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홍상수의 영화는 가끔씩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의 영화들은 어떻게 저런 소재와 어색한 대화로 영화를 만들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너무 신선해서 충격을 받을 때도 있다. 어떤 사건 이후에 그의 영화가 너무 자기 설명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실망할 때도 있었지만, 그의 어린이 같은 순수함과 인생에 대한 통찰이 빛을 발할 때도 있었다.
그의 영화 중 특히 ‘우리 선희’와 ‘탑’을 좋아하는데 이번 영화 ‘여행자의 필요’도 나에게는 최고의 영화로 꼽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리스는 프랑스에서 온 여행자이다.
시인 인국이 공원을 지나가다가 벤치에서 피리를 불고 있는 그녀를 보고 말을 걸어 알게 되고 그녀의 진지함에 반해 같이 살면서, 지인 이송에게 불어를 가르쳐보라고 권유한다.
이리스는 이송과의 수업에서 텍스트 없이 감정을 서로 영어로 대화하고 그녀의 감정을 불어로 바꾸어 인덱스카드에 적고 녹음하여 카세트테이프와 카드를 그녀에게 주고 그것을 여러 번 읽고 외우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이송은 갑자기 피아노 연주를 해보겠다고 하는데 이리스는 그러라고 하면서도 연주를 조금만 듣고 베란다로 나가서 담배를 피운다. 연주를 끝내고 나온 이송에게 연주하는 동안 무엇을 느꼈냐고 묻는다. 그녀는 행복했고 멜로디가 아름다웠다고 하는데, 이리스는 그런 것 말고 마음 깊은 곳에서 느낀 것을 말하라고 하니 이송은 대답을 하지 못한다. 연주에 실수도 거의 없었고 연주 실력도 향상되었지만 더 잘 치지 못해서 짜증이 난다고 한다. 실력을 뽐내고 싶었냐고 하자 그렇다고 한다.
이리스는 인덱스카드에 불어로 “나는 정말 짜증이 났다. 나는 자신이 지겹다. 항상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내 안의 피곤한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적는다.
둘은 외출하고 지나가다가 동네 이름을 새긴 커다란 석비를 발견하는데 이송은 자신의 아버지가 석비 설립에 돈을 기부했기 때문에 뒷면에 아버지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녀는 그것이 쑥스러워서 지나갈 때 석비를 잘 보지도 않는다면서도 자기를 사랑해준 아버지를 그녀도 사랑한다며 눈물짓기도 한다. 이리스는 다시 인덱스카드에 “아버지는 나를 사랑했다. 나는 매일 이 길을 지나가지만 석비를 쳐다보지 않는다. 내가 쳐다보아야 할 진짜 아버지가 있기는 한 건가?”라고 적고 녹음한 후 테이프와 인덱스카드를 주고 수업료를 받은 후 헤어진다.
근처 식당에서 비빔밥과 막걸리를 먹고 근처 공원에 간 이리스는 작은 시냇물을 보자 샌들을 벗고 물에 발을 담근다.
그녀는 그날의 두 번째 수업을 위해 이동한다. 이송이 소개한 중년 여성 원주와의 첫 수업이다. 그 집에는 원주의 남자친구인 듯한 해순도 같이 있다. 원주는 교과서도 없이 진행하는 이리스의 수업방식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이리스는 외국어를 배우는 목적이 생존에 필요한 수준의 외국어 습득이 아니라 외국어를 통해서도 개인적이고 의미 있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을 감정적으로 건드리는 내용을 어두운 밤에 방 안에서 불어로 암송한다면 초보자들도 개인의 진실한 감정을 외국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곧이어 원주가 기타를 연주하겠다고 하자 이리스는 조금 듣다가 옥상에 올라가서 담배를 피운다. 모두 옥상에 올라가서 막걸리를 마시며 아까와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연주할 때 무엇을 느꼈나? 아까의 데자뷔같이 거의 똑같은 대답이 온다. 행복했고 멜로디가 아름답고...
셋은 외출해서 윤동주의 ‘서시’ 시비 앞에 선다. 휴대폰의 번역 앱을 이용해서 이리스에게 영어로 된 서시를 보여주고, 그가 일본인들에 의해 일찍 죽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리스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 아름다웠다면 오래 살지 않았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갑자기 원주의 남자친구가 시비에 절을 하고, 원주는 그에게서 스스로 불쌍하다고 생각한 아버지가 연상된다며 아버지가 그녀가 어릴 때 집을 떠났는데 자신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며 나이가 드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리스는 인덱스카드에 불어로 “시인은 아름다웠다. 그의 아름다움은 돌에 새겨져 있다. 나와 아버지는 아름답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 시도 세상을 위해 남기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일찍 죽지 않았으나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불쌍하다고 느끼고 살아갈 뿐이다.”라고 쓰고 녹음한 후 원주에게 테이프와 카드를 주고 수업료를 받은 후 공원에서 내려간다. 조금 뒤 원주와 해순이 그 길을 바라보니 이리스는 홀연히 사라지고 없다. 그들은 그녀에게 홀린 듯 그녀의 행방을 찾는다.
이리스가 어떤 연립주택으로 들어가고 그 집에서 시인 인국이 일을 하다가 그녀를 맞는다. 그녀는 그날 수업으로 받은 돈 20만 원을 인국에게 주며 그의 친절과 우정에 보답하고 싶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면 집의 렌트비도 보탤 수 있을 거라며 기뻐한다.
접지 매트에 그녀가 발을 대고 전기를 통하자 0이 표시되는데, 인국에게 연결하니 미세한 전류가 흐르고, 그녀는 인국의 발을 세게 누르며 바닥에 발을 완전히 대라고 한다.
이리스는 인국의 시가 너무 좋다며 결코 시를 포기하지 말고 위대한 시인이 되라고 격려한다. 인국이 전자 키보드로 이상한 음악을 연주하자, 그녀는 그 음악을 좋아하며 기억에 빠지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고 자신이 만드는 음 하나하나에 자기 존재 전체로 반응하라고 말한다.
갑자기 연락도 없이 인국의 엄마가 음식을 들고 방문하고, 당황한 인국을 보고 이리스가 엄마에게 자신은 불어선생이라고 하며 자리를 피해 준다. 엄마는 이리스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으며 과거가 어떤지도 모르는 여자를 좋아하면 안 된다고 걱정을 한다. 인국은 그녀와 잘 통한다며 그녀는 진지하고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현재를 사는 ‘속세에 살면서도 도를 닦는 사람’이라고 변호한다. 엄마는 된장찌개를 끓여 아들을 먹이고 늦게 나간다.
인국의 엄마를 피해 더운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리스가 근처 도서관에 갔으나 휴관이고, 거기에도 입구 전면에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이 적혀 있다. 근처에 있던 젊은 여성이 그 시를 영어로 번역해서 보여주며 그것을 불어로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불어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을 낭송한다.
엄마를 보내고 인국은 이리스를 찾으러 나간다. 피리를 불던 이리스가 앉았던 벤치를 지나, 그녀가 앉아있던 바위를 지나, 그녀가 누워서 잠든 곳을 찾아낸다. 그가 말한다, “내가 당신을 찾았어요. 집으로 가요.” 그녀가 묻는다, “거기가 나의 집인가요? 아직도 나를 친구로 사랑하나요?”. “물론이죠. 밖에 오래 있게 해서 미안해요.”
둘은 손잡고 함께 집으로 향한다.
과거 그의 영화 ‘우리 선희’에서 선희의 존재가 신비한 것처럼 여행자 이리스의 존재도 신비롭다. 옛날에 어떻게 살았는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밀짚 모자와 초록색 카디건과 샌들을 신은 그녀는 자유롭게 현재를 산다. 막걸리를 마시고, 기꺼이 신발을 벗고 물에 뛰어 들어가고, 곡조도 없는 음악을 피리로 불며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고 오늘을 산다.
사람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스펙을 쌓고 부와 커리어를 자랑하지만, 우리는 지구에 잠시 놀러 온 여행자들일 뿐이다. 여행자에게 필요한 것은 뜨거운 태양을 가리는 모자와 쉽게 입을 수 있는 카디건과 쉽게 벗을 수 있는 신발과, 무엇보다도 현재에 날것으로 반응하는 마음이다. 누구도 여행중에는 현재에 집중하느라 왕년의 이력을 떠벌리지 않는다.
기성의 프레임을 상징하는 이송과 원주는 악기를 배우고 기존의 곡을 연습해서 남에게 완벽하게 들려주기를 바란다. 연주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뽐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인국은 다르다. 그는 누구도 들어보지 못했던 이상한 자신의 노래를 키보드로 연주한다. 이리스는 이런 음악이 듣고 싶다. 그녀는 인국에게 절대 기억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그래야 위대한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송이 피아노를 연주할 때나 원주가 기타를 연주할 때 이리스가 듣지도 않고 밖으로 나간 이유를 알 수 있다. 남의 것을 흉내나 내며 자랑하는 행위는 내면이 공허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인국의 엄마도 아들을 그녀의 방식으로 사랑하지만 낮은 단계의 사랑이다. 타인을 과거의 행적과 지위로 판단하고 자식을 보호하려는 방식이다. 이리스는 그런 모든 기성의 프레임으로부터 인국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못하게 보호하는 존재이다. 기성의 가치대로 살면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없을 것이고 세상에 아름다움을 남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짧지만 살아있는 동안 아름다웠던 윤동주의 삶을 동경한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 타인의 궤적을 따라간 것이었다면, 시인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이었다.
이리스가 현실의 인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녀는 아마도 무의식에서 자아에 영감을 주는 뮤즈 또는 아니마 같은 존재일 것이다.(현실의 인간은 접지 패드에 연결했을 때 전류가 0이 되지는 않는다.)
서로의 언어를 모르는 두 사람 간의 소통에는 제3의 공통언어가 필요하다. 이리스가 한국인에게 불어 강습을 할 때 그녀가 한국어를 모르니 공통어인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덕분에 가끔 홍상수 영화의 대사가 비현실적이고 불편했는데 영어로 하니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마치 의식과 무의식의 언어가 달라서, 공부를 하듯 제3의 언어로 소통을 하고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화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리스가 이송이나 원주의 말을 영어로 듣고 그 의미를 불어로 해석해서 그들에게 들려주고 암송하게 하는 작업이 마치 무의식이 자아에게 마음의 상태를 해석해서 알려주는 것으로 보인다.
보통 사람이라면 일상을 사는데 이런 작업이 많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음악가나 작가 같은 예술가에게는 이런 아니마의 존재와 메시지가 필수적으로 보인다.
수업료를 받아 인국에게 선물하는 장면에서는 배고픈 예술도 진지하게 하다 보면 밥은 먹고살 수 있다는 메시지로 들려서 작가의 자조적 유머를 읽을 수 있었다.
엄마가 세속적인 세뇌를 실컷 하고 돌아간 후, 인국은 밖으로 나가 쫓겨났던 이리스를 찾아 헤맨다. 이리스의 피리 소리에 매혹당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그는 그녀의 흔적을 추적한다.
그가 그녀를 찾아낸다.(그가 능동적으로 그녀를 마음속으로 들인다.)
집으로 은유되는 그의 마음에 그녀가 들어가도 되는가?
물론이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둘은 내내 같은 집에서 살아갈 것이고 인국은 아름다운 시를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