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시늉과 잠수 사이에서
남편과 결혼한 지 15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남편이 왜 그렇게 쉽게 상처받고,
왜 작은 말에도 방어부터 하고,
왜 늘 긴장한 사람처럼 어깨를 살짝 말고 살아가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외조모의 장례식장에서 보낸 네 시간 동안,
그 의문들이 한 장면씩 실체를 드러냈다.
마치 남편의 어린 시절이
“이런 집에서 자랐어” 하고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1
상가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온 첫 목소리는
8년 만에 만난 이모아들의 웃음 섞인 말이었다.
“형, 점점 아버지랑 닮아가네?”
남편이 멋쩍게 웃자 그는 바로 덧붙였다.
“아니, 이마 말이야. ㅋㅋㅋ”
그 말의 톤에는
가볍지 않은 조롱이 섞여 있었다.
남편은 그냥 웃었다.
그 웃음은 오래전부터 몸에 밴 ‘억지웃음’이었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그 첫 순간에 이미 드러나 있었다.
2
조금 뒤, 외삼촌이 다가왔다.
마찬가지로 8년 만의 만남이었다.
“야, 네 아들 누구 닮았냐. 왜 이렇게 똑똑하냐?
너는 아닌 것 같은데.”
남편이 대답도 하기 전에
외삼촌의 시선이 내게로 옮겨왔다.
“얘 어릴 때 머리 나빴어요. 완전 노력형이죠.”
아무렇지도 않게 남을 서열 매기는 말투,
비난을 농담처럼 던지고
누군가를 ‘낙인’ 찍는 것이 이 집안의 문화였다.
그 순간,
남편이 왜 칭찬에 그토록 목말라하고
왜 부정적인 말 한마디에도
존재 전체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는지
이유가 선명해졌다.
그는 평생, 이런 말들 속에서 자라난 아이였다.
3
잠시 후, 이번에 결혼한 막내 외삼촌의 부인이 들어왔다.
우리는 그날 처음 만났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인사를 시키려 다가갔고,
그 순간 이모가 욕부터 뱉었다.
“미친년, 지가 먼저 와서 인사해야지. 왜 니들이 가?”
나는 그 장면을 믿을 수 없었다.
상갓집에서 첫마디가 욕이었다.
며칠 전까지 시어머니는
외숙모에 대해 집안이 어떻다,
몸매가 어떻다,
성격이 어떻다,
끝도 없이 흉을 봤었다.
그런데 실제로 본 외숙모는
조용하고 선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모는 외숙모에게 말했다.
“얘네 너랑 동갑이야. 그리고 둘 다 대기업 다녀.”
나는 이미 퇴사한 지 오래였지만
그들에게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집안에서 말이란
사람을 평가하고 비교하는 도구였고,
누군가를 깎아낼 재료였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남편도 이런 말과 시선 속에서
언제나 ‘측정’되고 ‘비교’되며 자랐겠구나..
4
결혼 첫해의 김장날이 떠올랐다.
처음 본 이모에게
인사 대신 “머리 묶어”라는 말을 들었다.
사촌들은 누워서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날의 불편함도
오늘에서야 맥락이 맞춰졌다.
이 집안의 말투, 공기, 분위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시어머니가 있었고,
비난과 흉을 나르며
사람들을 서로 멀어지게 만드는 기류가 있었다.
5
불과 네 시간 동안
남편의 지난 삶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어린 시절, 밖에서 떠든다고
허벅지를 세게 맞았던 기억.
누나와 항상 비교당하며
“너는 머리가 나쁘다”는 말을 듣고 자란 시간들.
집안 내 갈등과 비난을
어린 마음으로 다 받아내야 했던 자리.
아버지의 드문 애정 표현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남겼다는 이야기.
그 모든 조각이
오늘 내 앞에서 하나로 이어졌다.
남편은
비난 속에서 자랐고,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가치 없다고 느끼게 되는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칭찬을 갈구하고,
부정적인 말에 금방 무너지고,
사소한 질문에도 방어부터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피해 주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살고 있었고,
언제나 스스로를 단단히 잡고 있었다.
그 사실이 너무 기특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6
장례식장을 나오는 길,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오늘.. 그냥 빨리 가자.”
그 말의 숨은 뜻을
나는 이제 정확히 알았다.
이 공간이
그의 오래된 긴장과 공포를 꺼내는 곳이라는 걸.
나는 남편의 손등을 가만히 잡았다.
말 대신 침묵을 건넸다.
오늘은 그게 더 따뜻한 언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나는 이제 당신이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 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당신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