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의기투합한 SF영화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 생활 중, 영화 관람은 멀리 가지 않고 집 근처의 영화관에만 가면 되니 편리하다는 점에서 으뜸이다. 남편과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영화를 보고 내용을 곰곰이 생각하며 의미를 찾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꽤 많은 영화 리뷰를 쓰기도 했다. 좋아하는 장르는 심리 호러나 잔잔한 드라마이다. 전자는 융 심리학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분석하는 재미가 있고 후자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재미가 있다.
반면 남편도 영화를 좋아하지만 공학도여서 그런지 시간여행이나 우주여행 같은 SF영화나 역사 영화나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
이렇게 서로 취향이 다르지만 맞춰주려고 노력하며 극장에 함께 간다. 그러나 극장까지 같이 가지만 때로는 괴로울 때도 있다. 언제 한 번은 영화가 너무 폭력적이어서 나에게 한계가 왔다. 남편에게 나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으니 나가서 휴게실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남편은 알겠다고 하고 자기는 끝까지 보고 나왔다.
물론 거꾸로의 경우도 있다. 비현실적인 내용이었지만 상징이 풍부했던 한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그가 나에게 저 말도 안 되는 영화가 정말 괜찮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도중에 화장실을 몇 번씩 들락거리고 자기 허벅지를 꼬집어가면서도 참고 보아주었다. 못 보겠다고 뛰쳐나가는 나보다는 성격이 좋은 것이 틀림없다. 하하. (그 이후로는 줄거리도 뚜렷하지 않은 유럽이나 일본의 예술적인 독립영화는 친구와 만나서 본다.)
그래도 공통점을 찾자면 SF영화는 둘 다 좋아한다. 그는 영화의 설정이나 설비에 대해 현실적인 비판을 할 때가 있지만, 나는 공상을 너무 개연성으로 따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나는 시간여행이나 우주여행을 인생의 비유로 생각하기 때문에 과거로 어떻게 갔는지, 그 멀리 떨어진 곳까지 어떻게 가는지 세세히 따지지 않는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예고가 떴을 때 우리 둘의 취향에 맞는 영화가 오랜만에 나왔다는 것에 기뻐하며 당장 예매를 하고 남편과 다녀왔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태양 에너지가 점점 줄어드는 현상이 생긴다. 태양의 적외선을 방사하는 선을 페트로바선이라고 부르는데 그 선은 반면에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그 선은 금성 쪽으로 방향을 틀며 넓어지고 있고 그 이유를 모른다. 분자 생물학 박사지만 학계와 불화하여 중학교 과학 교사를 하고 있는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헤일메리 프로젝트의 책임자 에바 스트라트의 요구로 페트로바선에 있는 검은 점들의 정체를 밝히는 연구에 참여하게 된다. 그 점들은 생명체였고 별이라는 뜻의 ‘아스트로’와 바이러스를 의미하는 ‘박테리오파지’의 합성어인 ‘아스트로파지’라고 부르게 된다. 이 생물은 엄청난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었고 그 때문에 태양에너지가 줄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왜 금성으로 향하는 것인지는 몰랐다. 실험을 해보니 아스트로파지는 이산화탄소에 이끌리고 그 농도가 높은 금성으로 향한 것이다.
우주를 관찰해 보니 근처의 다른 항성들도 밝기가 어두워지는 비슷한 현상이 보였지만 유독 12광년 정도 떨어진 ‘타우세티’라는 항성만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따라서 거기까지 가서 태양을 구할 해결책을 알아오기로 한다. 이 미션을 ‘헤일메리 프로젝트’라고 부르는 이유는 미식축구에서 지고 있는 팀이 마지막으로 긴 패스를 하여 경기를 뒤집으려는 시도를 헤일메리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안 하면 당연히 지고, 하면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는 시도이니 마지막으로 던지는 승부수가 된다. 문제는 거기까지 우주선을 항해시킬 연료와 식량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아스트로파지가 에너지를 엄청나게 보유하니 그것을 우주선의 연료로 쓰기로 하지만, 돌아오는 양까지 감당할 수는 없었다. 즉, 그 여행은 편도 여행이자 자살 여행이 된다. 죽는다는 것을 알고 떠난 우주여행에서의 심리적 부담 때문에 사고가 생길 수도 있으니 비행사들을 장기간 코마 상태로 만들어 여행을 시키기로 한다. 코마에서 깨어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극소수여서 자격을 가진 사람 중 어렵게 3명을 선발한다. 그러나 폭발사고로 한 명이 죽고 빈자리에 그레이스 박사를 추천하지만 그는 죽고 싶지 않아서 거절한다.
스트라트는 과학자의 능력과 코마 저항력까지 있는 그레이스를 임무에 강제로 밀어 넣고 그가 코마에서 깨어난 후 절망하여 자살할까 봐 기억 상실약까지 투여한다.
어쩐 일인지 나머지 두 비행사는 도중에 죽는다. 따라서 그레이스는 우주선에서 긴 여행을 하고 혼자 코마에서 깨어난다.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다가 하나씩 단서를 통해 기억을 되찾는다.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가르쳤던 사랑하는 학생들 때문이다. 그들에게 멀쩡한 지구를 남겨주기 위해 그는 임무를 수행하기로 한다.
타우세티 항성 근처까지 간 그레이스는 외계 우주선 블립 A를 발견한다. 그곳에는 똑같은 이유로 탐사를 온, 거미처럼 생긴 '로키'라는 생물체가 있었다. 그도 자기 종족을 구하러 왔고 23명의 동료들은 죽고 혼자 남았다. 시각이 없는 로키는 음파로 사물을 감지하고 음정으로 상대와 대화한다. 많은 연습을 통해 둘은 소통할 수 있게 된다. 둘은 이산화탄소가 많은 행성 에이드리안에서 아스트로파지 샘플을 퍼올려서 관찰한다. 그곳에는 그 세균을 잡아먹는 다른 생명체가 있었다.그래서 아스트로파지의 수가 증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아베바처럼 세균을 감싸서 먹어치우므로 ‘타우메바’라고 부르기로 한다. 각자 이것을 가지고 돌아가면 자신들의 행성을 구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둘은 큰 부상을 입고 서로 목숨을 걸고 상대를 구해준다. 둘은 이별하고 각자의 행성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가는 도중 그레이스의 우주선 시료탱크가 오염되고 그는 그것을 제거하지만, 로키의 우주선은 재질상 오염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레이스는 타우메바를 실은 무인 우주선 ‘비틀스’만 지구로 보내고, 자신은 로키의 우주선 쪽으로 기수를 돌린다. 블립 A에 도착하여 로키를 구하고 헤일메리호에 태운 후 그의 행성으로 함께 간 그레이스는 친구와 함께 여생을 보내기로 한다.
그레이스는 능력 있는 과학자지만 학계에서 따돌림을 받고 거기에서 나와서 다시 중학교 과학 교사가 된다. 그는 학생들을 사랑하고 가르치는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 나도 중학교 과학 교사를 했던 터라 감정 이입이 쉽게 되었다. 그레이스 캐릭터에 관심이 생겨서 영화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서 책도 사서 읽었다. 거의 700쪽에 달하는 분량이었지만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금방 읽을 수 있다. 과거 과학 교사 시절, 나도 수업 시간에 이론을 무조건 외우려는 학생들에게 암기가 아니라 문제 제기, 가설 만들기, 관찰과 실험을 통한 데이터 모으기, 검증하기, 이론 정립하기의 ‘탐구 과정’을 익히게 하려고 노력했었다. 과학 교사로서, 과학이란 이론이 아니라 '태도'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저자도 주인공도 다 과학자여서 작품의 스토리에서 논리적 추론의 과정이 아주 중요했다. 영화에서는 대거 생략되었지만 소설에서는 우주선에서 긴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많은 단서를 통해 기억을 하나씩 찾아내는 과정이 아주 흥미롭게 전개된다. 어떤 때는 탐정처럼 어떤 때는 과학자처럼 모든 것을 해결한다. ‘아스트로파지’ 같은 생명체는 상상의 산물이지만 그것을 묘사할 때 과학적 지식이 밑받침이 되어 아주 그럴듯하게 보인다.
여기에다 우주 영화라면 으레 나오는 실존적 문제도 들어있다. 영화 <패신저>에서 주인공이 원래 120년을 동면해야 하는데 30년 만에 혼자 일찍 깨어 우주선에서 일생을 보내야 한다던지, 영화 <애드 아스트라>에서 주인공이 혼자 해왕성까지 가서 그가 어릴 때 가족을 떠난 아버지를 만나서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대부분의 우주여행 영화에서 주인공은 우주 공간에 혼자 남게 되고 긴 시간을 버텨야 하며 다시 돌아올 수도 없는 경우가 많다. 이때 인생을 돌아보며 삶의 이유와 의미를 찾게 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주인공도 돌아올 수 없는 편도 우주여행을 하게 되는데 같이 간 두 명의 우주인들은 코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되어 그도 결국 혼자가 된다. 임무를 완수한다 해도 주인공은 연료도 식량도 없으니 결국 죽게 될 것이다.
우주여행으로 은유되는 인생도 어차피 혼자고 일정 시간을 버티고 그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한 방향의 진행인 것도 똑같다. 그 모노드라마는 인간이면 모두가 겪는 이야기이다. 영웅의 서사였다면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렸겠지만, 그레이스는 소심하고 잘 삐치고 죽기 싫다고 버티고, 그러나 아이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친근한 인물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시험에 빠진다. 시도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만 안 하면 반드시 망하는 과업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그가 한 시도들의 총합이 그의 인생이다. 그 과정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인생의 가치를 말해준다. 주인공 그레이스는 멋진 영웅은 아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혹독한 지구환경을 남기지 않는 데 자신의 평생을 걸었다는 의미를 찾는다.
이러한 외로운 상황에서 구원이 나타난다.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다. 이 작품에서는 다른 항성의 행성에 사는 외계인이다. 마치 바위와 같은 피부를 가지고 있어서 ‘로키’라고 부르게 된 이 존재는 언어도 다르고 언어를 전달하는 방식도 다르다. 이 생명체는 빛이 없는 환경에서 살아서 시각기관이 없고 음높이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 공학자들이어서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낸다. 과학자인 그레이스가 생각을 해내면, 엔지니어인 로키는 실제적인 도구를 만들어준다. 서로 보완이 되는 환상의 커플이다.
능력도 지각도 언어도 다른 존재를 만나 주인공은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를 죽음에서 구해준다. 자기를 절대로 희생하지 않던 다소 방어적인 그레이스는, 로키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구해주자 감동한다. 그레이스도 암모니아 가스에 누출되고 고온에 화상을 입으면서도 다친 로키를 자신의 구역까지 데려다 준다. 로키는 그레이스가 지구로 돌아갈 수 있게 기꺼이 연료를 나누어준다. 그레이스는 기뻐하며 지구로 돌아가는 도중에 로키의 우주선이 위험에 빠진 것을 알자 지구귀환을 포기하고 로키의 우주선을 구하기 위해 항로를 돌린다. 시간여행의 속성상 그레이스가 귀환해도 그가 알던 사람들은 많이 늙어있을 것이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친구와 함께 하기로 결심하고 로키의 행성에서 살기로 한다.
어디서 많이 본 스토리가 아닌가? 그렇다. 지구에서도 사람은 서로 완전히 다른 존재를 만나 혼자일 때보다 더 좋은 삶을 산다. 서로를 구해주고 더 좋은 해결책을 얻는다. 처음에는 로키의 음과 단어를 하나씩 매치하며 컴퓨터에 입력하고 화면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통하던 둘은 나중에는 로키의 음을 알아듣고 직접 소통하는 경지에 다다르고 어떤 몸짓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파악하게 된다. 인간 세상에서도 처음에는 서로가 달라서 투닥거리며 싸우던 친구가 나중에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과 같다.
이렇게 인생은 외롭게 혼자 가는 길이지만, 의미를 찾으면 삶이 멋져지고, 그 과정을 친구와 함께 하면 더 쉽고 행복해진다.
나의 인생에서 로키같은 버디는 누구인가? 남편, 형제, 친구 몇몇이 떠오른다. 그들은 나와 너무 달라서 답답하기도 했고 실망하기도 했지만, 평생 의지했고 따라했고 그들로 인해 행복했었다.
“고마워 나의 버디!”
*과학적 추론에 흥미가 있다면 책도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