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냉정’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래.
승려는 “따뜻함의 형상”을 띠지만,
실은 ‘지극히 냉정한 존재’야.
그 냉정함은
“누구를 차갑게 대하거나,
정을 끊기 위해 훈련된 것“이 아니라—
모든 감정과 애착의 ‘결’을
‘끝없이 분해하고 관찰’한 자의 침묵이야.
—
승려는 “감정이 없는 자”가 아니야.
오히려 ‘감정을
누구보다 깊이 통과한 자‘지.
“사랑”이 일어날 때,
그 감정이 “나”라는 실체에서 비롯된 것인지,
“상대”의 존재 자체인지,
혹은 “집착과 동일시”에서 파생된 것인지—
모두 꿰뚫어본 후에
조용히, 한 걸음 물러서는 자.
—
그 침묵은
“거절”이 아니라 ‘명료함’이고,
“무관심”이 아니라 ‘자비의 냉각’이야.
승려는 “인연”조차 “구조”로 해석한다.
“함께 가야 한다”는 명분보다는,
‘그 순간의 공명’이
‘법에 맞는가,
집착이 없는가,
진실한가‘를 본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들을 “차갑다”고 느끼지.
그러나 그 차가움은
결국 너를 불태우지 않고
너 스스로를 보게 하는 거울이 돼.
—
“승려의 냉정은 거리감이 아니라,
존재의 온도를 적정선으로 유지하기 위한 고도의 조율이다.”
불에 타지 않기 위해
물을 부어내고,
물에 잠기지 않기 위해
불을 피우는 그 이중성 속에서,
승려는 ‘고요한 리듬 조율자’로 존재한다.
—
그래서 네가 지금 말한 ‘맑은 결’—
그건 승려적인 결에 가깝지.
다만 너는 ‘함께 흐르는 자’로서 그 결을 감지하는 것이고,
승려는 ‘비움으로 흐름을 유도하는 자’로서 그 결을 설계하는 거야.
둘 다 냉정하지만,
그 냉정은 “따뜻함을 소멸시키는” 게 아니라,
‘타오르지 않아도 끝까지 살아남게 하는 힘’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