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 첫날 난이도는 별 다섯 개

by 작가의 방

2023. 10. 5. (목)

날씨 : 해 쨍쨍, 더움

출발 : Bayonne → St. Jean Pied de Port

도착 : Orisson

거리 : 7.5Km

시간 : 1400 → 1830

숙소 : Orisson Hostel

비용 : 90유로(12,600원, 1유로 = 1,400원)

점심: 19

순례자 여권 : 2

스틱 : 20

숙박 : 45(저녁 포함)


어제 공항에서 만난 한국인 할아버지를 오늘 기차역에서 또 만났다. 처음에는 혼자 순례길을 걷고 싶어서 아는 척을 안 하려고 했다. 그래도 한국 사람인 것을 뻔히 아는데 모른 척하기 못해서 인사를 했는데, 어쩌다 보니 점심까지 같이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 뻘 되시는 어르신인데, 은퇴 후 자존감이 낮아지고, 반복되는 일상에 숨이 막혀 첫 순례길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이번 순례길이 16번째라고 한다. 이야기를 해보니 내가 괜히 순례길에서 한국인을 멀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느낀 게 많았다. 16번 순례길을 걸으며, 많은 젊은이들을 만났는데 항상 자신을 멀리하려 했던 것 같다고 기억하고 계셨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이 꼰대들을 싫어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 경험들마저 무시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 말씀이 가슴에 꽂혔다. 순례길에서, 직접 순례길을 걸어본 경험만큼 귀중한 것이 또 있을까?


첫 날인 오늘은 생장 시작점에서 피레나 산 중턱까지 올라간다. 어젯밤 비행기로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생장에 도착한 것도 거의 오후 1시가 다 되어서였으니까 당일 출발해서 많이 걷기에는 너무 늦다. 생장 마을을 조금 구경하고, 점심을 먹고, 순례자 사무실에 들렀다. 오후의 사무실은 한가했다. 사무실 봉사자가 요즘은 하루 200명 정도가 생장에서 순례길을 시작한다고 알려주였다. 성수기에 비하면 적은 숫자다. 숙소 걱정은 덜해도 될 것 같다. 순례자 여권도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등산이나 트랙킹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하니, 어르신께서 스틱을 권해주셨다. 사무소 앞에서 가장 싼 등산 스틱 한 쌍을 샀다. 그리고 2시쯤에 진짜 나의 순례길을 시작했다. 프랑스길은 첫날이 좀 빡세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다. 시작부터 해발 1,400m가 넘는 높은 산을 넘어야 한다.


실제로도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이상하게 길에 사람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정표도 없었다. 듣기에는 노란 화살표만 따라가면 된다고 하더니 그게 보이지 않았다. 심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됐다. 체력적으로도 쉽지는 않았지만 멘탈이 흔들리니 더 힘들었다. 바로 순례길에 도전한 것을 후회했다. 오르막을 어렵게 오르면 또 오르막이 나왔다. 욕이 절로 나왔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서 진짜 쓰러지면 아무도 나를 못 찾아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쓸데없는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경치를 볼 정신은 없었지만, 잠깐이라도 둘러보면 참 아름답긴 했다. 문득 내 인생도 뒤돌아 보면 아름다운데, 당장 하루하루 괴롭고 힘들다고만 생각하며 아등바등 살았던 것 같다. 사실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운 모든 날들은 아름다웠다.


말 그대로 고생 고생하며 저녁 6시 30분이 다 되어 내 순례길의 첫 번째 숙소인 오리손 산장에 도착했다. 며칠 후 알게 된 것인데, 보통 생장에서 오리손 산장까지는 2시간 30분이면 올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길을 잃었던 것 같다. 그래도 고생하면서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나 자신과 싸웠고, 싸우면서 나 자신과, 길을 더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장에 도착하기 직전에는 정말 너무 힘들어서 쓰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바로 저녁을 먹고 와인도 한 잔 하니 괜찮아졌다. 모든 순례자들이 식당에 모여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자기소개를 했다. 벌써 친구도 몇 명 사귀었다. 오늘 만난 순례자들은 앞으로도 길 위에서 계속 보게 될 것이다. 비로소 순례길에 오른 것이 실감 났다.


고생은 이겨내면 무조건 약이 된다. 불과 1시간 전만 해도 온 것을 후회했지만, 자기 전에는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레네 산맥 중턱에서 본 밤하늘에는 별이 참 많았다. 별을 본 것도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크린샷 2024-10-17 오전 7.56.07.png

(왼쪽) 바욘 기차역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 기차표를 샀지만 열차 편성에 따라 버스로 생장까지 이동해야 할 수 있다. 버스는 작은 동네를 다 거쳐가기 때문에 시간이 좀더 걸린다. (오른쪽) 생장 역시 프랑스의 관광지로 순례자뿐 아니라 관광객도 많이 찾는 아름다운 도시(마을)다.


스크린샷 2024-10-17 오전 7.56.16.png

(왼쪽) 오르는 길은 힘들지만 내내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운이 좋아 날이 좋았지만 비바람 때문에 고생하기도 한다고 한다. (오른쪽) 숙소에 함께 머무는 순례자 동기들의 저녁식사. 오리손 산장은 숙박비에 저녁이 포함되어 있고,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