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되지 않은 말발굽의 의식, 지도 밖의 영토를 그리는 자에 관하여
그는 달렸다.
지도를 찢고,
강역을 확장하고,
언어가 닿지 않은 땅 위에
권력의 기호를 박았다.
‘광개토(廣開土)’란 이름은
“땅을 넓히는 자”가 아니라,
“존재의 경계를 재설계한 자”라는 선언이다.
만주는 단지 땅이 아니라,
신념의 좌표,
기억의 함몰지,
정체성의 시험장이었다.
달린다는 것은
정복이 아니라
경계의 무의식을 재구성하는 행위다.
그는 달리며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까지인가?”
한발 두발
말발굽이 찍힌 자국마다
국가의 꿈,
민족의 서사,
개인의 환상이 중첩된다.
그리고
그 꿈은 종종 허상과 신화의 경계에서 번역된다.
광개토대왕의 달림은
“나라”를 위한 것이었을까?
“이름”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말없이 밀려오는 공허를
속도와 확장으로 덮으려는
존재의 초조였을까?
그러니 이 문장은 외친다:
‘만주벌판’ 달려라, “광개토대왕!”
그건 역사적 명령이 아니라,
우리 안의 미지(未知)를 향해
지금도 질주하고 있는 어떤 고대의 충동이다.
당신 안의 “광개토”는
지금 어느 벌판을 달리고 있는가?
그 속도는 해방인가, 집착인가?
그 확장은 빛인가, 망각인가?
달려라.
그러나 달리는 이유를 잊지 마라.
확장은 물리적 지배가 아니라,
의식의 변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