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 피레네 산맥을 넘고 넘어

by 작가의 방

2023. 10. 6. (금)

날씨 : 해 쨍쨍, 더움

출발 : Orisson

도착 : Burguete

거리 : 19.7Km

시간 : 0830 → 1500

숙소 : Lorentx Hostel

비용 : 41유로(57,680원)

맥주 : 3.70

숙소 : 15

저녁 식사 : 14.5

아침 재료 : 8


어제 숙소에는 10명이 한 방에서 5개의 벙커 침대에 나뉘어 잤다. 자전거로 산티아고까지 간다는 룸메이트들은 무서워 보이는 인상과 달리 조용조용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이 잘 때는 전등도 잘 안 켜고 매너가 좋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중 둘이 엄청나게 코를 골아댔다. 어제 그 고생을 하고 여기까지 온 나로서, 모두 힘든 마당에 이해가 됐다. 군소리 없이 귀마개를 하고 잤다. 사실상 순례길 첫 알베르게에서 맞은 밤이었고 아주 잘 잔 것도 아니지만, 또 영 못 잔 것도 아니었다. 아침에는 생각보다 컨디션이 괜찮았다.


오늘 출발하는 지점인 오리손 산장은 오늘 넘어야 할 피레네 산맥의 정상이 아니다. 중턱보다 조금 위다. 오늘 또다시 정상을 향해 걸어 올라가 정상을 찍은 후 계속 내려가 다음 도시인 론세바예스(Roncesvalles)로 가야 한다. 이 구간은 순례길 전체에서도 난이도가 가장 높은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체력적으로도 절대 쉽지 않다. 하지만 또 많은 길 중에 프랑스길을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순례길이 끝나도 오래 기억에 남는 구간이기 때문에 순례자들은 이 길을 피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순례자들이 아침에 생장에서 출발해 산을 넘어 바로 론세바예스까지 하루 만에 가는 일정이다. 나는 오리손에서 중간에 휴식을 취해 이틀에 걸쳐 산을 넘는 샘이라, 론센스바예스에서 한 마을 더 간 부르게테(Burguete)가 목적지였다.


오늘은 어제보다 좀 나았다. 내 몸이 어제가 1단 기어였다면, 오늘부터 2단 기어로 올린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순조롭게 걸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길 위에 많은 순례자들이 있었고, 어제는 눈 씻고 찾으려 해도 못 찾았던 이정표도 많았다. 심적으로 훨씬 더 안정됐다. 앞에 언덕이 나와도 이젠 두렵지 않았다. 어제 고생하면서 길에 대한 믿음과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조금은 커졌고, 그래서 마임이 좀더 편해졌다. 그렇게 걱정했던 것보다는 힘들지 않게 피레네 산맥을 넘어 긴 내리막을 내려왔다. 운도 좋아 날씨도 좋았다. 오랜만에 등산하는 기분이었다.


긴 내리막을 마치자, 길 끝나는 지점에 바로 말로만 듣던 바르(bar)가 있었다. 산을 넘은 기념으로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때려주는데 길에서 만난 미국인 조난단이 때마침 지나다 합석했다. 하필 숙소도 내 숙소 바로 옆이었다. 그래서 저녁까지 같이 먹기로 했다.


오늘 묵은 사립 알베르게는 꽤 괜찮았다. 오자마자 빨래를 했다. 옷을 두 세트밖에 가지고 가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숙소 도착→샤워→빨래 순서의 루틴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볕은 좋은데 의외로 잘 안 말랐다. 안 마르면 그냥 입어서 말리면 된다. 그러면 금세 마른다. 어쩌다 보니 같은 숙소에 묶은 다른 순례자들도 나와 조나단의 저녁식사 자리에 합석하게 됐다. 익히 예상되는 인터내셔널 한 저녁 식사가 됐고, 이어서 알베르게 공용공간에서 맥주 파티가 이어졌다. 어쩔 수 없이 모두 영어로 이런저런, 그러나 알맹이는 별로 없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오늘은 왠지 피레네 산맥을 넘었다는 성취감에 취해 모든 게 쉽게 진행됐던 하루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도 그런 산을 내가 넘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내일쯤이면 완전 적응되어 3단 기어를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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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오리손에서 출발하기 전 이제까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본 모습. (아래 왼쪽) 정상을 향에 계속 올라가야 한다. (아래 오른쪽) 막상 정상에는 별것 없어서 좀 섭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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