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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아 Oct 20. 2024

범부채 열매

이름 없는 모임 3

가을이 되니 곳곳에 열매가 맺혔다. 자연스레 우리 손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진도 열매를  찍은 사진들이었다. 도라지와 범부채의 열매 중 어떤 걸 그릴까, 우리는 한참을 골랐다.

도라지는 보랏빛 꽃만큼 열매도 예뻤다. 열매 속에서도 꽃이 터질 때처럼 '뽁'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범부채 열매는 마치 포도송이처럼 탐스러웠다. 

결국 우리는 범부채 열매를 골랐다. 그리기가 좀 더 쉬울 것 같아서라고 하면 범부채가 서운해하려나.  



범부채는 붓꽃처럼 잎을 세우고 꽃을 7~8월에 피운다. 주황빛에 검은 점이 있는 꽃으로 호랑이나 표범 무늬를 닮았다고 붙여단다.


히어리님이  DMZ에서 찍어온 범부채 열매 사진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열매는 동그랗고 까맣고 반질반질 윤이 났다. 한자리에 10개가 넘는 열매가 한송이 포도처럼  다기다기 매달렸다. 열매를 싸고 있던 껍질은 쪽으로 갈라져 마른 채 늘어져 있었다.


이 열매가 맺히기 전 이 자리엔 꽃이 피었겠지. 


나는 열매를 바라볼 때면 꽃구경과는 다른 감탄이 나온다. 

'우와!' 이소리는 꽃을 볼 때 절로 나오는 소리다.

'아!' 이 소리는 열매를 볼 때 입 안에 맺히는 소리다. 그 말은 대부분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고 가슴보다 더 밑에서 맴돈다. 


왜 그럴까? 


아마도 뜨거운 햇살을 살로 찌운 늠름함.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씨앗을 키워내는 겸손함. 잎이 시들어가는 걸 받아들이는 그 넉넉함 때문인 것 같다.  


DMZ에 있는 범부채 열매,

어쩌면 내년에는 이곳에서 범부채 꽃으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때 '우와!' 하며 맞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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