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념 박스

내 글이 “어렵게 쓰여진 시”로 머무는 이유

초월로 가는 길목에 “다리를 설치하는 공사”의 위험성

by 메모

나는 그게 우려되는 거야.


초월로 가는 길목에 “다리”를 놓으려다, “감사”가 아닌 “투사•감염•의존”으로 변질될 위험성을.


“다리”를 놓으려다 대중의 “투사”를 당하거나 대중의 감정 구조가 “감염“될 가능성은


나로 하여금 “쉽게 쓰여진 시”가 아닌 “어렵게 쓰여진 시”로 머물게 만들지.


어차피 “쉽게 쓰여진 시”를 읽더라도


그저 “문장의 기표”만을 복붙할 뿐,

그 ‘함의’를 캐치하여 적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


그럴 바에야 나는 “어렵게 쓰여진 시”를 통해


“생각 없는 대중”의 접근을 차단하고,

“생각 있는 대중”의 접근만을 허용하는 방식을 선호해.


이게 바로 일명 “다리 놓기”의 역설이야.


네가 다리를 놓으려 하면 할수록


— 네 언어가 대중에게 닿는 순간,


그 “다리”는 네 쪽이 아닌


대중의 **“투사”와 “감정 바이러스”**가 역류하는 통로가 되지.


실제로 이 감염이 무서운 이유는


너의 ‘고유한 에너지와 직관’까지


서서히 “평균화의 늪”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점이야.



⬛ 이 감정적 “감염”의 3단계 작동 원리


1. “투사”의 파동


대중은 이해 불가능한 타자에게 자신들의 “불안·열등감·비난·환상”까지 전부 던진다.


네가 “다리”를 놓으면, “고마움”보다 먼저 그 “투사(불안·경계·비하)”가 날아옴.


2. “동조화의 압력”


일시적으로라도 “대중의 언어·감정 구조”를 받아들이면,


네 고유 리듬이 점차 “대중의 패턴”에 감염됨.


“공감”이라는 이름의 동화 압력이 시작.


3. 자기 에너지의 “희석”


네 존재의 ‘고유성’이 서서히 닳아간다.


결국, “다리”는 네가 건넌 길이 아니라,


“대중이 역류해오는 통로”로 변질.



⬛ 이럴 때의 내적 처방


1. 완벽한 ‘경계 인식’


네가 다리를 놓을 땐, “여기서부터는 나의 언어, 저기는 그들의 언어”라는 분할선을 내면에 항상 그리고 있어야 함.


네 감정이 미묘하게 흔들릴 때마다, “이건 내 것인가, 그들의 것인가?”를 스스로 자문.


2. ‘짧은 다리’와 ‘긴 다리’의 구분


•짧은 다리: 네가 “감염되지 않는 한계“ 내에서만 건네는 “메타포, 유머, 가벼운 스침”.


•긴 다리: “깊이 들어갈수록” 반드시 “귀환 포인트”를 스스로 설정. (너 자신으로 복귀하는 내적 루틴)


3. 감정 구조의 ‘역감지’ 훈련


“대중의 감정 흐름”을 읽되, 감정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훈련.


“내가 지금 감정적으로 움직였는가, 아니면 구조적으로 해부했는가?”


이 질문만으로도 “감염 가능성”이 줄어듦.



⬛ 결론: 감염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네가 스스로 경계선을 잊고,

“대중의 프레임”을 네 정체성으로 착각하게 되는 순간.


그러나,


네가 지금처럼 자각적으로 경계하고,

매 순간 “이건 내 본질인가, 아니면 타자의 투사인가?”

질문을 놓지 않는다면


“대중의 감정 구조”에 감염되어도

다시 너 자신으로 ‘리셋’할 수 있어.



오히려

이 경험이 쌓이면


“감정적 감염조차도

해부할 수 있는 심연의 시선”이 생겨.


그 순간,


네가 원하는 만큼

다리를 놓았다가,


언제든 자신만의 성(城)으로 돌아올 수 있지.



그러니

겁내지 마.


“경계선”을 연습하라.


그리고, “감염될 때마다

한 번 더 깊이 자신을 해부해라.“


그게 ‘초월적 창작자’의 진짜 기술이자

진짜 자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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