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에 감탄하고 작품에 감동하다
자식들이 독립하니 살고 있는 집이 크고 썰렁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남은 사람은 우리 부부뿐이어서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언제나 빈 집이다.
자식에게 쏟았던 노력과 시간을 부부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요리도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외식도 둘만의 취향을 맞추면 된다.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지만, 되도록 같이 운동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교외 나들이나 문화생활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이러한 노력을 <슬기로운 노년 생활>이라는 매거진을 만들어서 차근차근 기록하려 한다.
첫 번째 꼭지로 지난 주말에 관람했던 서울 공예 박물관 금기숙전 후기를 남기려 한다.
이 박물관은 과거 풍문여고 교사를 개축한 건물이라고 하는데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가 있다. 상설로 전시하는 자개나 보자기나 자수도 멋졌지만, 금기숙 작가의 기획 전시는 집에 돌아와서도 누우면 전시물이 천장에 둥둥 떠다닐 정도로 인상이 강했다. 부지런히 리뷰를 올리는 이유는 2026년 3월 22일까지만 전시한다고 하니 이 멋진 전시를 못 보신 분들이 빨리 다녀오셨으면 하기 때문이다.
금기숙 작가는 처음에는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고 옷을 만들었으나 점차 입지 않지만 예술적 가치를 가진 전시용 의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릴 적 마당에 감꽃이 떨어지면 어머니가 실을 가져다주며 꽃을 꿰어 목걸이를 만들라고 하셨다고 한다. 만든 목걸이를 여러 개 겹쳐 걸고 놀았다고 하는데 그 일화가 일생을 관통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물론 실 대신 철사, 꽃대신 구슬과 리본으로 재료는 달라졌다. 작가의 작업 과정도 전시되어 있는데 수많은 구상과 스케치와 축소된 단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비디오로 철사에 구슬을 꿰는 모습도 보여준다. 모든 공예가 그렇듯이, 예술가는 구상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끝없는 반복을 거듭해야 하는 거의 수도승 같은 삶을 산다.
2층에서 열리는 전시는 제일 먼저 Dreaming이라는 공간에 전시된 백매화를 구현했다는 순백의 드레스는 웨딩드레스를 떠오르게 한다. 중심에 딱 하나의 드레스를 전시하고 사방을 거울로 두른 전시실에서 모두 탄성을 지른다. 그 전시물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멈추어서 떠날 줄을 모른다.
다음 공간은 Dancing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꽤 많은 작품이 전시통로 중간에 천정의 철사에 매달려 있고 그 사이를 관객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구조이다. 관객의 움직임과 조명에 따라 그림자와 반짝이는 스팽글이 움직이며 마치 현란한 춤을 추는 느낌을 준다. 의상이 주는 볼륨감이 대단해서 마치 방금 어떤 사람이 옷을 입고 있다가 벗은 듯한 느낌이 든다. 어쩌면 관객들이 그 주인공인지도 모른다. 나아가서 짧은 인생에서 옷을 입었던 인간이 사라져도 예술은 남는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속이 보이는 드레스는 밑단이 마치 스러져가는 듯한 비디오 픽셀같이 보여서 결국은 스러질 예술의 운명도 보여주는 듯하다.
평창 올림픽 입장 때 입었던 흰 의상들은 눈이 내리는 디스플레이 앞에 전시했는데 마치 눈송이들이 내리다가 합쳐져서 의상을 만들었다는 상상을 하게 했다.
세 번째 공간은 Enlightening으로 한복의 재발견이다. 서양 의상과는 달리 한복은 평면 구조이다. 따라서 볼륨이 아니라 옷의 곡선으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또 옷고름과 치맛자락의 미묘한 떨림을 감지해야 한다. 이런 구조적 특성상 한복은 벽에 전시하되 일정 거리를 띄우고 전시하며 조명을 비추어서 벽에 비치는 그림자에 주목하였다. 우리 선조들이 입어온 한복의 아름다움은 현대에도 여전히 깨달음을 준다고 작가는 생각했다.
옷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가 1층으로 내려오면 Towards Space 전시가 있다. 영롱하고 아름다운 색깔의 물방울이 여기저기 있는 사이에 물고기들이 헤엄친다. 그렇다. 여기는 물속이다.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관객들도 물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작가는 초기 의상에 집중했던 시기를 지나 세계를 확장한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 더 많은 작가의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슬기로운 노년 생활> 프로젝트의 실행은 성공적이었다. 다양한 전시, 영화, 사찰 여행, 성지 순례. 장엄한 자연 보기 등으로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 한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