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사건은 그냥 특허소송이 아닌가
최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SK하이닉스와 키옥시아를 상대로 Certain NAND and DRAM Memory Chips 사건(337-TA-1492) 조사를 개시했습니다. 이 조사는 텍사스의 MonolithIC 3D가 2026년 2월 17일 제기한 complaint를 바탕으로 시작됐고, 2월 25일과 3월 16일 보완 서면이 추가됐습니다. 다만 여기서 먼저 분명히 해둘 점이 있습니다. 조사 개시는 침해 판단이 아닙니다. ITC도 이번 조사 개시와 함께 본안의 merits에 관해 아직 어떤 결론도 내린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보도에서는 이번 사안을 “SK하이닉스 HBM 특허분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만, ITC의 공식 사건명은 Certain NAND and DRAM Memory Chips입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이 분쟁은 HBM과 NAND를 포함한 메모리칩을 둘러싼 특허 다툼으로 소개됐고, 실제로 SK하이닉스는 HBM을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인프라로 연결해 공익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즉, 이 사건은 기술적으로는 메모리칩 특허분쟁이고, 산업적으로는 HBM 공급망을 둘러싼 위험으로 읽히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특별한 이유는 어디서 싸우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ITC의 Section 337 절차는 일반적인 연방지방법원 특허소송과 달리, imported goods를 둘러싼 불공정 수입행위를 다룹니다. ITC는 section 337에서 특허침해가 문제 되는 경우, 미국으로 들어오는 제품의 수입과 수입 후 판매를 규제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절차는 “특허를 침해했는가”라는 질문과 동시에 “그 제품을 미국 시장에서 계속 유통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함께 던집니다.
그리고 구제수단도 다릅니다. ITC FAQ에 따르면 Section 337 위반이 인정되면 Commission은 exclusion order와 cease and desist order를 발령할 수 있고, money damages는 구제수단으로 제공되지 않습니다. exclusion order는 미국 세관을 통해 수입을 막는 방식이고, cease and desist order는 미국 내 재고 판매 등 특정 행위를 중지시키는 방식입니다. 다시 말해, 이 절차의 무게중심은 배상액이 아니라 시장 접근 차단에 있습니다.
진행 속도도 빠릅니다. ITC는 조사 개시 후 45일 안에 최종 판단 목표 시점을 정해야 하고, 구제명령은 발령되면 효력을 가지며 원칙적으로 60일의 대통령 정책심사 기간을 거친 뒤 최종화됩니다. 민사소송처럼 길게 끌리는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대응하면 구조를 잘못 읽게 됩니다. 337조 사건은 초반 기록과 전략 설계의 중요성이 유난히 큽니다.
핵심 법적 쟁점
이번 사건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공익(public interest)입니다. ITC는 위반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구제를 발동할 때 자동으로 exclusion order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구제가 공중보건과 복지, 미국 경제의 경쟁여건, 미국 내 생산, 미국 소비자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봅니다. 그리고 이 공익 판단은 끝 단계에 형식적으로 붙는 절차가 아니라, complaint 단계부터 별도의 public interest statement를 받고, 연방관보 공고 뒤에는 일반 의견도 수렴하는 식으로 기록을 쌓아갑니다. 필요한 경우 ALJ가 공익 요소에 관한 증거를 따로 수집하도록 지시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서 SK하이닉스가 “HBM은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인프라”라고 주장하며 수입금지 시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 가능성을 제기한 점은 단순한 홍보 문구가 아닙니다. 337조 절차 안에서는 이런 주장이 바로 구제의 적절성과 연결됩니다. 반대로 MonolithIC 3D는 공급 부족 우려가 과장됐고, 삼성전자나 마이크론 같은 경쟁사가 증산해 대체할 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여기서 어느 한쪽의 주장을 지금 단계에서 사실처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사건의 핵심이 특허청구항 해석만이 아니라 대체 가능성, 전환 시간, 가격 효과, downstream 산업 영향까지 포함하는 공익 기록 싸움이라는 점입니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배경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IPR 제도 변화입니다. 2026년 3월 11일 USPTO는 Director John Squires 명의 메모를 통해, IPR/PGR 개시 판단에서 미국 내 제조시설·투자, 그리고 특허침해로 소송당한 소기업 여부 등을 추가적인 재량 고려 요소로 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PTAB 절차가 예전보다 더 정책적인 고려를 강하게 받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방어 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는 분명합니다. 2026년 3월 26일 로이터 웨스트로투데이 기고는, John Squires 체제 아래에서 IPR 개시율이 2025년 10월 이후 약 20% 수준으로 떨어졌고, 과거 Kathi Vidal 시절 평균 60% 이상과 비교해 현저히 낮아졌다고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특허 도전자들이 IPR 대신 ex parte reexamination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 변화가 이번 사건 하나를 설명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피신청인에게 익숙했던 무효 공격 경로가 예전보다 거칠어졌을 가능성은 충분히 시사합니다.
공익 판단은 ‘누가 더 크게 말하느냐’보다, 어떤 기록을 더 설득력 있게 남기느냐의 문제에 가깝다.
업계 맥락
이번 사건이 산업 기사로 크게 다뤄지는 이유는 HBM이 단순한 메모리 제품을 넘어 AI 인프라의 핵심 부품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HBM이 포함된 사건에서는 특허 다툼이 곧바로 downstream 산업과 연결됩니다. ITC의 공익 판단 구조도 바로 그 지점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HBM 분쟁은 기술법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제가 실제로 발동됐을 때 누가 대체 공급을 할 수 있는지, 전환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지까지 묻게 됩니다.
이 점 때문에 이번 사건은 아직 판단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미리 볼 가치가 있습니다. 침해 여부는 앞으로 ALJ 절차와 Commission review를 통해 다퉈질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사건이 어떤 구조로 흘러갈지는 이미 상당 부분 드러났습니다. 침해 유무, domestic industry, 공익, 배제명령의 파급효과가 서로 분리된 층위에서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조사 개시는 침해 판단이 아닙니다.
이 절차의 무게중심은 배상액이 아니라 시장 접근 차단에 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이 특허청구항 해석만이 아니라 대체 가능성, 전환 시간, 가격 효과, downstream 산업 영향까지 포함하는 공익 기록 싸움이라는 점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지금 당장 확정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SK하이닉스가 실제로 특허를 침해했는지, exclusion order가 실제로 내려질지, HBM 공급에 실질적 충격이 생길지 모두 아직은 단정할 단계가 아닙니다. ITC도 조사 개시 시점에 merits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다만 지금 읽어야 할 구조는 분명합니다. 337조 사건은 특허청구항 해석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시장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구제수단, 공익 기록의 밀도, NPE와 domestic industry의 구조, 그리고 무효 공격 환경의 변화가 한꺼번에 움직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누가 맞느냐”보다 “어떤 제도 안에서 싸우고 있느냐”를 먼저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HBM이 전략 부품이 된 시대라면, 특허분쟁도 더 이상 법정 안의 문제로만 남아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