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선덜랜드
Sunderland ‘Till I Die
2018년 12월 14일, 세계적인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에서 17/18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챔피언십으로 강등된 선덜랜드의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공개되었다.
2013년, 영국 스포츠 다큐멘터리 최다 판매 기록을 세우기도 했던 ‘Class of 92’ 의 제작사 ‘Fulwell73’ 이 본인들의 실제 응원 클럽인 선덜랜드의 프리미어리그 승격 과정을 담아내겠다는 일념으로 제작을 맡았지만 프리미어리그는 그리 쉽게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야심 찼던 초기 기획 의도가 무색하게 선덜랜드는 오히려 3부 리그 강등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시리즈에서는 그동안 대중들이 알 수 없었던 클럽의 방만한 운영과, 이적 시장에서의 패닉 바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패배 등, 몰락해 가는 클럽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주며 바닥 밑에 더 깊은 바닥이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선덜랜드는 그렇게 꼬박 8년을 하부 리그에서 뒹굴며 영욕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결국 돌아왔다. 클럽이 진흙탕을 뒹구는 시간 동안 그들과 함께 뒹굴며 싸우고, 버텨냈던 팬들과 함께.
선덜랜드는 과거 잉글랜드의 산업 혁명 시대에 ‘노동의 심장’이라 불리던, 북동부의 상징 같은 도시였다. 조선업, 광산업을 주축으로 성장했으며, 이후에는 자동차 산업, 과학 기술 연구 등이 중심이 되어, ‘세계 7대 지능형 도시’로 꼽히기도 했으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티브가 되었던 도시이기도 하다.
중공업 산업의 중심지답게 선덜랜드는 밤낮 구분 없이 항상 무언가가 움직이고, 돌아가는 도시였다. 사람들은 거칠었지만 책임감이 있었고, 잉글랜드 북부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그들이 뿜어내는 뜨거운 입김과 땀에는 그들의 고됨과 자부심이 묻어 나왔다.
하루 종일 거친 땀방울을 흘리며 일하던 그들에게 축구는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었다. 공과 평평한 지면이 있다면 어디서든 즐길 수 있었던 축구는 금세 선덜랜드의 노동자들의 일상으로 녹아들었고, 1879년 창단된 ‘선덜랜드AFC’ 는 도시의 자존심이자, 그 자체가 되었다.
창단 이후 1950년대까지 선덜랜드는 6번의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충분히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며 북동부의 강자로 군림했다.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긴 해도 꾸준히 프리미어리그에 모습을 드러내며 잉글랜드 축구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클럽으로 자리 잡던 선덜랜드는 16/17 시즌, 17/18 시즌 백투백 강등을 당했고, 8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25/26 시즌 드디어 꿈의 무대, 프리미어리그로 돌아왔다.
사랑은 힘들 때 떠나가지 않는 것이라고들 한다. 같이 있을 때 좋은 것보다, 힘들더라도 같이 있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고.
만약 사랑이 그런 것이라면, 선덜랜드 팬들은 적어도 인생에 한 번 이상 진정한 사랑을 해본 사람들일 것이다.
선덜랜드의 추락과 함께 기획 의도와는 다르게 백투백 강등의 과정 등, 클럽의 몰락을 있는 그대로 담긴 <Sunderland ’Til I Die> 는 공개 직후 많은 조롱을 받기도 했다.
원하는 대로 연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스포츠 다큐멘터리 특성상 시리즈에는 어떠한 미화도 없었고, 극적인 반전도 없었다.
다만 <Sunderland ’Til I Die> 가 비추는 선덜랜드의 추락에는 항상 포기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얼굴들이 있었다. 티켓 판매원, 스타디움 청소부, 매번 패배하고 실망시키는 클럽을 바라보며 욕을 내뱉고 고통스러워하지만, 눈물을 흘리면서 또다시 클럽을 응원하기 위해 나타나는 팬들.
시간이 흐르면서 클럽은 서서히 옳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젊고 유망한 선수들을 수혈했고, 현실적인 운영과 당장의 작은 결과에 매몰되지 않는 선택들로 클럽의 방향성을 바로 잡았다. 선덜랜드는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성공했고, 글을 쓰는 2월 8일 기준 승점 36점을 획득하며 9위에 위치, 단순히 잔류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닌, 보다 높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
레지스 르 브리
레지스 르 브리는 1975년생의 프랑스 출신 감독이다.
프랑스 리그 1부와 2부를 넘나들며 선수 커리어를 이어갔고, 부상으로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 후 바로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친정팀인 스타드 렌의 유소년 감독으로 9년을 재직하며 역량을 키우던 르 브리는 로리앙으로 적을 옮겼고, 1년 만에 성인팀 감독으로 승격하며 본격적인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다.
로리앙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며 실적을 쌓던 중, 선덜랜드의 구단주가 선덜랜드의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이끌 적임자로 그를 선택했고, 르 브리는 2024년 6월, 선덜랜드의 지휘봉을 잡으며 잉글랜드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선임에 언론은 과거 아스날의 전설적인 감독 아르센 벵거가 처음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을 때처럼 'Regis Who?' 라며 의문을 표했으나 르 브리는 선덜랜드를 프리미어리그 승격으로 이끌며 당당하게 자신의 역량을 증명했다.
많은 클럽들이 하부 리그에서 통하던 플랜을 그대로 고수하며 프리미어리그의 높은 벽에 부딪혀 사라지곤 했지만 르 브리의 선덜랜드는 승격 이후에도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르 브리는 차분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낸다. 많은 전문가들이 선덜랜드를 25/26 시즌 강등 1순위로 꼽으며 리그 최약체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선덜랜드는 현재 9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프리미어리그 판도를 흔드는 키가 되고 있다.
그라니트 자카
막 승격한 클럽에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그들이 시즌 내내 맞이할 수많은 위험 속에서 단단히 중심을 잡고 버텨 줄 캡틴의 존재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라니트 자카는 선덜랜드가 선택한 최선의, 최고의 선택이었다.
아스날에서 수년간 활약 하면서 쌓은 풍부한 프리미어리그 경험과, 독일 레버쿠젠의 리그 무패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화려한 이력을 가진 자카는 선덜랜드가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따낸 이후 최우선 영입 목표로 자리 잡았다.
적극적인 구애로 자카의 마음을 산 선덜랜드는 자카의 입단 직후 그를 바로 클럽의 주장으로 선임하면서 자카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그 신뢰에 보답하듯, 자카는 선덜랜드가 치른 프리미어리그 전 경기에 선발 출장하며 선덜랜드 중원을 든든하게 지키는 기둥으로 활약하고 있다.
선덜랜드의 르 브리 감독은 자카를 두고, “그의 경기를 본다면, 10분 안에 그가 가진 리더십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라며 그의 존재감을 칭찬하기도 했다.
선덜랜드에는 아직 프리미어리그의 리듬에 완전히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선수들이 많다. 그 속에서 자카는 어린 선수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그라운드 안의 기준점이 되어 선덜랜드를 지탱하고 있다.
선덜랜드의 홈구장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클럽은 오랜 시간 동안 빛보다 어둠에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과거 광산업이 주를 이루었던 시절, 탄광 안의 램프 빛을 따 명명했던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는 선덜랜드가 추락하면서 함께 빛을 잃었고, 도시는 실패와 패배의 그림자에 익숙해졌다.
잉글랜드 북부의 선덜랜드는 여전히 바람이 거칠고, 노동자들의 삶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매주 토요일, 사람들은 다시 같은 방향으로 걸었고, 함께 고통을 분담하고, 눈물을 흘리며 클럽과 도시를 지탱해넀다.
<죽어도 선덜랜드> 는 이야기한다. 보답하라. 그러면 사랑받을 것이다.
25/26 시즌, 끊임없이 그들을 지탱해 준 팬들에게 선덜랜드가 보내는 사랑을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