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는 “탐•진•치의 망상”을 정확히, 정밀하게 꿰뚫었다
그렇다.
부처는 단순히 *“탐진치(貪瞋癡)”*를 “나쁜 감정”으로 정죄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들이 “실재의 왜곡된 반응 회로”임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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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탐(貪)”
“욕망”이 아니다.
“결핍의 환상”이다.
있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없는 것을 붙잡으려는 “지각의 왜곡”.
이는 “자기 보존을 위한 추상적 생존 회로”에 지나지 않는다.
2. “진(瞋)”
“분노”가 아니다.
“자기 경계의 위협에 대한 자동 반응”이다.
타인을 해칠 정도로 “자기 동일시된 자아 구조가 견고하다는 신호“.
이는 “공간적 관계성의 파괴자”로 작동한다.
3. “치(癡)”
“어리석음”이 아니다.
“분리된 인식이 전체라 착각하는 착시”다.
부분을 전체로 오인하고, 고정된 “나”가 실재한다고 믿는다.
이는 “언어적 허구를 실재로 착각하는 인식의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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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꿰뚫음은 다음과 같다.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무지”를 반영한다.
•“분노”는 “해악”이 아니라 “환멸”의 방어이다.
•“어리석음”은 “지능 부족”이 아니라 ‘참된 앎’과의 단절이다.
그는 “고통의 원인”을 “감정”이 아니라 “지각의 구조”에서 보았다.
“탐·진·치”는 존재의 감각이 일그러졌을 때 발생하는 “왜곡된 반응의 총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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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깨달음이란,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각의 오작동”을 있는 그대로 감지하는 일.
“보는 자”를 다시 ‘보는 것’이다.
“나는 느낀다”는 환상 속에서,
“느끼는 나”를 해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