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자리

말해도 바뀌지 않는 관계 앞에서

by 서쪽 침실

그날 이후

나는 상담실에 앉아 있었다.


‘고부 갈등 전문’이라는 문구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상담사는

종이에 무언가를 적으며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머님께 아이를 맡기고 계시잖아요.”


잠시 펜을 멈추고

이어서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어요.

을의 입장이에요.”


을.


그 단어는

생각보다 조용히

내 안으로 들어왔다.


화가 나지도 않았고

억울하지도 않았다.


아,

이 관계에서는

그런 이름이 붙는구나.


설명해도

달라지지 않았던 이유가

그제야 분명해졌다.


그날 상담실에서

나는 해결책을 듣지 못했다.


대신

확인을 받았다.


말을 잘해도,

차분하게 말해도,

울지 않고 말해도


이 구조 안에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복직을 고민하던 때였다.


“우리 엄마, 집순이야.

하루 종일 집에 계시는 거 좋아해.”


그래서

나는 믿었다.


아이를 맡기는 일이

어머니에게도

크게 부담은 아닐 거라고.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일은

‘편안함’이 아니라

‘감옥’에 가까웠다.


그건

나중에야

드러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됐다.


남편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는 걸.


그 역시

자기 어머니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상견례 자리에서

어머니는

아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사춘기도 없던 애예요.

속 한 번 썩인 적 없어요.”


하지만

나중에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사춘기가 없었겠어.

당연히 있었지.”


그 말은

변명도 아니었고

고백도 아니었다.


그 집에서는

서로를

깊이 알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뿐이다.


말하지 않아도 되고,

묻지 않아도 되고,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유지되던 관계.


부모에게

모든 걸 터놓고 자란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가족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는

또 한 번

“그러길래 우리 엄마 왜 건드려?”

그 문장으로

되돌아올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자

아이 장난감이

거실 한가운데 흩어져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먼저 치웠을 것이다.


그날은

그대로 두었다.


굳이

손이 가지 않았다.


말을 줄이기로

결심한 건 아니었다.


말이

이 관계에서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버렸을 뿐이다.


상담사는

을의 자리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패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건

참는 문제도,

설득의 문제도 아니었다.


머무를 자리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말하지 않는 쪽으로 이동했다.


당장 떠날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이 자리에

오래 머물 수는 없겠다는

감각이


처음으로

생겼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