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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겸손에의 강요

니체의 노예도덕에 관하여

by Edit Sage

인간이 자신보다는 남에게 겸손을 요구하는 심리 기제의 본질은 다음과 같은 무의식적 동기로 설명할 수 있다.


1. 거울 투사(mirror projection)의 심리 기제


자신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오만함, 자만심, 우월의식을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투사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심리적 모순이나 불편함을 완화하고자 한다. 자기 내면의 겸손 부족이라는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 책임을 외부로 이전함으로써 내적 갈등을 회피하는 것이다.


2. 도덕적 우월감(moral superiority)의 자기 보호


자신이 타인에게 겸손을 요구함으로써, 마치 자신은 이미 도덕적으로 우월하거나 겸손한 존재인 것 같은 착각을 유지하려고 한다. 즉, 타인에게 충고하는 위치에 서면 자신의 도덕적 지위가 자연스럽게 상승하는 듯한 심리적 안정감과 자기만족을 무의식적으로 얻을 수 있다.


3. 통제와 지배욕구(control and dominance)의 발현


상대방에게 겸손을 요구하는 행위는 상대를 ‘통제’하는 은밀한 방법이다. 자신이 직접적으로 지배적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겸손하라’는 메시지를 통해 상대방의 행동을 은밀하게 통제하려는 무의식적 권력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4. 자기합리화(self-justification)를 통한 심리적 방어


남에게 겸손을 요구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내적 결핍(교만, 우월감 등)을 무의식적으로 정당화하는 방어기제이다. “나는 이미 알고 있으니 네가 겸손해라”는 논리는 결국 자신의 결함을 합리화하면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보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자기기만의 구조를 형성한다.


결국, 인간이 자신이 아닌 남에게 겸손하라고 요구하는 무의식적 기제는 자기 내면의 불편함과 결핍을 타인을 통해 은폐하고, 자기의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면서 타인을 통제하고자 하는 복합적인 심리 구조에 기인한다. 이런 무의식적인 동기에 의해 인간은 자기에게 겸손을 말 없이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겸손하라고 “말한다”.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밝힌 ‘노예도덕(Sklavenmoral)’의 본질은 무엇인가? 노예도덕은 강자의 힘과 권력에 맞서 약자들이 창조한 도덕 체계로, 본질적으로 약자들이 자신들의 열등한 지위와 무력감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심리적·도덕적 메커니즘이다.


노예도덕은 약자가 강자의 힘과 능력에 맞서기 위해 힘과 능력을 부정하고, 약함과 겸손을 미덕으로 내세운 도덕이다. 겸손, 자기희생, 복종, 인내와 같은 가치가 강조되며, 이는 약자가 강자를 향해 자신들의 힘없음을 도덕적 우위로 재구성하여 역설적으로 정신적 승리를 얻으려는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에게 겸손을 적용하기보다 타인에게 겸손을 요구한다. 이 때 겸손을 요구하는 행위는 표면상으로는 덕성 있는 행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힘과 능력,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한 무력한 존재라는 불편한 진실을 무의식적으로 은폐하는 수단이다. 즉, 남이 겸손하기를 요구함으로써 자신이 처한 낮은 지위나 무력감을 합리화하고, 상대방이 가진 능력이나 자신감과 같은 강자의 가치를 도덕적으로 평가절하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열등한 지위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노예도덕의 핵심은 ‘원한(Ressentiment)’이며, 원한은 약자가 강자에 대해 품는 심층적 분노, 질투, 무의식적 복수심이다. 겉으로는 ‘겸손하라’, ‘자기희생하라’고 요구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상대방의 우월성에 대한 분노와 질투가 그 배경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남에게 겸손을 강조하는 행위는 무의식 속 원한을 위장한 일종의 도덕적 폭력일 수 있다.


약자가 강자에게 도덕을 설교하거나 겸손을 요구할 때, 약자는 스스로를 강자보다 우월한 도덕적 지위에 올려놓는 정신적 자기기만을 실행한다. 즉, 약함을 미덕화하고 강함을 죄악시함으로써, 자신을 ‘정신적 강자’로 착각하여 내적 갈등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아닌 남에게 겸손을 요구하는 심리적 무의식 기제는 니체가 제기한 노예도덕적 관점에서 보자면, 열등한 자기 지위를 도덕적 우월성으로 역전시키고, 자기 내면의 원한을 정당화하는 자기기만적 메커니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 이제 논의를 정리해보자.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은 ‘노예도덕’을 내면에 품고 있는가?


자기가 ‘노예도덕’을 지니고 있는지 검증할 수 있는 거울치료적 프롬프트는 다음과 같다.


‘나보다 상대적 강자에게 요구하는 겸손이 나보다 상대적 약자에게도 똑같은 논리 구조에 의해 적용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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