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튼, 우중충한 영국에 몇 안 되는 따뜻한 햇살과 청량한 바다를 가진 항구 도시. 해안을 따라 늘어선 빛바랜 건물들, 여름이면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겨울밤에도 꺼지지 않는 파도 소리와 저 멀리 보이는 세븐 시스터즈까지.
언뜻 브라이튼이라는 도시는 축구와는 어딘가 거리가 있어 보이는 항구 도시의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이곳의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면, 단순한 휴양지 이상의 긴장감이 숨어 있음을 곧 알 수 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스타디움으로 향하는 발걸음 속엔 언제나 이 도시만의 리듬이 있다. 작은 도시지만, 경기 날이면 해안에서부터 이어지는 인파가 하나의 행렬이 되어 스타디움으로 향한다. 그들의 눈빛 속에는 ‘우리는 작아도 당당하다’는 확신이 자리 잡고 있다.
브라이튼은 오래전부터 영국 청년 문화의 아이콘 같은 도시였다. 중세 시대에서부터 왕족과 여러 귀족들의 휴양지로 각광받았던 적도 있을 만큼 궂은 날씨가 잦던 영국에 브라이튼은 화창한 날씨를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시였다.
런던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남짓 달려오면 만날 수 있는 이곳으로 자연스럽게 수많은 예술가와 음악가들이 모여들었고, 브라이튼의 해변은 영국이 낳은 역대 최고의 아티스트인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가 활동하던 시대에도 젊음과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클럽의 역사는 도시가 담고 있는 저항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기라도 한 듯이 순탄치 않았다. 100년이 넘는 긴 역사의 파도에서, 클럽은 끊임없이 가라앉고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1901년에 창단된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은 늘 ‘작지만 열린 팀’으로 존재해 왔다. 클럽은 단순히 성적을 넘어,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과 맞서려는 정신으로 쭉 싸워왔다.
1950년대까지 주로 3부 리그에 머물렀던 브라이튼은 1957/58 시즌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2부 리그 승격에 성공했다. 비록 2부 리그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5년 만에 3부 리그로 다시 강등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높은 곳을 바라보며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1978/79 시즌 클럽 창단 78년 만에 처음으로 1부 리그로 승격했던 브라이튼은 4 시즌을 살아남았지만, 다시 한번 2부 리그로 떨어졌다.
짧은 봄 꿈 이후 찾아온 1990년대는 몰락의 시기였다. 재정난에 허덕이며 구단의 상징이던 골드스톤 그라운드를 잃었고, 한때는 풋볼리그 잔류조차 위태로웠다. 그러나 팬들은 클럽을 포기하지 않았다. 거리 시위를 벌이고, 구단주의 결정에 맞서며, “We want our club back”이라는 구호로 존재 자체를 지켜냈다.
팬들에 헌신적인 성원에 힘입어 2016/17 시즌 챔피언십에서 2위를 차지하며 다시 한번 꿈에 그리던 프리미어리그로 돌아온 브라이튼은 17/18 시즌부터 9 시즌째 프리미어리그에 잔류하며, 당당히 프리미어리그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브라이튼은 프리미어리그에 남아 있는 것뿐만 아니라, 유럽 대항전 진출을 노리며 보다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오랜 시간 하부 리그를 전전하다 프리미어리그로 돌아온 브라이튼은 유소년 육성과 데이터 리크루팅을 결합해, 자체적으로 키운 유망주들을 1군으로 올리거나, 유망한 선수들을 영입하여 전력을 강화했다.
특히 카이세도와 맥 알리스터는 브라이튼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던 핵심적인 중추 역할을 수행했고, 거액의 이적료까지 클럽에 안기며, 브라이튼이 같은 방식을 고수하고, 자신들의 방식에 확신을 갖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국 클럽의 정교하면서도 과감한 스카우팅은 그들이 거대한 자본에 기대지 않고도 경쟁력을 갖춰 나갈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브라이튼은 이에 힘입어 건전한 재정 상태와 젊고 유망한 선수단의 전력 유지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브라이튼의 ‘남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태도는,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이 모여든 도시의 기질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클럽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뛰어난 재능들을 발굴해 해안가 도시로 불러들였고, 이제 개성 넘치고 역동적인 재능들과 함께 프리미어리그 생존을 넘어 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고자 한다.
팬들 또한 클럽의 철학을 헌신적으로 지지한다. 팬들은 브라이튼 해변의 자유로운 에너지를 경기장으로 옮겨오고, 그들의 함성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선언’으로 선수들과 함께 한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아름답게 싸운다.” 는 메시지는 도시와 클럽을 잇는 끈이다. 클럽이 성장해 온 방식은 도시의 자유로운 예술 정신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4년 6월, 클럽은 당시 불과 31세였던 파비안 휘르첼러를 감독으로 선임하며 또 한 번의 실험을 선택했다.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연소 정식 감독의 등장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 결정에 의문을 품었지만, 브라이튼은 자신들의 방식에 확신이 있었다. 데이터와 분석에 의한 결과 값 도출, 그리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철학. 그건 구단이 늘 추구해 온 정체성이었다.
23살이었던 2016년부터 선수와 코치를 병행하며 경험을 쌓았던 휘르첼러는 2020년 독일의 장크트파울리에 코치로 합류했다가, 2022년 12월, 감독이 경질되면서 임시 감독으로 첫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장크트파울리를 13년 만에 분데스리가 승격으로 이끄는 등 뛰어난 지도력을 보이며 전 유럽의 이목을 끌었고, 브라이튼에 부임한 24/25 시즌에도 리그 8위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며 프리미어리그에 연착륙했다.
휘르첼러의 브라이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프리미어리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감독이 몰려드는 리그이고, 수많은 자본이 투입된다. 저번 시즌에 잘하던 팀이 고꾸라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그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경기마다 전술 구조를 미세하게 바꾸고, 선수 개개인의 능동성을 강조하며, 브라이턴을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팀’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젊음은 그에게 약점이 아니라,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다.
브라이튼의 공격은 미토마의 리듬으로 시작된다.
순간적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며 상대를 속이고, 그 좁은 틈 사이로 방향을 바꿔 버리는 그의 드리블은 마치 마법과도 같다.
클럽 공식 홈페이지에는 그의 드리블을 본떠, ‘미토마 매직’이라고 하는 미니 게임이 있을 정도다.
21/22 시즌을 앞두고 브라이튼에 입단한 미토마는 비자 문제로 인해 22/23 시즌부터 프리미어리그에 모습을 드러냈다. 뛰어난 드리블 능력과 감각적인 퍼스트 터치는 그를 리그에서도 주목받는 선수로 만들었다.
4 시즌이 지난 현재 미토마는 브라이튼의 돌격 대장으로 상대 수비수들이 가장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위협적인 공격수로 성장했다. 갈매기 군단의 가장 날카로운 창으로 거듭난 그는 브라이튼 팬들의 자부심이다.
얀 폴 반 헤케는 브라이튼 스카우팅 시스템의 또 다른 역작이자 스쿼드의 중추이다.
20/22 시즌 브라이튼에 영입된 반 헤케는 네덜란드의 헤이렌베인과 챔피언십의 블랙번으로 2년 간 임대를 떠나며 경험을 쌓았다.
이후 충분한 경기 경험을 쌓은 반 헤케는 22/23 시즌부터 브라이튼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빠르게 성장했고, 휘르첼러 체제에서도 숨길 수 없는 존재감을 발산했다.
반 헤케는 현대 축구가 센터백에게 요구하는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춘 선수로, 수비 라인을 전진시키며, 공을 지키고, 압박을 유도한다.
뛰어난 패스 능력으로 후방 빌드업의 중심이 되며 프로필 기준 189cm에 달하는 큰 키에도 뒷공간까지 커버할 수 있는 빠른 속도까지 지닌 그는 오랜 시간 브라이튼의 든든한 방패가 될 전망이다.
25/26 시즌이 시작된 지 두 달 가량 지난 지금, 브라이튼은 7경기에서 2승 3무 2패, 승점 9점을 따내며 12위에 위치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그리 높지 않은 순위지만 유럽 대항전 진출권인 6위와는 고작 3점 차이로, 여전히 유럽 대항전 진출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휘르첼러의 브라이튼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팀이다. 그들의 축구는 완성보다 과정에 가깝고, 실험과 성장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찾고 있다. 젊은 선수들의 특성상 아직 불안정하고, 다소 기복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매 경기 성장하고 있고, 무엇보다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하며 싸워나가고 있다.
브라이튼에게 이번 시즌은 목표를 세우기보다, 정체성을 다듬는 시간이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았을 때, 강팀으로 거듭나기 위한 첫 번째 필수 조건은, 뚜렷한 철학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플레이 스타일을 정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라이튼과 휘르첼러 감독은 이를 분명 인지하고 있다. 자유롭고 끈질긴 '더 시걸스'의 정신으로, 브라이튼은 그렇게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