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왜 이렇게 상처 입히고, 상처 입을까요.
붓이 정녕 칼보다 강하다면, 그 책임또한 더 무거워야 합니다.
-피를 마시는 새
말과 관련된 명언들은 매우 많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그리고 ‘펜은 칼보다 강하다’와 같은 말들이 대표적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오래전부터 말의 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말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살아가게 하기도 하고, 동시에 누군가를 무너뜨리기도 하는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구어와, 글로 표현되는 문어입니다. 물론 구어 또한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문어는 기록으로 남고 더 넓게 퍼진다는 점에서 더욱 큰 영향력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는 문어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이후, 문어는 새로운 형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댓글’이라는 공간입니다. 제 짧은 식견으로 감히 말씀드리자면, 스마트폰 사용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문어의 가장 큰 변화는 댓글창의 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창은 분명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 있어 강한 확산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 또한 분명히 존재합니다. 익명성은 때로 책임감을 흐리게 만들고, 사람들은 타인을 쉽게 비난하고 힐난하게 됩니다. 강한 확산력은 작은 오해조차 빠르게 퍼지게 만들며, 한 번 잘못 각인된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제가 바라본 현재의 댓글창은 마치 꼬리를 무는 뱀처럼, 혐오가 또 다른 혐오를 낳고 있습니다.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양날의 검을 마구 휘두르고 있습니다. 타인을 향해 휘두르는 그 말들은 결국 자신에게도 상처로 되돌아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은 타인과 스스로를 동시에 상처 입히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 중 하나인 이종범 작가님의 ‘닥터 프로스트’에서도 이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는 온라인상의 혐오를 양날의 검에 비유합니다. 어떤 인물은 그것을 휘두를수록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무기라고 말합니다. 반면 또 다른 인물은, 다수가 모여 특정 대상에게 향할 때 그 양날의 검에는 ‘손잡이’가 생긴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경우 사람들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느끼게 됩니다.
댓글창에서 많은 ‘좋아요’를 받은 의견에 따라 쉽게 생각이 흔들리는, 이른바 ‘물타기’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이 비유는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왜 서로를 상처 입히고, 또 상처 입게 되는 것일까요.
이제는 말이라는 칼을 내려놓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구의 온도는 끝없이 올라가고 있지만, 사회의 온도는 끝없이 내려가고 있습니다.