 현상해 주고 싶은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숙희와 선희. 민자 명숙이는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엄마는 매일 밭은 숨을 내쉬며 어느 필름을 되새기고 있었을까.


 며칠이 지났을까 필름 주인 찾기는 마음속 숙제가 되었고, 일상은 엄마가 없이도 잘 흘러갔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는데 엄마 또래의 여성분이 가방을 손에 꼭 쥔 채로 나를 보며 ‘엄마를 많이 닮았네.’ 라고 말했다. 차를 우리는 데 뒤에서 짧은 소개말이 들려왔다.


-나는  선희예요. 춘운방직공장에서 일했고.


 선희는 자신이 엄마와 같은 방직공장에서 일했고 친하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집에 방문하니 누가 춘운방직에 다니던 사람을 찾는다는 소리에 도움이 될까 연락처를 묻고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를 받아 들곤 내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며 명자언니와 참 닮았다고 했다. 얼굴도. 말이 없는 것도. 나는 대답 대신 현상한 사진을 내밀었다. 선희는 사진을 보더니 당연히 누군지 안다며 숙희의 이름을 말했다.


-숙희언니에요.

-숙희라면. 방직 공장에 다녔던 여공들 중 한 분이시네요.

-맞아요. 저는 이때 13살이었죠. 더 어렸어요. 그때 숙희언니가 참 많이 챙겨줬어요. 몰래 간식으로 나온 빵을 주머니에 넣어주고, 직물 염색을 잘못해 울 때 대신 혼나주기도 했지요. 숙희언니를 찾을 줄 알았어요.


 선희의 이야기로 전해 들은 숙희. 숙희는 15살에 엄마보다 2개월 먼저 공장에서 일하던 여공으로, 중학교에 다니다 중퇴하고 공장에 취업해 엄마와 선희에게 일을 알려주고 글을 알려줬다고 한다. 공장에 있는 다른 여공들의 어깨너머로 배운 잔머리와 어디에서 들었는지 모를 이야기들도 조잘조잘 말하며 공장 내에서 인기가 좋았다고 했다. 특히 말이 없는 엄마와 가장 절친하게 지냈고, 엄마는 숙희와 있을 때만 웃어서 항간에는 목석같은 명자가 숙희와 러브러브하는 사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한다.


-그런데 방직공장이 화재가 났어요. 2년 뒤였나? 그랬을 거예요.

-화재요?

-네. 명자 언니가 숙희 언니를 찾은 이유가 아마 숙희 언니가 실종돼서였을 거예요. 그때는 전화 같은 게 있는 집이 거의 없었으니까. 다들 가난해서. 불은 났지, 사람들은 죽어가지, 숙희 언니는 그날 이후로 안 보이지. 명자 언니가 그렇게 우는 거 처음 봤어요 나는. 이 필름도 숙희 언니가 자기 오빠가 빌려준 거라며 카메라를 들고 와 제게 찍게 했어요. 명자 언니는 끝까지 숙희 언니를 찾았나 보네요. 다들 죽었다 했어도 언니는 숙희 언니를 살게 했네요.


 그리곤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냈다. 엄마. 그래서 그랬어? 숙희가 보고 싶었어? 명자와 숙희. 숙희와 명자. 어쩌면 엄마는 숙희를 찾으러 내가 싫다고 가지 말라 울어도 밖에서 일을 했던 걸까. 웃는 낯으로 아는 사람들을 물어물어 숙희를 찾았던 걸까. 멀리 이사 가자는 아빠의 말에 동네 주변만 맴돌았던 걸까. 그래서 필름을 손에 꼭 쥐고 있었던 걸까. 이젠 만났을까.



명자에게.

명자야! 나 숙희. 인간의 삶이 유한한 것은 너무 슬프지만, 무한하게 만들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어. 그건 바로 ‘사진’이야. 비록 우리는 현상되지 못했지만 나눠 가진 필름으로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숙희야. 엄마가 되어서도 괜찮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괜찮아. 지금보다 나은 모습이 아니어도 괜찮아. 대신 내 이름 하나만 기억해 줘. 명자와 숙희.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만나자.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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