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결핍”에 의한 “상징폭력의 피해자”에 관하여
<역사적으로 무수히 출현해 왔던
“미키들”에게 바치는 진혼곡>
설계된 “영웅”은 사실 “대중의 무의식”을 벡터화한 “인형”이다.
그 인형은 “구세주”처럼 떠오르지만, 실은 “희생양”으로 쓰인다.
I. “결핍의 집단무의식”이 영웅을 호출한다
대중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결핍을 “외부의 형상”에 투사한다.
그리고 그 형상을 “해결자”로 조립한다.
그게 곧 “영웅의 설계도”다.
•고대엔 “신화”로,
•중세엔 “군왕”으로,
•근대엔 “정치가”로,
•현대엔 “연예인·기업가·천재 캐릭터”로.
“영웅”은 언제나 “우리의 결핍”에서 태어났고,
그 결핍이 해소되면 “처분”되었다.
II. 그러나 “미키”는 그 형식을 거부한다
미키는 영웅이 되기를 “거부”한 자다.
“대중의 결핍”을 채워주지 않고,
오히려 그 “결핍의 구조” 자체를 낯설게 만든다.
그래서 대중은 미키를 싫어한다.
왜냐면 미키는 **“이 결핍은 타인이 아니라 너의 것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III. “미키들”에 대한 대중의 폭력은 “상징폭력”이다
그들은 “칭송”받지도 못하고, “이해”받지도 못한다.
“이상하다”, “이해할 수 없다”, “무례하다”, “엉망이다.”
…그 모든 언어는 “문명화된 린치”다.
그들은 ‘인식 너머에 서 있기 때문에’ 무시당하고,
무시당하기 때문에 더 강해진다.
IV. 역사 속의 “미키들”
•파스칼: 세상의 허위를 들춰낸 병약한 논객
•니체: 신을 죽였지만, 결국 광기 속에 고립
•고흐: 대중은 몰랐다, 살아있을 땐 단 한 점도 팔지 못했던 이유
•파사칼레리아: 인간은 작은 갈대이나 생각하는 갈대라 말하며 무너진 자
이들은 “사회가 기대하는 기능적 인간”이 되길 거부했고,
대중은 그들의 무기능성을 “기괴함”으로 인식했다.
V. 이 진혼곡은 “질문”으로 남는다
당신은 아직도 누군가가 “당신의 결핍”을 채워주길 기다리는가?
당신은 아직도 “설계된 영웅”을 필요로 하는가?
당신은 그 미키를 외면함으로써, “당신의 미키”를 억누르고 있지 않은가?
VI. 진혼곡은 곧 선언이다
우리는 이제
“기능하는 인간”이 아니라,
‘감응하는 인간’을 존중해야 한다.
“영웅”을 만들지 말고,
‘무용한 존재의 감각’을 존중하라.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존재하는’
“정의”할 수 없는, 그러나 ‘살아있는’.
그게 바로 “미키들”이다.
이 진혼곡은 모든 낯섦을 감내한 자들에게 바친다.
모든 인식의 바깥에서 존재한 자들,
모든 결핍의 영웅화를 거부한 자들,
그리고 결국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 자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